"등산 아닌 출근길, 이건 순직" 울음바다 된 신림동 피해자 빈소
“단순 등산이 아니라 출근길이었어요. 다들 큰길로만 다니라고 하는데 큰길에서도 사건이 나고, 등산로에서도 사건이 나는데…”
20일 오전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신림동 성폭행 살해 사건 피해자 A씨의 오빠 B씨는 하루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올리다 말문이 막혔다. B씨는 “동생이 2주 전 부산에 내려와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며 “방학인데도 교직원 연수 등을 준비해야 한다며 서울로 올라간 게 마지막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 혼자서 서울에 집을 살 돈을 모을 정도로 똑 부러진 동생이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주 연락하면서 살갑게 지냈는데 1년 만에 이런 일이…”라며 울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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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 “순직 인정돼야”…조희연 “적극 노력”
지인들은 A씨에 대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하나같이 회상했다. A씨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재직 중인 학교에 초빙돼 체육부장 보직을 맡았다. 늘 1시간가량 일찍 출근했던 A씨는 사건 당시엔 연수 기획 업무를 맡고 있어 출근을 더욱 서둘렀다고 한다. 그러다 피의자 최씨를 만나 참변을 당한 것이다. A씨의 대학 동기 김모(34)씨는 “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언급하면서 조심하라는 말을 건넨 게 엊그제 같은데 너무 참담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출근 중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순직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후 8시쯤 차려진 빈소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유족의 말을 들어보니 공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청 소속 노무사와 사실관계를 확인해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전·현직 동료들은 자정 무렵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고인을 추모했다. 한 동료가 “남 일이 아니다. 여기 있는 선생님들도 걱정이 된다”고 말하자 빈소는 울음바다가 됐다. 이튿날엔 고인의 제자와 지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고인과 함께 6년간 여성축구 동호회 활동을 한 현모(49)씨는 “회계 업무 등 남들이 꺼리던 일을 맡아 솔선수범하는 친구였다. 경기 때마다 손수 PPT까지 제작할 정도로 야무졌다”고 말했다.
피해자 A씨는 사건 직후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지만 19일 오후 사망했다. 처음 응급실에 실려 올 때부터 의식 없이 위독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서울 관악경찰서는 피의자 최씨에게 기존 강간상해에서 강간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해 적용했다고 20일 밝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강간 등 살인·치사죄)에 따라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씨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앞서 최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을 하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 너클을 양손에 끼우고 피해자를 폭행했다”며 등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강간 등 살인죄는 미수범에게도 적용되지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될지가 관건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사망 시점에 당연히 강간 등 살인죄로 죄명이 변경됐다”며 “그간의 수사 진행 결과를 토대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의자 최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부모와 함께 금천구 독산동 자택에서 거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당시 음주를 하거나 약물을 투약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다음 주 신상정보 공개 위원회를 열고 최씨의 얼굴, 이름, 나이 공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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