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플레이션’ 식품업계 역마진 신음… 폭염 잡는 냉감 소재·차열페인트 ‘불티’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3. 8. 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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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바꾸는 산업 풍경 ‘UP & DOWN’

이제 폭염은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앱노멀(Abnormal)’한 현상이 아니라, 상수인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았다. 폭염은 산업계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식품·유통업계에서는 폭염 등 이상 기후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자 생산 관리 고도화가 절실해졌다. 현장 근무가 많은 조선·철강업계는 노동생산성 저하로 무인화 등 스마트팩토리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폭염으로 열린 신시장도 있다. 냉감 신소재는 연 6%씩 성장 중이며 폭염 잡는 차열페인트는 전년보다 10% 이상 판매량이 늘 전망이다.

[DOWN] 식품·유통·중후장대

원가 치솟고 생산성 뚝뚝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식품과 유통업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폭염과 가뭄 등 이상 기후가 전 세계 경작지를 덮쳐 식료품발 ‘히트플레이션’ 우려가 팽배하다. 독일 포츠담기후변화연구소는 유럽중앙은행(ECB)과 내놓은 보고서에서 “2035년에는 기후변화가 세계 식품물가 상승률을 최대 3.23%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가격은 부셸(약 27.2㎏)당 8달러에 육박한다. 최근 5개월래 최고치다. 옥수수 선물 가격도 부셸당 6달러를 바라본다. 전 세계적 폭염으로 가격이 급등한 대표적인 품목 중 하나가 올리브유다. 스페인을 덮친 폭염과 가뭄으로 올리브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 탓에 올해 가격은 ㎏당 7유로(약 1만원)를 돌파했다. 지난해 9월 사상 최고치인 ㎏당 4유로(약 5700원)를 넘겼지만, 폭염으로 작황이 악화해 가격은 끝없이 오르고 있다. 설탕과 카카오, 쌀도 ‘히트플레이션’ 조짐이 뚜렷하다. 이들 작물 생산 지대인 인도가 폭염으로 펄펄 끓자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부터 인도는 45도가 넘는 살인적 폭염이 반복되자 자국 곡물 수급을 위해 밀 수출을 금지했다. 지난 7월 21일에는 바스마티(길쭉하게 생긴 쌀) 품종을 제외한 모든 품종의 쌀 수출도 막았다.

식품, 유통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지금도 제조원가 부담이 상당하지만 현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과 인하 압박에 원가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 산업은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1~2% 수준”이라며 “부자재 비용이 줄줄이 오른 상황에서 가격 인상을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원가 부담으로 식품 기업은 사실상 역마진에 노출됐다.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올 2분기 영업이익 2358억원(대한통운 제외)으로 전년 대비 40% 줄었다. 특히 이 기간 식품 부문 영업이익은 1427억원으로 전년보다 15% 줄었다. 식품업계는 하반기 실적을 더욱 우려한다. 국제 곡물가가 국내 시장에 반영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시차를 두고 식료품 가격 전반의 상승 압력이 커질 전망이다.

조선, 제철 등 중후장대 산업은 폭염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비상이다. 중후장대 산업 현장 일선에서는 생산성 저하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편다. 삼성중공업은 철판 용접 수행 직원들을 위해 시원한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에어쿨링 재킷’을 지급했다. 선박 안에는 대형 냉방 장비인 스폿쿨러 364대와 이동식 에어컨 174대를 가동한다. 조선소 곳곳에 제빙기 146대와 냉온 정수기 457대도 설치했다. 외부 온도가 오르면 점심시간을 30분~1시간씩 연장하고 삼계탕, 돈수육 등 보양식을 제공한다. 집중 휴가 제도도 운영한다. HD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지난 7월 말부터 올 8월 10일까지를, 현대삼호중공업은 7월 말부터 8월 11일까지를 각각 혹서기로 정하고 집중 휴가제를 운영했다.

포스코는 체감 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고열에 취약한 작업을 하는 근무자는 30분 작업 후 30분 휴식을 주고 있다. 현장 작업자에게 식염포도당·영양제를 공급하고 혹서기 교대 근무자를 위한 수면실도 마련했다. 현대제철은 더위로 인한 탈진을 막으려 매일 1회 전 직원을 대상으로 빙과류 간식을 제공하고 수시로 음료, 수박 등을 지원한다. 작업 현장에 냉온수기와 식염포도당 등도 비치했다.

[UP] 냉감 신소재·차열페인트

수요 늘자 생산량 2배 확대

폭염으로 주목받는 신산업도 있다. 폭염에 맞서 냉감(Cooling) 신소재와 관련 신기술 개발 경쟁이 뜨겁다. 냉감 소재는 체온을 조절하고 착용자에게 시원한 효과를 주기 위해 특별히 개발된 기능성 소재(Technical Textile)를 뜻한다. 스포츠웨어뿐 아니라 스포츠 용품, 침구, 아이 용품, 자동차 시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Verif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냉감 소재 시장 규모는 약 19억4000만달러로 평가됐다. 2021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약 6%의 성장률로 30억5000만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냉감 소재 시장은 쿨코어(Coolcore·미국), 알스트롬-뭉쇼(Ahlstrom-Munksj·핀란드), 폴라텍(Polartec·미국), 난야플라스틱(Nan Ya Plastics·대만), 텍스-레이(Tex-Ray·대만),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일본) 등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도 생산량 확대와 연구개발 등에 적극 나선다. 2017년 일찌감치 냉감 소재 시장에 진출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부터 생산량을 기존보다 2배 늘렸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냉감 소재 브랜드 ‘포르페(FORFE)’는 유럽 섬유 품질 인증 시스템인 ‘오코텍스(OEKO-TEX)’ 1등급을 획득했다. 휴비스는 2021년 침구류에 주로 쓰이는 냉감 섬유 ‘듀라론-쿨(Duraron-Cool)’을 내놓은 뒤 지난해 생산능력을 3배 이상 늘렸다. 휴비스는 듀라론-쿨을 의류용으로도 개발해 사업 영역을 다각화한다.

페인트업계에서는 차열페인트 시장이 각광받는다. 여름철 기온 급등과 전기요금 인상으로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자 차열페인트 수요가 늘고 있다. 차열페인트는 태양열을 반사해 표면온도 상승을 막고 내부로 전달되는 열을 차단한다. 페인트업계에서는 국내 차열페인트 시장 규모를 약 500억원대로 보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올여름 차열페인트 판매량은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삼화페인트공업은 건축용 차열·방수페인트 ‘쿨앤세이브’가 주력 상품이다. 열 차단 효과가 있는 특수 안료가 함유됐다. 여름철 외벽 온도를 최대 40%가량 낮출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미국의 에너지 절감 페인트 전문 인증기관인 CRRC(미국 에너지 절감형 도료 인증제)에 ‘Cool Roof 인증’을 받았다. KCC는 외벽·지붕용 차열페인트 ‘숲으로차열상도’와 보행도로용 메틸메타크릴레이트(MMA) 수지페인트 ‘스포로드쿨’ 등을 판매한다. 숲으로차열상도는 수용성 특수 아크릴수지를 적용했다. 자체 평가에서 일반 제품(시멘트·방수제 등) 대비 최대 10도 낮은 온도를 기록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스포로드쿨은 태양광을 반사하는 특수 안료를 적용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온도 상승을 막는다. 노루페인트는 건물 외벽용 ‘에너지 세이버 쿨월’과 옥상용 ‘에너지 세이버 쿨루프’에 주력한다. 에너지 세이버 쿨월은 삼화페인트 ‘쿨앤세이브’처럼 올 3월 CRRC로부터 ‘Cool Wall’ 인증을 받았다.

기후 위험-금융 리스크 관계 분석

‘폭염 보험’ 관심 ‘UP’

금융 산업에서도 폭염이 경영 전략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 주요 중앙은행은 기후변화에 따른 스트레스 테스트와 분석을 본격화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올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후 위험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을 요구했다. 유럽중앙은행도 기업과 은행의 기후 생태계 의존도와 관련 위험 분석에 착수했다.

보험 산업에서는 폭염 보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강윤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 위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50년 세계 GDP의 4% 이상에 달할 것”이라며 “폭염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보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 보험사는 폭염이 유발하는 다양한 피해 사례를 시뮬레이션하고 특화 상품을 내놓는다. 지난해 4월 일본 스미토모생명은 열사병 특화 보험을 내놨다. 지난해 6월 말 폭염이 발생하자 같은 해 6월 29일부터 사흘간 6000건 이상 열사병 보험 계약이 체결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7월 손포재팬도 열사병으로 사망 또는 입원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해보험 특약 계약 기준을 기존 23세 미만에서 전 연령층으로 확대했다. 도쿄해상은 올 6월 열사병으로 입원할 경우 보험금 지불과 의료 지원이 가능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내는 아직 특약 등의 형태로 제한적인 접근을 보인다. 최근 삼성화재는 계절별 특화 위험을 보장하는 ‘계절맞춤 미니보험’을 삼성금융 통합 플랫폼 ‘모니모’에서 선보였다. 이 보험에 가입하고 병원에서 열사병, 일사병, 열경련 등 진단을 받으면 온열 질환 진단비로 30만원까지 지급된다. 다른 보험사는 대인 상품을 따로 판매하진 않지만, 가축재해보험에 ‘폭염재해보장’ 특약을 넣어 판매 중이다.

(취재 = 배준희 기자)

인터뷰 |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대비책만 만들어봐야…실행이 중요”
1967년생/ 서울대 사회학 학사/ 델라웨어대 환경에너지정책학 박사/ 前 탄소중립위원장/ 서울대 환경대학원장(현)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면서 인적, 경제적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 기체를 줄일 수 있도록 우리의 사회·경제 활동, 에너지 이용 방식, 나아가 생활양식과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변화하는 기후 체계에 적응하기 위한 정부의 보다 깊은 관심을 촉구했다. “기후 위기 적응 계획을 세우는 데서 끝낼 것이 아니라 계획을 이행하고 평가하며 적응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윤 원장 제언이다.

Q. 폭염이 이상 기온 수준을 넘어섰다.

A.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2022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1.15℃ 상승했다. 이런 상태에서 기후 위기가 점점 심화하면 향후에는 더욱 심각한 폭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99~100% 확률로 폭염 일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Q. 폭염이 경제를 얼마나 위협하는지.

A. 폭염은 농작물 성장에 악영향을 미쳐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주요 식량 작물인 쌀과 밀, 옥수수의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국제 곡물가가 상승한다. 이는 결국 식량 수입국의 높은 물가 상승 압박으로 이어진다. 또한 야외 근로자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노동 시간 감소와 작업 일수 감소로 인해 경제성이 악화한다. 대표적인 예가 건설업계다. 건설업에서 사용하는 철근이나 골재는 열전도율이 높아 야외 노동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물류 산업도 작업 환경 질이 떨어져 물류비가 상승한다. 특히 폭염이 가뭄과 함께 발생하면 물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물 소비가 많은 반도체 공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Q. 기업 등 경제 주체는 폭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A. 기업은 야외 작업 노동자 건강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충분한 그늘과 물,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각 산업 작업자의 폭염 노출도와 영향, 취약성 등을 고려한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정부는 곡물 공급 부족이나 곡물가 상승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식량 안보’를 강화할 수 있도록 보다 세심한 농업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폭염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열악한 가옥에 거주하는 사람들일수록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에너지를 소비해도 단열이 취약해 훨씬 더울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대응만을 요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돌봄 노력이 필요하다.

Q. 구체적인 폭염 대응 정책은.

A. 정부는 폭염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재난 관리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정부는 폭염 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다수가 폭염 대피소를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폭염 대피시설 운영에 관한 지원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폭염은 물론이고 한파 또한 주택 단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단열을 강화해 적은 에너지 투입으로도 냉난방 효과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인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해 화석연료 기반 발전을 줄이는 것도 기후변화 위기 대응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인터뷰 = 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2호 (2023.08.16~2023.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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