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망가지고 땀띠 나도 '헤드폰 패션' 포기 못하는 이유 [비크닉]

한재동 2023. 8.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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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들이 사는 건 나도 사고 싶어 하는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역대급 폭염으로 고통받는 요즘, 커다란 헤드폰을 목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덩달아 저도 몇 년 전 사두었던 헤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블루투스 이어폰보다는 더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이어폰보다 훨씬 무겁고, 머리도 망가지고, 정말 더웠습니다. 멋쟁이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야 한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요? 오늘은 이런 불편함을 극복한 헤드폰 유행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얼마 전 타계한 일본의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제품은 소니 MDR-Z7. 출처 thefader.com

애플이 만들면 유행이 된다, 에어팟 맥스(Airpods Max)

에어팟 맥스는 2021년 1월에 출시한 애플 최초의 무선 헤드폰이에요. 71만 9000원이라는 출시가격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오버이어(Over-ear : 귀를 덮는 식으로 착용하는 헤드폰) 타입의 헤드폰이 유행하지는 않았던 시기라 에어팟 맥스의 실패를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더구나 가격에 비해 통화 음질 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무거웠어요. 에어팟 맥스는 384g으로 타사 제품에 비해 100g 이상 더 나갑니다. 스마트폰은10g만 해도 엄청난 차이로 보는데, 그 10배인 100g 무거운 걸 목에 걸고 다닌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에어팟이 있어도 에어팟맥스를 구매하는 애플매니아가 많다. 출처 언스플래시


하지만 연예인 걱정만큼 쓸 데 없는 게 애플 걱정이었습니다. 우려와 달리 셀럽들이 하나둘 에어팟 맥스를 착용하며 유행이 시작되었어요. 아이폰과 맥북 등 기존 애플 제품과의 호환성이 좋아 소위 애플 생태계에 묶인 사람들도 에어팟 맥스를 구매했습니다. 에어팟 맥스가 패션아이템으로 자리 잡자, 논란이 되었던 가격과 성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에어팟 맥스를 다른 음향기기와 비교하지 않고, 하이엔드 브랜드의 액세서리로 인식하기 시작했거든요.

오버이어 헤드폰의 유행을 이끈 에어팟 맥스는 출시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지금 에어팟 맥스를 사도 되는지 리뷰하는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고요. 올해 하반기로 알려졌던 에어팟 맥스 2세대 출시일이 불투명해지면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에어팟 맥스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애플 제품이 나오면 구매할 수밖에 없고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는 ‘애플병’의 대표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헬스장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Beats by Dr. Dre

비츠 바이 닥터 드레(Beats by Dr. Dre, 이하 비츠)는 세계적인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닥터 드레와 음반사 인터스코프 대표 지미 아이오빈이 합작해서 2006년에 런칭한 음향기기 전문 브랜드입니다. 헬스장에 가면 비츠의 헤드폰을 끼고 운동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대부분 몸이 좋은 남성들이고요.

비츠의 성공은 스타 마케팅의 교과서적인 예시예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짧은 역사에도 셀럽을 이용해서 단시간에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미넴이나 레이디 가가와 같은 유명 뮤지션은 물론 스포츠 스타에게 제품을 협찬해 이슈를 만들어 냈어요. NBA 스타들이 경기 전에 몸을 풀며 착용하는 걸 본 수많은 농구팬들이 그들을 따라 비츠를 쓰고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런던 올림픽에 착용하고 나와서 국내에서도 ‘박태환 헤드폰’이라 불리기도 했고요.

화려한 색상의 제품이 많은 비츠 헤드폰. 출처 Unsplash


화려한 디자인과 닥터 드레라는 브랜드가 결합해 승승장구하던 비츠는 2014년 당시 애플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약 3조 원에 인수합병되었어요. 사실 비츠는 브랜드와 디자인을 소유하고 OEM 방식으로 생산한 뒤 음향 튜닝을 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그래서 고가임에도 종종 음질 논란이 있었어요. 하지만 애플에 인수된 뒤에는 이런 기술 논란은 없어지고, 애플의 인프라를 활용한 전 세계적인 A/S도 가능해졌습니다. 2016년에는 미국 무선 헤드폰 점유율 46%로 1위에 올랐어요. 에어팟 등 블루투스 이어폰 시대가 개막하고 에어팟 맥스의 유행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2021년 기준 미국 시장 점유율 2위(15.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헤드폰 유행의 가장 큰 수혜자, 소니(SONY)

오버이어 헤드폰 유행에는 ‘노이즈캔슬링’이라는 기술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노이즈캔슬링이란 외부 소음을 상쇄하는 기술로, 원래 비행기 제트엔진 소음 해결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해요. 소니는 이런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탑재한 헤드폰을 최초로 판매한 브랜드입니다.

원래 음향으로 유명했던 회사인데다가, 노이즈 캔슬링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한 소니의 무선 헤드폰은 오버이어 헤드폰 유행 전부터 꾸준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헤드폰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오디오 애호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죠. 가격도 40만 원대로 프리미엄 헤드폰 중에서 합리적인 편에 속합니다. 소니 코리아에 따르면 2022년 매출이 전년 대비 158.8%가 증가했다고 해요.

국내 판매 1위의 헤드폰 소니 WH-1000XM5. 출처 소니


특히 소니는 한국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11%, 6위에 그치는 데 비해 한국 점유율은 53%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제품 사양과 가격 경쟁력의 우위, 그리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Y2K(2000년대)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 때문이라고 해요. 소니 헤드폰 구매자 34%가 15~24세, 47%가 25~34세인데요. 소니 헤드폰의 폭발적 성장이 MZ세대의 전폭적인 사랑 덕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BTS 뷔가 사랑한 헤드폰, 보스(BOSE)
보스는 미국의 세계적인 음향기기 브랜드입니다. 음악 애호가였던 창업자 아미르 보스 박사는 기존의 스테레오 스피커들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음향기기를 직접 만들기 위해 보스를 설립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스피커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보스는 단숨에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어요. 보스는 오디오 기술의 개척자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을 비롯한 노이즈 캔슬링 기술도 보스의 발명품이에요.

보스 헤드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2.5%(3위)입니다. 무선 헤드폰이지만 유선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어서 비행기에서도 사용할 수도 있고요. 보스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헤드폰의 다양한 기능을 쓸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BTS 멤버 뷔가 착용해서 ‘뷔 헤드폰’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블루투스 이어폰이 보편화되면서 보스는 위기를 맞아요. 에어팟 등장 이후 성장이 멈추고 매출은 줄어들어 2018년 40억 달러였던 매출이 2022년 30억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한때 9000여 명에 달했던 직원은 6000명대로 줄었어요. 트렌드의 변화가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국내에서 뷔 헤드폰으로 유명해진 보스의 NC700. 출처 Unsplash


헤드폰 유행은 계속될까?

헤드폰 유행은 패션계에 불고 있는 레트로 트렌드와도 연결돼요. 그렇다면 패션 트렌드가 바뀌면 ‘헤드폰 코디’ 유행도 끝일까요? 아마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헤드폰을 찾는 사람들이 노이즈캔슬링을 중요한 기능으로 생각하는 것에 힌트가 있어요. 바로 헤드폰이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헤드폰을 쓰고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장면, ‘아일랜드’에서 주인공이 집중하기 위해 사제복에 헤드폰을 쓰고 구마 의식을 치르는 장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목에 걸고 있던 헤드폰을 머리에 쓰는 순간 ‘방해금지’라고 외부에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헤드폰을 쓰고 있는 장면. 출처 중앙일보


프리미엄 헤드폰 패션 유행 덕에 많은 사람이 고품질의 음향기기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계속 좋은 음질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황금귀’가 된다면 헤드폰뿐만 아니라 스피커 등 프리미엄 음향기기 전체 시장이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재동 비즈솔루션본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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