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카톡방 보는 야구 선수들, 이 글 꼭 읽으세요

김지은 2023. 8.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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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잊게 만드는 야구장... 야구 경기에서 인생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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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유독 더운 올해 여름. 우리 가족은 더 더운 곳으로 간다. 에어컨이 없는 곳. 갈 때마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다녀오면 또 가고 싶다.

가기 전 챙길 것은 모자, 양산, 선크림, 얼린 물병, 미니 선풍기, 과자 등 주전부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니폼과 응원 도구.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우리 가족은 이 여름, 야구장에 간다. 야구장에는 목청껏 소리 지르고 폴짝폴짝 뛰게하는 희열이 있다. 그 순간, 더위는 사라진다.

3년 내내 이어진 코로나로 야구보는 게 좀 시들했었는데 올 봄, 응원팀이 9연승 행진하는 걸 보고 무려 4년 만에 직관을 갔다. 바로 직전에 간 야구 경기 사진 속 딸은 볼살이 통통한 2학년인데, 지금은 나보다 키가 큰 6학년이 되었다.

야구 직관에 빠진 가족
 
▲ 사직야구장  응원팀의 홈구장인 사직야구장.
ⓒ 김지은
 
그날 이후 딸은 야구 직관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가까이에서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응원가에 맞춘 율동으로 흥겹게 응원을 할 수 있다는 것, 현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직관의 엄청난 매력이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 가족끼리 스케줄을 맞춰보고 근처에 응원팀의 경기가 있으면 직관을 간다. 좁은 좌석, 더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직관 날짜가 정해지면 딸은 그 경기장에 파는 음식 중 어떤 것이 유명한지 주변에 어떤 맛집들이 있는지 검색한다.

가기 전부터 메뉴를 정하며 신이 난다. 비교적 집과 가까운 고척, 잠실, 문학 야구장만 갔었는데 방학을 맞은 딸이 응원팀의 홈구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응원팀의 홈구장은 부산. 사실 나도 홈구장에 가보고 싶기는 했다. 우리 선수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전광판과 이닝 사이의 이벤트에 소외되는 게 아쉬웠다.

"그래, 가자!"

8월 첫주, 우리는 부산행 기차를 탔다. 내려가는 기차에서 딸이 그런다.

"경기 하나 더 보고 올라오면 안 돼? 언제 또 사직에 오겠어."

남편은 마음이 흔들린다. 표가 없을 거라는 말로 즉답을 피하며 검색을 했는데, 이럴수가. 응원석에 딱 세 자리가 남아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자리.

조금만 걸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한여름. 폭염주의보로 야외활동을 주의하라는 안내 문자가 울린다. 우린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게임 한 시간 반 전에 야구장에 도착했다. 여러 굿즈 숍을 돌고, 포토카드도 뽑고 여유있게 먹을 음식도 샀다.

경기장에 30분 전에 들어가 선수들의 몸 푸는 모습도 보았다. 오래된 구장이라 불편한 점도 있지만 우리 선수들의 얼굴이 전광판에 나오고 우리 팀 팬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에 신이 난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패.

물론 응원 팀이 우승하면 훨씬 재미있고 신이 난다. 경기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응원가를 부른다. 그러나 진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다. 지건 이기건 크게 손뼉을 치는 순간이 있고, 내 목소리가 선수에게 닿기를 바라며 힘껏 응원하는 순간이 있다. 집에서 볼 때와 다르게 그 순간을 더 깊이 즐기게 된다.
  
▲ 경기 전 몸 푸는 선수들  경기 전에 가면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
ⓒ 김지은
 
딸은 경기가 끝나면 TV로 볼 때나 직관을 하고 돌아올 때나 응원팀 오픈 카톡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내용을 중계한다.

"엄마, 오늘 잘 한 사람은 A, B밖에 없었대. C는 못했다고 난리야."

오픈 카톡방의 내용은 거침이 없다. 아이는 그 내용을 읽으며 같이 흥분한다. 그래서 난 아이에게 말했다.

"자기가 못한 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아. 그렇게 뭐라고 하지 않아도 말이야. 그럴 때일수록 응원이 힘이 되는 거야."

순간 회사 다니면서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실수를 할 때, 뭔가 잘 되지 않을 때, 그 상황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나 자신이다. 그럴 때 아예 주저앉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아이는 내 말에 그저 입을 삐죽 내밀며 대꾸한다.

"치. 엄마는 너무 관대해."
"너 엄마가 너에게도 관대하다는 생각은 안 하니?"

아이의 입이 쏙 들어갔다. '아,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쑥스러운 듯 웃는다. 아이와의 대화 후, 선수들의 마음을 유추해본다. 시즌 때는 월요일만 빼고 매일 경기가 있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질 때 그 마음이 어떨까. 혹시 선수들도 오픈 카톡방을 볼까. 누구나 슬럼프는 있고 열심히 해도 잘 안 풀리는 때가 있다. 매일 자신의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야구는 정말 잔인하다.

내 인생에도 찾아올 기회를 위해
 
▲ 이겼다!  훌륭한 투수들 덕에 짧은 이닝이 이어져 경기가 끝났는데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 김지은
 
두 번째 사직 야구장 직관. 8월 첫 일요일. 투수들의 활약이 대단해 짧은 이닝이 반복되고 7회까지 0:0의 점수가 이어졌다. 8회 말. 기다리던 안타가 나오고, 그 다음 타자의 희생타, 그리고 그 다음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른다. 두근거리는 순간. '아, 하나만 쳐라' 하고 바라다가 실망할 게 싫어 '에이, 이런 상황에서는 치기 어렵지' 하고 긴장감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적시 2루타! 0:0의 흐름을 끊고 1점이 났다.

선수는 가장 필요할 때 점수를 내기 위해 아주 많은 연습을 했을 것이다. 연습이 쌓이고 쌓여 빛을 발한다. 내 인생에도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야구를 보며 힘을 낸다. 필요할 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적시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이겼고 길었던 연패를 끊어냈다.

덥지만 더위를 잊는 순간이 좋아 야구장에 간다. 야구를 보면서 자꾸 내 인생을 돌아보고 다짐한다. 사유의 순간들이 있다. 그건 아마 한 경기 안에 양 팀 선수들의 노력과 땀이 응축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승패에 상관없이 오늘도 야구경기는 이어진다. 어제의 경기와 상관없이 오늘은 또 새로운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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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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