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으로 풀어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홍종선의 연예단상㉒]

홍종선 2023. 8. 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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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숙 감독 “정신은 옛것으로, 소재는 현대적으로…캐릭터마다 다른 색감으로 생명성 부여”
ⓒ창작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이유숙 무대의상 감독이 골빈당과 단이(맨 오른쪽)의 의상을 디자인한 도안 ⓒ 이하 PL엔터테인먼트 제공

첫인상이 중요하다. 무대에 막이 오르고 아직 어둑한 공간, 무대장치부터 얼른 살핀다. 조명이 점점 밝아지며 배우들이 보이면 그들이 노래하기 전에 연기하기 전부터,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의상을 빠르게 관찰한다.

맞다, 관찰 수준이다. 마치 의상과 무대장치의 완성도를 통해 오늘 공연의 품격을 가늠할 자신이 있는 것처럼 꼼꼼히 ‘스캔’한다.

뮤지컬 공연에서 스토리와 주제 의식이 중요하고, 그 이상으로 곡의 아름다움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와 가창력 그리고 매력 지수가 흥행을 가름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정성이다. 작품 완성을 위해 전 스태프가 쏟아부은 땀과 시간의 양이, 그 결과 빚어진 완벽한 무대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첫눈에 만나는 의상과 무대장치가 중요하다. 오늘 내가 볼 작품에 어느 정도의 땀과 시간이 부어졌는지, 그 정성의 결과 공연이 얼마나 내실 있게 완성됐는지를 한눈에 알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낙들의 치마, 조금씩 다른 회색빛과 색색 허리띠에 주목 ⓒ

최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인 창작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제작 PL엔터테인먼트·럭키제인타이틀)을 보았을 때도 열심히 무대장치와 의상부터 살폈다. 무대장치는 효율적으로 평범했고,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백성들이 시조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풀어내며 살 수 있어야 자유롭고 즐거운 세상인데, 시조가 금지당한 조선의 어느 때를 배경으로 가상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억압하는 권력가는 소수, 대다수 등장인물이 백성인 가운데 첫 무대는 민초들이 꾸몄다.

색색 비단옷도 아니고, 호화스러운 의상도 아니건만 색감이 곱고 캐릭터별로 디자인이 다채로웠다. 일일이 캐릭터 이름이 불리우지 않는 배역들이라 해도 저마다 다르게 입었다.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볼 법한 백성들의 생활복을 기본으로 하되 변주가 다채로웠다. 사내들은 저고리 모양이 앞이 트이기도 하고 현대의 V넥 상의처럼 막히기도 하고, 저고리에 조끼를 덧입히기도 하고, 같은 톤의 컬러라도 변화를 주었다.

치마를 뒤집어 입으면, 전혀 다른 느낌! ⓒ

아낙들은 밝은 회색빛으로 보이는 치마를 허리에 둘렀는데 치마 색이 묘하게 다르고, 허리춤 띠의 색깔이 저마다 다른데 마치 선명한 색감의 서양 벨트를 한 것처럼 무대에 생동감을 주었다. 비밀은 이후 무대에서 벗겨졌다. 심야에 한적한 데 몰래 모여 시조 잔치를 벌일 때, 아낙들의 치마는 본색을 드러냈다. 각기 다른 치마 색으로 눈길을 끌어서 보니, 인물별로 먼저 본 허리춤 색깔의 치마였다. 양면으로 입을 수 있게 만든 치마였고 일상에서는 무채색, 즐거운 시조놀이 때는 유채색을 겉으로 냈다.

회색 천의 두께를 살짝 얇게 해서, 겉을 무채색으로 입을 때 속의 유채색이 비치며 여러 색도의 회색 치마가 되도록 제작했다. 회색 치마일 때도 꾹 누른 마음속에서 형형색색 꿈들이 꿈틀거리듯, 억눌린 욕망 그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듯 유채색 허리띠가 빛났다.

단이의 부랑아 시절 ⓒ

출생과 성장에 반전이 있는 인물, 단이는 노숙자처럼 등장해 시조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는데 이를 허리띠 단 하나로 표현했다. 푸른 빛 모시를 기다란 도령조끼처럼 입었는데 처음엔 넝마주이의 옷처럼 보이더니 허리띠 하나 척 매자 깔끔하고 쌈박해졌다. 백성들의 행복을 되찾고자 활약하는 비밀시조단 ‘골빈당’의 십주, 호로쇠, 기선, 순수와 당장 하나 되어도 꿀리지 않는 의상이 된다.

진이가 규수일 때(오른쪽), 그 앞에 선 홍국의 차가운 핏빛 의상 ⓒ
백성을 억압하는 홍국을 비롯한 대감들의 무채색 관복, 그러나 선은 그 권력의 위용만큼이나 화려하다. ⓒ

계급과 신분에 비밀이 있는 진이는 양갓집 규수와 선머슴을 오가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잊지 않게 고운 색감과 자수를 활용해 의상들이 디자인됐다. 본인이 시조대판수면서도 시조를 금하는 권력 서열 2인자, 아니 실질적으로 조선의 왕 노릇을 하는 홍국과 그를 따르는 대감들의 관복은 진줏빛 비단에 허리춤 아랫부분을 촘촘하게 주름잡아 마치 플리츠 롱스커트의 원피스를 입은 듯 화려하게 연출했다.

구상과 실재(아래) ⓒ
의상부터 스웨그(swag, 대중문화에서 자기만족과 자아도취, 자유로움과 가벼움)가 넘쳐나는 골빈당. 이유숙 감독은 조선의 위기를 알리는 그들에게 척박한 흙색을 입혔다.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의상의 하이라이트는 20년 만에 부활한 대국민 조선시조자랑 대회에서 펼쳐진다. 참가팀마다 개성 넘치게, 부르는 시조의 곡조와 가사 분위기에 맞게,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패턴과 컬러지만 한복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이 놀렸다. 영화 ‘300’ 속 스파르타 군인들의 박력과 패기가 연상되는 의상도 있고, 영화 ‘황진이’의 기생들이 3인조 걸그룹을 결성한 느낌의 파티복도 있고, 공연 무대에서 직접 확인했으면 하는 각양각색의 의상들이 등장한다.

공연을 보노라면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 사람 아닌 주인공이 있으니, 의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인다. 작은 무대를 더 커 보이게 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가창을 더욱 빛나 보이게 하는 뒷받침 역할을 충분히 함과 동시에 의상 자신도 주인공으로 돋보인다. 뮤지컬 ‘스웨이에이지 외쳐, 조선!’을 하나의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의상 디자이너 이유숙 ⓒ

이유숙 의상감독은 9일 데일리안에 “저의 철학은 정신은 옛것을 쓰되 표현과 감각, 소재는 현대성을 지니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을 과감하게 진화시켜 재창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바탕이 되는 자신의 예술 철학을 먼저 피력했다.

“창작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춰진 생명성까지 드러내어 새로운 상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 나라의 위기를 알리는 골빈당에게는 척박한 흙의 색을 부여했고, 양반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시들어가는 초목의 색을 입혔습니다. 또, 자유롭게 시조를 읊는 미래를 꿈꾸는 맑은 영혼의 단이에게는 건강한 쪽색, 허황된 욕심으로 파국에 이르는 홍국은 차가운 피의 색을 드리웠습니다.”

인물별로 다르게 표현한 색감에 관해 설명한 이유숙 의상감독은 “선은 영혼의 움직임이며, 색은 스며들고 퍼져나가는 생명의 움직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보신다면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라고 밝혔다.

작품을 총괄한 송혜선 프로듀서는 “작품을 기획할 때부터 이유숙 의상감독을 희망했습니다. 창작뮤지컬은 맨땅에서 시작하는 고된 작업일 수밖에 없는데 기꺼이 수락해 주셔서 감사했고, 크지 않은 예산에도 작품성 있는 의상으로 무대를 빛내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라고 전했다.

하회탈놀이 느낌이 나는 골빈당의 공연. 또 다른 느낌으로 변주된 골빈당 패션 ⓒ

세상의 주인, 뮤지컬의 주인공은 백성. 그들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의상 ⓒ

프랑스 파리 ESMOD에서 수학하고 국가장학금 해외연수자로 선정되어 프랑스 국립극장 무대의상을 연수한 이유숙 의상감독은 지난 20년 동안 연극 ‘오레스테스’(동숭아트센터)를 시작으로 김민기 연출의 뮤지컬 ‘개똥이’ ‘의형제’ ‘지하철 1호선’(이상 학전), 마당놀이 ‘심청’(극단 미추), 연극 ‘김홍도’ ‘맥베스’(이상 국립극단) 등의 무대의상을 맡았다.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린 오페라 ‘라보엠’ ‘아랑’과 국립국악원의 ‘현의 노래’, 배우 박정자의 낭독공연 ‘꿈속에선 다정하였네’에서는 무대의상 감독, 발레협회가 국립대극장에 올린 창작발레 ‘처용’의 무대미술 감독 및 무대의상 감독을 역임했다.

종종 영화에도 의상감독으로 참여했는데 영화 ‘미인도’로 대종상 의상상 후보에 올랐고, ‘그대 어이가리’로는 오대륙영화제에서 최우수 의상상을 받았다. 지난 2014년에는 인천아시안게임의 개폐회식 의상감독을 맡아 한국의 아름다움과 45억 아시아인의 꿈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의상 작품으로 자신의 현주소를 말하는 이유숙 감독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서울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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