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이스카우트 대표의 일침 "철수 결정, 폭염 아닌 위생상태"
[임병식 기자]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8월 1~12일)가 열린 지난 주, 중국 쓰촨(四川)에 있었다. 쓰촨성 청두(成都)는 제31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7월 28~ 8월 8)가 한창이다. 자연스럽게 새만금 잼버리와 청두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비교하게 됐다.
두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린 첫 국제 행사다. 개최 시기(8월)와 개최 일자(12일), 참가 연령(청소년과 대학생), 참가국(158개국, 113개국) 또한 공교롭게 겹친다. 이뿐 아니다. 양국 정상이 개막식과 개영식에 참석한 것도 닮았다. 시진핑 주석과 윤석열 대통령은 각각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 규모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주목도를 높였다.
한국 부안과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행사 준비와 진행 과정은 판이하다. 한쪽은 정부가 주도해 성공적인 대회라는 평가를 얻은 반면 다른 한쪽은 엉성한 진행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우리는 줄곧 사회주의 중국의 경직성 조롱하며 우리 체제를 과신해왔다. 중앙집권적 통제는 창의력을 말살하고 무능력을 초래한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접한 사회주의 중국은 우리가 얕볼 만큼 간단치 않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거꾸로 배워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일사불란함을 선호하는 윤석열 정부는 출범 1년 3개월 동안 사실상 국제행사를 방치한 셈이다.
▲ 유니버시아드대회 청두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리고 있는 룽취안 수영경기장 주변 |
ⓒ 임병식 |
중국은 청두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든 행정력을 쏟아부었다. 파란 청두 하늘은 상징적이다. 평소 청두는 대기 오염이 심각하다. 베이징에 비해 오염원은 적지만 분지라서 대기 흐름이 원활치 않다. 중국 정부는 대회를 앞두고 오염원을 줄이는 데만 500억 원을 투자했다. 보조금을 지급해 공장 가동을 단축하고 차량 5부제를 시행했다. 이 때문에 주경기장이 위치한 청두는 물론이고 인접 도시는 가을 하늘을 연상케 했다.
또 수영과 수상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롱취안(龍泉) 주변 도로 역시 빠른 시일 내 개통했다. 획일적 통제 때문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불편을 감수하려는 시민들 의지가 어우러진 결과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어떠한가. 대회 유치이후 6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또 1000억 원이 넘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 전북도와 잼버리조직위 인사들은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핑계로 그동안 99차례에 걸쳐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성적표는 참담하다.
폭염과 날씨를 탓할 게 아니다. 이미 태풍과 폭염, 폭우 대비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허다했다. 국정감사는 물론이고 필자가 참여하는 총리실 산하 새만금위원회에서도 여러 차례 폭염 대비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특별법을 제정하고, 장관급 공동위원장만 3명 참가했음에도 컨트롤 타워 부재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부실한 운영(안전, 위생 등)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미국 파견단 철수 결정은 폭염이나 폭우가 아닌 위생 상태였다"
8일자 '포브스지'에서 미국 보이스카우트 최고경영자 로저 모스비(Roger Mosby)는 "미국 파견단 철수 결정은 폭염이나 폭우가 아닌 위생 상태였다"고 강조했다. 보이스카우트연맹(BSA) 국제 커미셔너인 루 폴슨(Lou Paulson) 또한 "이 결정은 가볍게 내려진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미국 파견단 의료 책임자 제프 마이어스 박사도 궤를 같이한다. 그는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과 배설물이 있는 샤워장은 끔찍하고 개탄스러웠다. 만일 미국이라면 보건 비상사태로 선포 될 것"이라고 했다. 허술한 청소년 보호와 불충분한 샤워 시설도 문제였다. 그는 청소년과 성인이 샤워 시설을 공유하는 건 BSA 청소년 보호 정책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전북연맹이 조기 퇴영하면서 거론한 성범죄 부실 대응이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 잼버리 대회장 점검 나선 한덕수 총리 한덕수 국무총리가 8월 4일 오후 전북 부안군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을 찾아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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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보도가 아니라도 이번 대회는 위생과 식사·숙박에서 총체적 부실을 드러냈다. 대회 준비기간만 6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치른 나라라고 믿기지 않는다. 추후 대회 개최지와 개최 시기를 어떻게 결정했는지는 반드시 규명할 문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에서 8월 폭염 아래 4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야영을 한다는 건 무리한 발상이다. 치적을 쌓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닌가 싶다. 전북은 1982년 8월 무주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잼버리를 개최한 바 있다. 산림이 우거진 덕유산을 제쳐놓고 새만금을 선택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데 주력해야하건만 엉뚱한데 헛심을 썼다. 잼버리를 핑계로 인프라 구축과 '예산 따내기'에 몰두하고, 외유성 출장을 다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99차례에 달하는 국외 출장 중 외유성 출장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보도는 이를 뒷받침한다. 새만금 잼버리에는 158개국 청소년 4만3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자신들 나라에서 지도자 역할을 담당할 미래 인재다. 참가자들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돌아간다면 훌륭한 외교자산이 될 수 있다. 비록 태풍 '카눈'으로 전원 조기 철수를 결정했지만 대부분은 남은 일정을 한국에서 소화할 계획이다. 이미 영국과 미국 대원들은 수도권 일대에서 한국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 쓰레기와 재활용품 가득 찬 잼버리 대회장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는 전북 부안군 잼버리 야영장 내에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가득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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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주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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