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보면 신생 기업?…‘네임 워싱’ 주의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8. 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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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상장사 64곳 사명 변경

‘롯데웰푸드’라는 회사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롯데제과가 지난 4월 바꾼 새 사명이다. 롯데제과는 1967년부터 56년간 쓰던 간판을 교체했다.

롯데제과가 롯데웰푸드로 이름을 바꾼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난해 7월 롯데푸드와 합병이 그 계기였다. 제과라는 이름이 롯데푸드의 간편식, 육가공, 콩기름 등을 포괄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각을 반영했다. 여기에 최근 건강식 추세에 맞춰 ‘Well-being’ 의미를 담았다. 또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문 이름을 선택했다.

올해도 간판을 교체한 기업이 적지 않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반기 64개 상장사(코스피 20곳, 코스닥 44곳)가 상호를 바꿨다. 상호를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경영 목적과 전략 제고’로 32곳이었다. 회사 이미지 제고(19곳), 사업 다각화(13곳), 회사 분할·합병(8곳)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롯데케미칼이 인수한 동박 제조 업체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 3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변경했다. 기존 사명에 2차전지 사업 등을 포괄하는 의미인 에너지를 포함하며 차세대 소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삼양식품그룹은 그룹과 지주사 CI를 ‘삼양라운드스퀘어’로 바꿨다. 식품·과학이 결합된 영역을 개척하는 기업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사명과 CI를 변경했다는 게 삼양식품 측 설명이다.

KG모빌리티가 된 쌍용차는 KG그룹에 인수되며 이름이 바뀐 경우다. 쌍용차는 장기 파업, 법정 관리, 회생 절차 등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곽재선 KG모빌리티 회장은 지난해 12월 사명 변경을 공식화하며 “쌍용차라는 이름에 팬덤이 있지만 아픈 이미지도 남았다”며 사명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쌍용차 역사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KG그룹 계열사가 됐다는 점을 알리는 동시에, 쌍용차의 어두운 기억을 지우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다.

피인수 기업의 명성이 높을 때는 한동안 과거 이름을 유지하기도 한다. 지금은 미래에셋증권으로 통합된 미래에셋대우가 그렇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2016년 대우증권을 흡수합병하며 ‘대우’라는 이름을 단박에 없애지 않았다. 국내 자본 시장에서 ‘대우’의 위상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미래에셋그룹이 사명에서 ‘대우’를 완전히 떼어낸 건 합병 뒤 5년이 지난 2021년이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은 사명을 HD현대그룹으로 바꿨다. ‘HD’에는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HD현대 제공)
기업 이미지 변신을 위해 사명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은 사명을 HD현대그룹으로 바꿨다. ‘HD’에는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는 공식적인 의미일 뿐 실상은 ‘중공업’을 빼내 ‘조선 전문 기업’ 타이틀을 벗기 위한 목적이 크다. 지주사 HD현대와 조선 부문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을 이끄는 정기선 사장은 “세계 1위 십빌더(Shipbuilder·조선사)에서 인류를 위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퓨처 빌더(Future Builder·미래 개척자)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기존 조선, 중공업 이미지를 벗고 ‘첨단 기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사명부터 바꿨다는 의미다.

사명을 ‘HL그룹’으로 바꾼 한라그룹도 비슷하다. 한라의 약자면서 ‘Higher Life’ 즉 더 높은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룹명 변경과 동시에 계열사 사명도 줄줄이 바꿨다. 지주사 한라홀딩스는 ‘HL홀딩스’, 자동차 부품 계열사는 ‘HL만도’, 건설사 한라는 ‘HL디앤아이한라’로 각각 변경했다. 지난해 말 설립한 자율주행 전문기업 사명도 ‘HL클레무브’로 정했다.

국내 유일의 동제련소를 운영하는 LS그룹 계열사 LS니꼬동제련은 최근 LS MnM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MnM은 기존의 ‘금속(Metals)’ 사업에 ‘소재(Materials)’ 사업을 추가해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 회사는 LS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배전반(배터리, 전기차, 반도체)’의 소재 사업을 담당한다.

퓨처엠 등 사업 확장하며 변경

‘제대로’ 신사업 나서면 주가 ‘쑥’

회사 간판 교체는 신중해야 할 작업이다. 오랜 기간 쌓아온 정체성을 바꾸고 인지도에 영향을 줘서다. 원칙적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면 사명 변경이 불러올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 이름을 바꿀 때 대개 지배구조나 사업 포트폴리오 변경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사명 변경이 주가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5월 말 ‘한화오션’으로 새 간판을 단 대우조선해양은 이후 주가가 30% 가까이 뛰었다. 조선업계 수주 물량이 크게 늘어난 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이와 함께 방산과 에너지 부문에 강점을 지닌 한화그룹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투자자가 한화오션 주식을 매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화오션은 사무직권 직원 연봉을 기존 수준보다 평균 1000만원 인상하는 파격적인 안을 내놓기도 했다.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수준의 임금 체계를 갖춰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에서였다.

또한 한화오션은 해군의 울산급 호위함 배치3(Batch-Ⅲ) 5·6번함 건조 계약 입찰에서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우선협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우조선 시절인 2018년 이후 군함 수주가 한 건도 없었다. 한화오션으로 사명을 바꾼 이후의 첫 성과였다.

사명 변경 이후 주가가 눈에 띄게 오른 기업이 포스코퓨처엠이다. 올해 3월 포스코케미칼에서 이름을 바꿨다. 이름을 바꾼 이유는 명확하다. 최근 가장 ‘핫’한 영역으로 떠오른 2차전지 사업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퓨처엠은 ‘퓨처머트리얼(Future Materials)’의 줄임말이다. 또한 미래와 소재(Materials), 변화(Movement), 매니지먼트(Management)의 첫 글자인 ‘M’을 결합해 미래 소재 기업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3월 주가 변경 이후 2배 넘게 올랐다.

이번 사명 변경은 미래 소재를 강조하는 동시에 ‘철강’으로 상징되는 포스코의 강력한 이미지를 좀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최근 친환경이 강조되며 철강 산업이 철 지난 전통 산업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다.

윤성용 경성대 회계학과 교수는 ‘상장 기업의 상호 변경과 주식 가치와의 관련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 증권 시장에서 상호 변경 공시는 공시 한 달 전보다 약 12%의 초과 수익률을 나타내는 효과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단 최근 데이터가 아닌 1996~2005년까지 상호를 변경한 기업이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김지홍 연세대 명예교수가 2002년 발표한 논문 ‘상호 변경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는 “단순 상호 변경이나 인수합병에 따른 변경은 주가 수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국제화·첨단 이미지를 준다든가 새 사업 목적을 추가하는 경우 주가가 유의미하게 올랐다”고 분석한 내용이 나온다. 2012년 발표된 논문 ‘코스닥 시장에서 상호 변경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에서 박정미 원광대 교수는 “(기업 경영 관련) 트렌디한 이미지를 주는지에 따라 투자자가 느끼는 신호가 달랐다”고 짚었다.

SK이노베이션·에코플랜트

업종과 무관한 이름 선택도

대기업 중 업종과 무관하게 이름을 짓는 경우도 흔하다.

SK이노베이션은 ‘혁신’이라는 의미를 사명에 담아 미래 지향적이면서 유연한 회사를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이 거느린 주요 자회사 사명도 복잡하다. 정유사 SK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업체 SK온을 비롯해 SK지오센트릭, SK엔무브, SK어스온 등 다양한 자회사를 보유했다. SK지오센트릭은 종합석유화학, SK엔무브는 윤활유, SK어스온은 석유 개발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사명만 봐서는 좀처럼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종잡기 어렵다. 또 다른 SK그룹 계열사 SK건설도 건설업 이미지를 벗기 위해 ‘SK에코플랜트’로 사명을 바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업 이름에 에너지, 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며 “과거에는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환경에 피해를 주는 기업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 경계가 허물어지는 만큼 기존 사업 영역에 제한을 받지 말고 마음껏 신사업을 펼쳐야 한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대상그룹 계열사 대상에프앤비는 사명을 ‘대상다이브스’로 변경했다. ‘뛰어들다’를 뜻하는 단어(Dive)를 더한 사명으로 식품 기업 이미지와는 무관하지만, ‘고객의 일상 속 모든 곳에서 함께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라인 자회사인 라인프렌즈는 IPX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다양한 지식재산권(IP) 경험(eXperience)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캐릭터 사업 중심의 기존 라인프렌즈에서 디지털 IP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도쿄통신공업’서 ‘소니’로

이름 바꿔 글로벌化 성공

해외에서도 사명 변경으로 효과를 톡톡히 본 사례가 적지 않다. 이름을 바꿔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대표 기업이 일본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다. 이 회사의 새로운 이름은 ‘소니(SONY)’다. 1956년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단순한’ 이유로 이름을 바꿨는데 대박이 났다.

미국 유통 업체 월마트는 공식 법인명인 ‘월마트스토어즈’에서 스토어즈를 없앴다. 오프라인 매장을 뜻하는 ‘스토어즈’를 삭제하며 전통 오프라인 매장에 국한되지 않고 온라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스타벅스커피가 스타벅스로, 던킨도너츠가 던킨으로 바꾼 것도 유사한 사례다.

해외 기업 중 사명을 바꾸고 아직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메타’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2021년 페이스북 사명을 바꿨다.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았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시원치 않다. ‘애플’ ‘월마트’ 등 사명 단순화의 추세가 있기는 하지만, 메타라는 이름은 단순하다기보다 ‘모호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소비자가 기억을 못할 뿐 아니라,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시장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메타는 생각만큼 수익을 잘 내지 못하며 최근 직원 2만명을 내보냈다.

이름 바꿔 이미지 ‘세탁’

코스닥 적자 기업 다수

다만 이름을 바꿔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곳은 잘 가려내야 한다. 악화된 실적을 가리기 위한 사명 변경에 나선 기업이 적잖다. ‘쌍용차 인수 먹튀’ 의혹을 받는 에디슨EV는 사명을 ‘스마트솔루션즈’로 바꿨다. 쌍용차 인수 기대감에 2021년 한 해 주가 상승률이 무려 60배에 달했지만 지금은 거래가 정지돼 상장폐지 기로에 섰다. 자본잠식률 57%를 기록해 스마트솔루션즈의 회생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심지어 사명을 두 번 이상 바꾼 코스닥 업체도 많다.

스포츠 관련 NFT(대체불가토큰) 사업을 하는 블루베리NFT는 사명을 블레이드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이 회사의 전신은 한때 ‘세계 1위 콘돔 제조사’로 유명했던 유니더스다. 2017년 이후 신규 사업에 뛰어들고 인수합병(M&A)을 하며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바이오제네틱스, 경남바이오파마를 거쳐 2021년 블루베리NFT라는 간판을 달았다가 또다시 사명을 변경했다. 물류 장비 업체 수성이노베이션은 EV수성, 수성샐바시온으로 지난해만 두 번 상호를 바꿨다.

일월지엠엘로 사명 변경을 예고한 유테크는 2021년과 2022년 잇따른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올해도 감사보고서 제출이 지연됐다. 지난해 6월 75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린라이프사이언스로 사명을 바꾸는 KPX생명과학은 지난 2020년부터 3년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명 변경이 잦거나, 상호와 관련한 사업 경험과 실적이 없는 기업 투자에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본부장은 “AI나 2차전지 등 떠오르는 테마에 편승하려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사명 변경이 기업의 부정적인 요인을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시가총액이 너무 작은 기업은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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