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큰돈 들여 해외 가던 ‘방사선 미사일 치료’ 국내서도 물꼬

민태원 2023. 8. 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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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내분비종양’ 환자 희소식
한국원자력의학원 핵의학과 임일한 박사가 최근 국내 최초로 진행된 임상시험을 통해 최신 방사성 의약품 ‘악티늄’ 치료를 받은 신경내분비종양 환자의 PET CT영상을 보며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임상시험으로 그간 해당 치료를 받으러 해외 원정을 가야 했던 중증 환자들이 국내 정식 허가되지 않은 의약품이라도 시급히 쓸 수 있도록 한 ‘치료 목적 사용 승인’ 혜택을 받을 길이 열렸다.

큰 증상 없이 발병하는 희귀암
기존 치료제 ‘루테타라’ 안될 때
마지막 희망 ‘악티늄’ 표적 치료

그동안 임상 데이터 없어 불허
원자력의학원 임일한 박사팀
국내 첫 임상시험… 치료 길 열려

큰 돈을 들여 독일 인도 등으로 해외 원정 치료를 떠나야 했던 희귀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이 국내에서 효과적인 방사성 의약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길이 열렸다. 기존 치료법이 잘 듣지 않거나 계속 진행돼 더 이상 기댈 데 없던 처지의 환자들에게 차세대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을 이용한 표적 치료 임상시험이 국내 의료기관에서 처음으로 이뤄졌다. 그간에는 해당 의약품에 대한 임상시험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 목적 사용(동정적 치료)’ 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신경내분비종양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앓으면서 알려진 암이지만 인지도는 높지 않다. 호르몬을 생성하는 몸 속 신경내분비세포에서 생긴다. 전체 신경내분비종양의 65~75%는 위장관을 포함한 소화기관에서, 나머지는 폐 등 호흡기에서 발생한다. 한국인의 경우 직장(대장)신경내분비종양이 가장 많고 위·십이지장·췌장 등에도 발생이 잦은 편이다.

대한종양내과학회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신경내분비종양 환자가 최근 10년 사이 국내에서 10배 가량(2011년 250명→2020년 2500명)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흔히 발생하는 연령인 50·60대뿐 아니라 최근엔 35세 이하 젊은 층에서도 발생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직장이나 위 신경내분비종양은 별다른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 내시경 검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또 복통이나 구토 설사 변비같은 일반 소화기 증상으로 나타나 진단이 어렵고 상당수는 진행된 상태로 발견된다.

현재 신경내분비종양에서 수술, 호르몬 치료 등 기존 방법으로 반응이 없거나 계속 진행되는 경우 ‘루테타라’라는 방사성 의약품이 허가돼 있다. 이 치료제마저 듣지 않으면 더 효과가 개선된 것으로 알려진 악티늄 치료가 최후 수단으로 고려된다.

치료 방사성 의약품은 신경내분비종양 표면에서 많이 발현되는 ‘소마토스타틴 수용체’를 표적해 선택적으로 흡수되는 특성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활용한 치료제다. 이를 정맥 주사하면 해당 종양에만 들러붙어 방사선을 내뿜어 파괴한다. 정상세포 손상은 최소화하고 암 파괴 효과는 높아 일명 ‘방사선 미사일 치료’로 불린다. 루테타라는 소마토스타틴 유사 물질과 방사성 동위원소 ‘루테슘’을 결합한 약품으로, 정식 승인을 받아 2021년 3월부터 건강보험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루테타라 보다 효과가 탁월한 악티늄 치료는 지금까지 국내 임상시험이 진행되지 않아 ‘치료 목적 사용’도 불가능했다. 제약사들은 고가의 원료, 희귀암의 낮은 시장성 등을 이유로 개발을 꺼려왔다. 국내 환자들은 고액을 지불하고 규제가 덜한 해외 국가로 눈을 돌려야 했다.

알파선을 방출해 ‘알파 핵종’으로 불리는 악티늄은 기존 베타선 방사성 의약품(루테슘, 요오드 등) 보다 질량이 크고 50~100배 고에너지가 치료에 사용돼 종양의 DNA 이중나선구조를 효과적으로 파괴한다. 또 방사선 투과 거리가 짧아 정상세포 손상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방사선 진료기관인 한국원자력의학원이 지난해 11월 식약처로부터 연구자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이어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이 간·뼈에 전이돼 호르몬, 루테타라 등 치료에도 암이 진행한 60대 남성에게 지난 6월 초 국내 최초 악티늄 치료를 시도했다.

치료를 주도한 핵의학과 임일한 박사는 31일 “치료 4주 후 찍은 영상검사에서 간 병변의 종양 섭취가 줄었고 혈중 종양 표지자도 감소된 것을 관찰했다. 통상 치료 반응이 있을 때 4회 정도 악티늄 치료를 하는데, 이번의 경우 1회 치료로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의학원은 모두 10명 대상 임상시험을 계획 중이다.

다만 최근 악티늄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임 박사는 “악티늄은 그간 독일의 EU소속 연구소에서 주로 공급받았는데, 내부 사정으로 올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향후 임상연구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악티늄 임상시험이 시작됨으로써 ‘치료 목적 사용 승인’이 가능해져 환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번거로움 없이 더 빠른 치료 기회를 갖게된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임상 연구인 경우 별도의 환자 부담금은 없으나, 치료 목적 사용일 땐 꽤 큰 비용(1회 2100만~2200만원)을 내야 한다.

임 박사는 “신경내분비종양의 악티늄 치료 효과 확인을 계기로, 다음 달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전체 전립선암의 5~10%)’ 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국내 최초로 시행하는 등 다른 암에도 적용 범위를 넓힐 것”이라면서 “악티늄 치료제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원료 물질(라듐) 확보를 통한 자체 생산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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