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올팍과 골든구스의 아티스트 정신
기괴한 상상력, 남다른 운율과 미학을 담은 지올 팍의 음반은 예술과 파격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으며 장안의 화제가 됐다. “팝스타가 되고 싶어요.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놀이동산도 만들고 싶고, 재밌는 일을 맘껏 하고싶거든요.” 그는 올해 더 제멋대로 만든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Q : 오늘 화보 촬영하며 골든구스의 새 옷을 잔뜩 입었어요. 가장 맘에 드는 건 뭐예요?
A : 뮤지션으로서는 저니 컬렉션의 옐로 티셔츠, 골든 컬렉션의 다크 블루 더블브레스트 블레이저요. 티셔츠는 핏한 옷을 즐겨 입거든요. 요즘 부쩍 공적인 자리에 갈 일이 많아졌는데, 재킷은 단정하게 입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 골든구스 매장에 방문할 때도 입었어요. 일상적으로 입을 옷이라면 골든 컬렉션의 스트라이프 티셔츠. 펑키한 매력도 있고, 아티스트들이 무대에서 입을 법한 옷이라 마음에 들어요.
Q : ‘골든구스’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나요?
A : 세련된 빈티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정통성을 중요시하는 브랜드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이탈리아의 장인이 손으로 만든 제품이 많다고 들었어요. 슈퍼스타, 스타단, 프란시 등 유명한 스니커즈도 멋지고요.
Q : 그럼 골든구스가 지올 팍을 선택한 이유는 뭐라 생각해요?
A : 그러게요. 이유가 뭘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Q : 특별한 뮤지션이라서? 게다가 요즘 기세가 좋은 아티스트기도 하고요.
A : 넙죽 받아들이기에는 낯간지럽기는 한데… 감사합니다.(웃음)
Q : 최근 브루노마스 내한 공연 애프터 파티의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톱스타들의 상징이기도 한 모창 가수 ‘지올팥’도 나왔어요. 인기를 실감해요?
A : 길거리를 다닐 때 실감해요. 알아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제 부모님에게 “아들 사인 좀 받아줘”라고 하는 분도 꽤 있어요. 감사한 일이죠. 집을 나서면 언제나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건 불편하기도 해요. 슬리퍼 끌고 나갔다 마주치면 민망할 때도 있고요.(웃음)
Q : 연예인의 일상적 불편함은 유명세라고들 하잖아요. 처음 가수가 되겠다 마음먹었을 때 이런 순간을 상상해봤을 법도 한데요.
A : 아직 제가 상상하던 스타의 삶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한 가수의 삶을 상상했거든요. 겪어보니 다르게 느껴지는 건, 유명해진 만큼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거?
Q : 어떤 걸 조심해야 한다고 느끼나요?
A : 유명한 뮤지션이 되면 생각을 가감 없이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니 조심하게 돼요. 몇몇 해외 뮤지션이 안티팬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걸 보며 자신만의 사상이 있는 아티스트라 생각했고, 저도 그런 뮤지션이 되고 싶었거든요. 물론 어느 정도의 도덕성과 윤리 그리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Q : 의도와 별개로 오해를 사게 되는 상황이 있었나요?
A : 4개월 전 발표한 ‘CHRISTIAN’이 낳은 일련의 상황이 그런 예시가 아닐까 해요. 곡과 뮤직비디오의 내용이 오해를 사기도 했고요. 같은 의미로 마미손 형은 제가 부럽다고 했어요. 저는 “사람들이 이 노래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도 괜찮을까요?” 물었는데, 형은 “뮤지션이 좋은 노래를 낼 수는 있지만, 음악으로 논쟁거리를 던지는 아티스트는 극히 드문 거야”라고 했어요. 이후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Q : 얼마 전까지 ‘CHRISTIAN’의 뮤직비디오를 편집한 ‘쇼츠’가 밈처럼 유행했어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유튜브 쇼츠에 지올 팍만 나온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촬영일 기준 공식 뮤직비디오 영상의 조회 수는 약 967만을 돌파했고요. 돌아보면 어때요?
A : 놀라운 건 제 유튜브에는 한두 번밖에 안 떴다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사람들은 유튜브에 들어가면 ‘CHRISTIAN’이 엄청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재밌죠.
Q : 거대 자본을 투자한 뮤직비디오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국내 신예 뮤지션의 음악이 등장하니 물음표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해요.
A : 노래가 유명해지는 걸 보며 처음에는 얼떨떨했죠. 그러다 사람들이 제 노래가 바이럴 마케팅을 했다는 것에 집중하더라고요. 회사가 뮤지션의 신곡을 홍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엄청난 자본을 투자한 마케팅을 한 건 아니고, 몇몇 음악 커뮤니티에 게시물을 올리거나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홍보를 열심히 한 거예요. 그게 터진 거죠.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그걸 바이럴 마케팅이 아닌 ‘음원 사재기’처럼 여기더라고요. 아쉽죠. 물론 저라도 원치 않는 노래가 유튜브에 자주 뜨면 짜증 날 것 같긴 해요. 그 마음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저희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조작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회사도 아니고, 어떤 ‘치트(cheat)’를 쓴 건 아니에요.
Q : 기독교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다마스커스 TV〉의 ‘CHRISTIAN’에 대한 해석 영상도 봤나요?
A : 저도 좋아하는 채널이에요. 제 의도에 가장 근접하게 해석했더라고요. 재밌는 건 기독교인 중에서도 젊은 목사와 선교사는 대체로 ‘CHRISTIAN’을 재밌게 보고 해석했다면, 더 윗세대 목사와 선교사 중에는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사이비이자 악마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쓰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CHRISTIAN’은 이런 현상을 이야기한 거예요. 외적인 것만 보고 그 뜻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통쾌했죠.
Q : ‘CHRISTIAN’을 포함해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1〉은 노력한 만큼 정당한 성과를 낸 음반인가요?
A : ‘CHRISTIAN’만 큰 사랑을 받은 건 아쉬워요. ‘MAGIC!’이라는 다른 타이틀곡은 큰 주목을 못 받았거든요. 두 타이틀곡 모두 사랑에 대한 노래인데, ‘CHRISTIAN’은 인류애와 어떤 사회적 안타까움을 이야기했고, ‘MAGIC!’은 연인 간의 사랑 등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했어요. 앨범 전체적으로 보면 어린아이 같던 제가 점점 시간이 지나며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 같은 마음에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에요. 곧 나올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2〉도 마찬가지고요.
Q :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2〉는 어떤 앨범인가요?
A : 제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에 더 가까운 음반이에요. 록의 요소도 있고, 개구지고, ‘팝’스럽거든요. 파트 1보다 파트 2에 더 아끼는 곡이 많아요. 제 취향에 맞는 곡들을 추렸어요. 파트 2는 올해가 가기 전에 나올 거고, 빠른 시일 내 ‘QUEEN’이라는 곡을 먼저 공개할 거예요.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포함해 모든 수록곡인 8곡의 뮤직비디오를 다 찍었어요.
Q : 음악을 만들 때 메시지, 운율, 비주얼 중 어떤 게 먼저인가요?
A : 제목에 해당하는 단어를 먼저 정해요. 그리고 그 단어가 귀에 확 꽂힐 수 있게 발음하기 좋은 멜로디를 구상하죠. 이후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만들고, 가사와 비트를 동시에 작업해요. 그다음이 비주얼 작업이에요. 음, 생각해보니 제목을 정할 때 시각 요소 몇 가지를 구상해두는 편이라 비주얼이 먼저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Q : 그런 시각 요소를 함께 작업하는 ‘신드롬즈’의 수장이기도 하죠?
A : 신드롬즈는 매력적인 비주얼을 제작하는 그룹이에요. 제게 가족 같은 이들이 모인 집단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동명의 브랜드를 론칭하려 준비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의류 브랜드처럼 보일 텐데, 저희가 지향하는 건 ‘테크 회사’예요. 아직 구상 단계라 다 말할 수는 없어요.
Q : 모든 가사를 영어로 써요. 댓글에 “팝송 같다”라는 칭찬도 더러 있던데, 이런 의견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A : 의도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어 노래를 써본 적 없고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거든요. 제게 영향을 준 뮤지션이 모두 영어로 가사를 쓰기도 했고, 제가 지향하는 건 ‘팝스타’라 영어를 쓰는 게 더 자연스러워요. 제 노래를 세계적으로 알리기에 영어 가사가 더 유리하기도 하고요. 제가 영어 가사를 고집하는 게 사대주의 아니냐는 의견도 있던데, 저는 그럼 “영어가 한글보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가요?”라고 반문하고 싶어요.
Q : 뮤지션으로서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은 마음인가요?
A : 그럼요. 더 유명해지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죠. 제 말과 행동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세상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Q : 지금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지올 팍은 전략적으로 움직였나요? 혹은 즉흥적?
A : 반반인 것 같아요. 특정 타이밍을 기다린 적도 있고, 좋은 노래를 자주 내다보면 잘될 거라 믿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취향은 주관적인 거고, 일에 대입하면 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신드롬즈 친구들은 저희가 만드는 예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그 돌파구를 독특한 비주얼로 정한 거예요. 그런 전략이 통한 거죠. ‘CHRISTIAN’의 후렴에 맞춘 엉성한 춤은 제가 짠 거예요. 대충 추고, 좀 비꼬는 느낌을 내고 싶은데, 전문적인 춤이 아니길 바랐거든요.
Q : 지금까지 발매한 곡 중 유독 애정이 가는 노래는 뭔가요?
A : 제가 만든 음악을 들으며 만족한 적이 드물어요. 그나마 맘에 드는 곡은 다음 앨범인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2〉에 있을 것 같아요.
Q : 반대로 마음에 안 드는 노래도 있나요?
A : 싫은 건 많아요. 일단 ‘CHRISTIAN’. 왜요? 너무 많이 불렀고, 이제 재미가 없어요. 질린 거죠. 사실 재미로 만든 곡이거든요. ‘뮤직비디오는 이렇게 만들면 웃기겠다, 잘될 것 같다’ 이런 가벼운 생각으로 앨범 구성 막판에 끼워 넣은 트랙이거든요. 예전에 10CM 선배가 “우리는 ‘아메리카노’라는 노래로 떴지만,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다. 큰 애착이 없던 노래다”라는 식의 말을 한 적 있는데, 제게 ‘CHRISTIAN’이 그런 노래가 아닐까 해요.
Q :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곡이 지올 팍을 세상에 알린 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A : 그러니까요. 그 덕에 새 앨범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여러 개 찍었고요.
Q : 목표는요?
A : 팝스타가 되고 싶어요.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놀이동산도 만들고 싶고, 재밌는 일을 제한 없이 맘껏 하고 싶어요. 제가 뮤지션이 된 건 수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거든요.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기보다 세상과 호흡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라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앨범을 내는 것. 그리고 ‘CHRISTIAN’이라는 한 곡만 남기고 사라진 ‘원히트 원더’로 남지 않고 더 나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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