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수백㎜ ‘물폭탄’… 지금껏 알던 장마는 잊어라

김재환 2023. 7. 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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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국지성 폭우’ 대책 비상
게티이미지뱅크


장마가 변했다. 전국에 걸쳐 장기간 꾸준히 내리던, 기존에 알던 장마는 사실상 옛말이 됐다. 굵고 짧게 특정 지역에 몰아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는 내렸다 하면 집중호우고, 이보다 배 이상 강한 ‘극한호우’도 빈번해졌다.

역대급 ‘물폭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여름철마다 장마의 변화 양상이 관측돼 왔다. 특정 지역에 좁게 형성된 비구름대에서 쏟아지는 변칙적 폭우가 여름철 강우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대신 정체전선(장마전선)의 영향력은 줄었다. 기존의 장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수해 예방 대책도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 동네 428.3㎜, 옆 동네는 36㎜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올 장마가 시작된 이후 지난 24일까지 전국엔 누적 평균 614.4㎜의 비가 내렸다. 기상청이 관측망을 전국으로 확대한 1973년 이래 50년 만에 가장 많은 누적 강수량이다. 중부지방은 577.3㎜가 내려 같은 기간 대비 1.8배, 남부지방엔 690.4㎜의 비가 와 같은 기간의 2.3배 많은 누적 강수량을 기록했다.

같은 권역 안에서도 지역마다 강수량에 차이가 있다. 기상청 지역별상세관측자료(AWS)에 따르면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충북 청주의 경우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428.3㎜의 비가 퍼부었다. 그러나 같은 충북 지역이면서 청주와 인접한 영동군의 경우 같은 기간 36㎜의 비만 내렸다.

따뜻하고 습한 기단 옆에 따뜻한 기단


여름철 장마가 소낙성 호우로 대체될 것이란 분석은 예전에도 있었다. 고려대기환경연구소는 2017년과 2018년 장마철 강수 특징을 분석했는데, 장맛비가 적은 양으로 연속적으로 내리기보단 한 번에 많은 양으로 산발적으로 쏟아졌다는 결과를 내놨다. 기상청의 통계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시간당 50㎜, 3시간 누적 강수량 90㎜ 이상 혹은 시간당 72㎜ 이상을 충족할 때 규정하는 ‘극한호우’가 2013년 48건에서 지난해 108건으로 연평균 8.5%씩 증가했다.

연구소는 달라진 장마철 강수 특징이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다고 봤다. 정체전선은 서늘한 기단과 따뜻하고 습한 기단이 만나 형성된다. 서로 다른 성질의 기단이 만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형성된 정체전선은 남북으로 천천히 진동하면서 전국에 중·저강도의 장맛비를 오래 내리게 한다. 그런데 최근 중국 내륙 공기가 더워지면서 서늘한 기단도 덩달아 가열돼 다른 기단과의 특성 차이를 작게 만들었다. 결국 정체전선이 힘을 잃어 전통적인 장맛비는 줄고 있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대기의 강’이 불러온 국지성 폭우

연구소는 국지성 폭우 역시 지구온난화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소나기는 대류운으로 불리는 비구름대에 의해 내린다. 대류운은 대기 불안정으로 형성되곤 하는데, 대기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대기 하층부의 가열이다. 지면과 해수면의 기온 상승으로 대기가 이전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담을 수 있다. 요즘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기의 강’ 개념이 여기서 나왔다. 다량의 수증기가 마치 물길과 같은 모양으로 장거리를 이동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기의 강이 형성되면 강우 강도가 세지고 집중적으로 내리게 된다.


대기의 강은 20세기 이후 점점 더 확장돼 왔다. 실제 대기의 강의 결과물인 국지성 폭우는 최근 자주 목격되고 있다. 1970년대 시간당 50㎜ 이상의 비가 내린 날은 14일에 불과했지만, 80년대 48일, 90년대 45일로 늘더니 2000년대 들어선 무려 91일로 급증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82일로 관측됐다.

최근 중부지방 곳곳에 침수 피해를 일으킨 주요 원인도 대기의 강이었다. 당시 기상청 레이더 합성 영상을 보면 이 일대 동서로 뻗은 띠 모양의 비구름대가 보인다. 대기의 강에 의한 소나기는 밤과 새벽 사이 쏟아지는 특징이 있는데, 지난 13~15일 침수 및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던 경북 북부 지역의 경우 밤 동안 산지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

극한기후에 맞는 대책 정비 시급

전문가들은 극한호우 등에 따른 기후 재난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재난 대비 예방 대책을 ‘예상 밖 기후’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현재와 비슷하거나 지금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할 경우 100년 재현빈도 극한강수량(100년에 한 번 내릴 정도의 많은 비)이 2021~2040년엔 현재 대비 약 29%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2041~2060년에는 약 46%, 2080~2100년에는 약 53%까지 오른다고 예측했다.

김병식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국 곳곳에 설치된 제방 중에 새마을 제방이라고 불리는 게 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쌓은 것들이다. 당시 강수량이나 특징에 맞춰 설계된 것일 텐데, 그게 지금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며 “극한기후에 맞춰 보완·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탄핵소추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직후 “기존 자연재난 대응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상기후를 반영한 최근 5년을 중심으로 재난관리 각종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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