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인가 충신인가, 달리 평가받는 시대의 풍운아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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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한루 왕버드나무 |
ⓒ 이완우 |
전북 남원에 있는 광한루원(廣寒樓苑)은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잘 알려져있다. 이곳은 조선 시대 남원부 관아의 누각(樓閣)이었으나, 평민들은 이곳을 신분의 귀천과 차별이 없는, 즉 평등 세상을 지향하는 공간이자 정신적 터전으로 삼아 왔다.
광한루의 연못가에는 우람한 왕버드나무가 줄지어 숲을 이루어 푸르르다. 이 지역에는 예로부터 남원 고을 출신인 류자광(柳子光, 1439~1512)을 빗대어 '남쪽 들녘에 버드나무가 스스로 빛이 난다'는 의미의 '남원(南原) 류자광(柳自光)'이라는 어구가 전승되었다. '남원 류자광'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면서, 한편 남원 광한루의 버드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뜻하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 19일, 장맛비가 잠시 멈추고 햇살이 비추는 날씨에 류자광의 유적지와 설화를 찾는 역사 여행을 했다. 류요선(남원시 이백면)씨가 이 여행의 길 안내를 해 주었다. 이날 광한루를 출발하여 류자광의 출생지 누른대 마을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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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른대 마을 |
ⓒ 이완우 |
류자광의 공덕비 옆에는 강정(江亭) 정자가 요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류자광이 요천에서 은어를 잡았다는 장소를 찾아보고 냇가 건너 류자광이 공부했다는 서당골을 바라보았다.
류자광은 조선 시대 세조(世祖)부터 중종(中宗)까지 다섯 임금의 재위 기간에 공신으로 두 번 책봉되었고 무령군(武靈君)의 칭호까지 받은 문무를 겸비한 관료였다. 무령군이라는 군호는 전남 영광 지역의 옛 지명인 무령(武靈)과 관련이 있는데, 글자의 의미는'무예 능력이 신령하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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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른대 마을 무궁화 |
ⓒ 이완우 |
양반 가문에서 서얼로 태어난 류자광은 신분적 한계를 자기 능력과 포부로 극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세조는 대대로 높은 관직에 올랐던 그의 가문 배경을 참작하여 류자광의 자천(自薦)을 신뢰하였고,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등용한 것으로 보인다. 류자광은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한 오성군(筽城君) 유자환(柳子煥, ?~1467)의 서제(庶第) 즉 이복동생이었으니, 적자인 형이 서자 동생의 후원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류자광을 등용한 세조의 안목은 확실했다. 세조는 류자광에게 서얼 금고법을 뛰어넘는 허통(許通)으로 병조정랑(정5품)에 임명하는 파격을 행한다. 세조는 1468년에 류자광이 온양 온천에서 별시 문과를 치르게 하였다. 시험관들은 류자광을 낙방시켰으나, 세조는 그의 답안지를 찾아서 검토하고 장원으로 선정하고 류자광을 병조참지(정3품)에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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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자광 공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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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광의 전례 없는 고위직 승진 이후 그에 대한 사림(士林)의 부정적 평가와 질시는 점점 커졌다. 엄격한 신분 질서를 유지하여 기득권을 지키려는 조선 양반 사회에서 서얼 출신으로 고위 관료로 발탁되어 능력을 발휘하는 류자광 같은 인물은 눈엣가시였다.
실례로 남곤(南袞, 1471~1527)의 소설인 <유자광전>은 류자광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 책은 역사적 인물 류자광에 대한 사료적 성격을 검증하기 어려운 소설임에도, 류자광을 간신으로 낙인찍는 배경으로 수백 년간 작용해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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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규 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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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료는 송시열이고, 그 바로 다음이 류자광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역사의 기본적인 사료인 조선왕조실록의 그 많은 기록에도 류자광을 간신이라고 확신할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선조 이후에 왕권이 약화하고 신권이 강화되며 사림파가 득세하면서 류자광을 간신으로 내몰았다. 그렇다면 간신을 총애한 다섯 명의 왕들은 간접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여기서 사림파는 정치적으로 집권을 향한 명분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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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자광 요천 은어 잡은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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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광이 어릴 때 부친 유규(柳規, 1401~1473)가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바위를 보고는 생각을 말해보라고 했다. 류자광은 바로 붓을 들어 써 내려갔다. "뿌리가 구천에 서리었다. 그 기세가 삼한을 누른다." 부친 유규는 이를 읽고 류자광을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한편 류자광의 출생 설화는 비현실적이다. 그의 아버지가 낮잠을 자다가 백호의 꿈을 꾸고, 곧 큰 인물을 낳을 계시의 태몽이라 여기고 집안의 여종(30세)에게서 아들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승한다.
류자광이 태어날 때 마을의 정기를 모두 흡수하여 대나무들이 누렇게 말라버렸다고 한다. 이 마을을 누른대, 황죽리(黃竹里) 또는 고죽리(枯竹里)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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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자광 서당골 (요천 건너 골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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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요천에 나가서 은어를 잡으면 축지법을 써서 한양으로 달려가 수라간에 전하고, 지인과 장기를 한판 두고 남원으로 내려와 아침밥을 먹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류자광 역사와 설화는 신이한 탄생, 비범한 능력과 간신으로 모함 받은 시련 등 영웅 설화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류자광은, 지리산과 요천 고을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영웅으로 꾸준히 회자(膾炙)되고 있다.
최명희(崔明姬, 1947~1998)는 대하소설 <혼불>에서 백성들의 영웅으로 류자광의 역사와 설화를 묘사하였다. 여기서 류자광은 간신이 아니라 조선 시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충심을 다해 왕을 보필한 풍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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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한루 버드나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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