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시절 고모가 들려준 찬양이 교회음악의 길로 이끌었죠”

최기영 2023. 7.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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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합창의 거장이요? 교회음악의 슈바이처라고요? 당치 않습니다. 저한테는 성가대 지휘자 김명엽이 가장 편한 옷입니다."

19일 서울 서대문구 교회음악아카데미에서 만난 김명엽(79·남대문교회 은퇴장로) 전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는 생의 8할 가까이 음표를 그리며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서울시합창단장, 울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등 선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1963년 자신의 모 교회인 서울 용산구 성광교회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맡은 이래 교회음악 외길 60년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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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60년’ 기념음악회 여는
김명엽 전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
김명엽 전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교회음악아카데미에서 자신의 교회음악 여정과 신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한국 합창의 거장이요? 교회음악의 슈바이처라고요? 당치 않습니다. 저한테는 성가대 지휘자 김명엽이 가장 편한 옷입니다.”

어린이 찬송가 악보를 펴둔 채 피아노 앞에 앉은 지휘자는 자세를 낮춘 채 자신에게 붙은 웅장한 수식어를 떼기 바빴다. 19일 서울 서대문구 교회음악아카데미에서 만난 김명엽(79·남대문교회 은퇴장로) 전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는 생의 8할 가까이 음표를 그리며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서울시합창단장, 울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등 선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팔순 목전에 선 음악가의 얼굴엔 세상이 칭송하는 직함보다는 교회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 표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1963년 자신의 모 교회인 서울 용산구 성광교회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맡은 이래 교회음악 외길 60년을 걸어왔다.

김 교수에게 음악은 곧 신앙이고 희망이었다. 그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여섯 살 되던 해 전쟁고아가 됐다. 외로움과 막막함으로 점철되던 그의 삶을 일으킨 건 부산에서의 피란 생활 가운데 자신을 지탱해 준 고모였다.

“고모 손을 잡고 초량교회에 다녔어요. 고모는 밤새 재봉틀에 앉아 만드신 옷을 머리에 이고 국제시장에 내다 팔았지요. 재봉틀 앞에서 고모님이 쉬지 않고 불러주신 찬양이 제 인생을 교회음악으로 이끌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은혜고 또 은혜였지요.”

60년 전 연세대 교회음악과 입학과 함께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맡은 건 어린이 찬송가 작곡에 물꼬를 트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악보 하나가 귀하던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찬양을 지도하기 위해 ‘똑똑똑 문 좀 열어주세요’ ‘꼬마 목수’ 등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1988년 오스트리아 유학은 김 교수의 음악 인생 2막을 위한 전환점이었다. 김 교수는 “빈에 있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음악회를 다니며 교회음악의 지향점을 고민했다”며 “귀국 후 1년여 준비 끝에 교회음악의 바른 방향성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교회음악아카데미를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한국 교회음악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서울바하합창단을 창단, 매달 한 차례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등으로 연주회를 열었다. 공연장은 늘 교회였다. 교회가 가장 아름다운 연주회장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성도가 몇 명이든 또 관객이 수천 명이든 그에게 감격을 주는 건 예술적 칭찬이 아니다.

“지휘를 마치고 나면 ‘최고예요. 멋있었어요’라면서 격려를 많이 해주시지요. 그런데 진짜 감격스러운 얘기는 ‘장로님, 성가대 찬양 덕분에 매주 천국에 다녀오는 것 같아요’라는 말이었어요. 그만한 찬사가 없더군요.”

22일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베다니홀에선 교회음악아카데미의 169번째 연주회이자 ‘김명엽 교수 교회음악 60년 기념음악회’가 열린다. 그의 손을 거친 제자 중엔 명성이 자자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 음악회의 무대에 오르는 이들은 김 교수가 직접 지휘봉을 잡는 서울바하합창단 예찬중창단 샤론어린이합창단(지휘 유은미) 등 그가 걸어온 60년 교회음악 여정의 손때 묻은 가족 같은 이들이다.

인터뷰 내내 김 교수의 표정엔 생기가 돌았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백발에 문득문득 그의 나이가 떠오르다가도 교회음악을 향한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려줄 땐 푸른 빛 셔츠에 정갈하게 색깔을 맞춘 넥타이처럼 ‘청년’ 김명엽이 그려졌다. 김 교수는 교회음악 60년을 넘어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를 필요로 하는 시골의 작은 교회가 있다면 성가대를 지휘하고 섬기며 봉사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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