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 기일에 맞춰 완성한 논문

김경준 2023. 7. 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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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강 문일민 평전] 에필로그 ④ 석사논문 완성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 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에필로그 ③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석사논문 부친 까닭>에서 이어집니다.)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완성 직후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뜨겁고 뭉클한 기억들이 남아있다. 이번 편에서는 해당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94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안경신의 얼굴

2021년 9월의 어느날, 논문 작성을 위한 자료 조사 중 눈길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문일민 선생과 함께 광복군총영 소속으로 평남도청 투탄의거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안경신 선생(1888~?)의 사진이었다.
 
 1927년 12월 17일 <조선일보>에 실린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모습
ⓒ 조선일보 DB
 
1920년 8월 광복군총영 평양 폭탄대 소속으로 문일민·우덕선·장덕진·박태열 등과 함께 평양에 침투한 안경신 선생은 사과장수로 위장하여 광주리에 사과 대신 폭탄을 넣고 운반하는 등 문일민 선생의 평남도청 투탄의거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광복군총영의 유일한 여성 대원으로 거사 당시 임산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거사 후 국내에 남아있다가 일제에 피체된 그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27년 12월 14일 가출옥했다. 안타깝게도 이후의 삶은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그의 얼굴을 알 수 있는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흐릿한 초상화 한 장이 유일하게 남아있긴 했지만 삽화 수준의 그림이라 선생의 온전한 얼굴을 상상하기엔 부족했다.

그런데 평남도청 투탄의거 관련 기록들을 조사하던 중 안경신 선생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해당 사진은 가출옥 직후 이뤄진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에 실려있었다. 새로 발굴된 사진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비로소 안경신 선생의 얼굴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안경신 선생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다는 사실에 크게 흥분했다. 출판사 다니던 시절 <임정로드 4000km>를 만들며 인연을 맺었던 <오마이뉴스>의 김종훈 기자에게 해당 사진에 대한 보도를 부탁했다. 그렇게 <오마이뉴스>의 단독 보도로 비로소 이 사진이 94년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관련 기사: 94년 만에 발견된 '평남도청에 폭탄 투척' 안경신 선생 사진 https://omn.kr/1v8hc)

보도 직후 국가보훈부(당시 국가보훈처)에서도 발빠르게 반응했다. 공훈전자사료관의 안경신 선생 사진을 기존의 초상화 대신 새로 발굴된 사진으로 교체한 것이다.

한편 사진을 발굴하게 된 사연이 소개되자 본인을 안경신 선생의 먼 후손이라고 소개한 이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역사학도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안경신의 후손으로부터 받은 인스타그램 DM
ⓒ 김경준
 
공훈전자사료관 사진 교체 직후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을 찾았다.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기에 선생은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모셔져 있다. 나는 미리 인쇄해온 선생의 사진을 위패 옆에 놓고 묵념을 올렸다.
출옥 직후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선생은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자식은 병신이오니 어느 것이 설지(서럽지) 않겠습니까마는 동지 장덕진씨의 비명을 듣고는 눈물이 앞을 가리어 세상이 모두 원수 같이 생각된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나는 뒤늦게나마 선생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 조금이나마 선생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보았다.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 내 안경신 선생의 위패. 직접 발굴한 사진을 나란히 놓고 추모의 묵념을 올렸다.
ⓒ 김경준
 
백범 김구 선생 기일에 맞춰 논문 완성

우여곡절 끝에 2022년 5월 논문 심사를 통과하고 마지막 보완 작업을 거쳐 6월에 논문을 최종 완성했다. 그런데 논문을 완성하고 보니 바로 며칠 뒤가 백범 김구 선생의 73주기 기일이었다.

문득 '완성된 논문을 김구 선생 영전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단골 복사집 사장님께 김구 선생의 기일인 6월 26일 전까지 완성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바로 전날인 6월 25일 저녁 제본된 논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가장 먼저 논문의 주인공인 문일민 선생 묘역에 완성된 논문을 헌정하기 위해서였다. 돌이켜보면 현충원에서 시작되어 현충원으로 마무리되는 일정이었다. 현충원에 안장된 독립투사들의 공훈록을 뒤지다가 문일민이라는 인물을 발견했고, 완성된 논문을 들고 가장 먼저 향한 곳도 현충원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드디어 제가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묘역 앞의 제단에 논문을 올리고 선생의 고향인 평안도 지역의 전통주인 '문배술'도 한 잔 부어 올리며 논문 완성을 보고했다. 순간 그동안의 우여곡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선생의 묘역에 논문을 올리는 바로 이 순간이 오기만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비로소 그 순간을 맞이한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2022년 6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 문일민 선생 묘역에 나의 석사학위논문 <무강 문일민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올렸다.
ⓒ 김경준
 
그러나 자료의 부족과 나의 아둔함 탓에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의문점들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논문을 완성했다고 해서 선생의 삶을 온전히 복원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대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선생의 삶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선양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선생께 약속드렸다.

현충원 참배를 마친 후 곧바로 효창공원(효창원)을 찾았다. 효창공원 김구 선생 묘역에서는 선생의 기일을 맞아 추모제례를 한창 준비 중이었다. 제례를 주관하는 관계자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김구 선생의 동지로 함께 중국 대륙에서 투쟁했던 독립운동가 문일민 선생님의 삶으로 이번에 석사논문을 썼습니다. 김구 선생 영전에 이 논문을 헌정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관계자들은 흔쾌히 나의 논문을 제단 한 켠에 올려놓도록 배려해주었다. 나는 현충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구 선생 영전에도 제주(祭酒)와 함께 큰 절을 올렸다.
 
 2022년 6월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73주기 추모제례 당시 김구 선생 묘역 제단 위에 나의 석사논문을 올렸다.
ⓒ 김경준
   
이날 제례에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처단한 박기서 선생도 참석했다. 나는 논문을 한 부 전달하며 문일민·박기서 두 분의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선생님, 문일민 선생은 친일파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싫어 미군정에서 할복 자결을 시도하셨던 분입니다. 의로움을 몸소 실천했다는 점에서 선생님과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2022년 6월 26일 효창공원 김구 선생 묘역에서 박기서 선생과 함께
ⓒ 김경준
 
마찬가지로 효창공원 일대의 임정요인 묘역과 삼의사 묘역을 돌면서 순국선열 영전에 나의 논문을 헌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문일민 선생과 흥사단·임시정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선생의 방문이었다.

전날 전화로 "차리석 선생 영전에 논문 헌정식을 하려 한다"고 하자 차영조 선생은 일부러 먼 길 마다않고 달려와 당신의 손으로 직접 부친의 묘역에 논문을 올렸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버지에게 직접 논문을 헌정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장남 차영조 선생
ⓒ 김경준
 
문일민 선생의 사돈이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의 아들 정양모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나의 논문을 받고 감사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앞서 나는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출판사에서 임시정부 투어 가이드북을 만들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내 손으로 발굴하여 알리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2022년 6월 <무강 문일민의 생애와 민족운동>이라는 논문의 완성을 통해 비로소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이날 현충원과 효창공원에서의 논문 헌정식은 바로 그 결실을 선열들께 보고드리는 값진 시간이었다.

(* 에필로그 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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