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받으려면 퇴직금 포기해"...국힘·정부만 모르는 실상

이동철 2023. 7. 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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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 실수령액보다 많아 취지 훼손? 허위주장

[이동철 기자]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모습.
ⓒ 연합뉴스
 
서울시 금천구의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강아무개씨는 지난 5월 중순 사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장은 이달까지 근무하고 6월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퇴사를 요구받아 불가피하게 퇴사한다고 사직서를 냈더니 사업주는 다시 써오라며 수령을 거부했다.

사장은 "개인사유로 퇴직한다고 사직서를 내야 퇴직금을 준다"라고 협박했다. 그의 요구대로 사직서를 쓴 강씨는 사업주가 강씨의 이직 사유를 '자발적 이직'으로 신고해 실업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구두상으로 해고를 통보하고 노동자 스스로 그만뒀다고 허위로 신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부의 고용지원금을 받는 중소기업의 경우 소속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권고사직 시키면 고용지원금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현행 '고용보험법' 아래에서 실직 노동자의 실업급여 결정에 사업주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수급 자격을 판단하기 위한 '이직확인서'라는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일차적으로 사업주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한 이직 사유에 노동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근거를 제출해야 정정이 가능해 큰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결국 강씨는 사업주의 해고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사업주는 강씨에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줄 테니 퇴직금은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부 노동자가 스스로 퇴사하며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 요청하기도 하지만 노동 현장에는 이렇듯 뻔뻔한 사업주가 더 많다.
 
▲ 발언하는 박대출 정책위의장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2일 정부와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임이자)가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는 이처럼 노동시장의 권력관계에 무지한 허위 주장과 선동이 판을 쳤다.

행사를 주최한 임이자 노동개혁특위 위원장 등 정치인들은 실업급여 하한액이 노동자의 최저임금 실수령액보다 높아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실업급여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었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 실수령액 약 179만 원에 비해 실직자가 받는 월 실업급여 하한액 184만 원 더 많기 때문에 공정성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허위 주장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 달 동안 일하는 노동자가 받는 최저임금 실수령액과 실직 노동자의 한 달 실업급여 하한액을 비교했지만 최저임금 월액과 실업급여 월액은 기준이 되는 일수가 다르다.

현행 최저임금법상 월 최저임금은 201만580원이다. 주 5일 근무라고 가정하면 월 약 21.7일의 기본근로일이 나온다. 여기에 1주 1일씩 월 4.34일의 주휴일을 더하면 월 최저임금 기준이 되는 일수는 26일이 된다. 월 26일 기준으로 책정된 월 최저임금 약 201만원에서 소득세와 4대보험료 근로자부담분 약 10.3%를 공제한 179만 9800원이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실제 손에 쥐는 돈이다. 

그런데 실업급여는 1일 기준으로 산정된다. 월 최대 30일을 실업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 일액(2023년 기준 7만6960원)의 80%로 6만1568원이다. 여기에 30일을 곱한 약 184만 원이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실업급여 월 하한액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기준대로 계산하면, 2023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월임금액은 최저임금 일액 7만6960원에 30일을 곱해 230만 원이 된다. 더욱이 기본 26일을 초과한 4일은 연장근로가 되기에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해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므로 월임금액은 더 높아진다. 실업급여 월액과 최저임금 월액의 기준이 되는 일수가 다른데 최저임금 노동자의 박탈감을 자극하기 위한 무리하게 비교한 것이다.

물론 정부 여당이 문제 삼는 것처럼 한국의 최저임금 하한액이 OECD 국가와 비교해 최저임금 기준에 근접해 높은 것은 사실이다. 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실업급여 하한액 비율은 약 44%로 OECD국가 평균 약 21%에 비해 높았다.

그러나 한국의 실직 전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실업급여 비중이나 지급 기간을 고려하면 과도한 실업급여 혜택이 주어진다 보기 어렵다. 한국의 실업급여 비율은 실직 전 평균임금에 비해 60%로 프랑스(75%), 독일(67%) 등에 비해 낮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도 50세 미만의 노동자는 최장 8개월로 프랑스와 독일의 2년 등에 비해 현저하게 짧다.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 정부가 실직자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구직급여 상한액과 수급기간을 늘렸기 때문에 구직자들의 재취업 동기가 낮아졌다 해석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9년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기존 3~8개월인 수급기간을 4~9개월로 늘리고 구직급여 기준액도 하루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했다.

이런 태도는 최저임금과 연동해 구직급여 하한액을 설계한 경제환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2008년 세계금융 위기 이후 구조적 경제침체와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경제위기가 도래한 시점에서 구직급여의 하한액을 높이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물가 인상 등 실질적으로 생계비가 더 들기에 당연히 구직급여 하한액은 높아져야 한다. 구직자도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아야 재취업을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시기 기존 구직급여액에 600달러의 특별기금을 추가 지급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선제적 대책은 고용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용노동부 실업급여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는 약 160만 명이고 이중 하한액을 받는 비율은 약 73%인 약 118만 명이다. 이들 중 약 80% 이상이 청년 실직자다. 향후 제조업 등 핵심 직종에서 청년 노동자의 일자리 위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청년·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으로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있을까?
 
▲ 실업급여 부정수급 특별점검 강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가 주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민당정 공청회에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실업급여(구직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부정수급에 대한 특별점검을 늘리기로 했다.
ⓒ 연합뉴스
 
이날 공청회에서 청년 구직자들에 대한 기업인의 편견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현장 발언을 한 어느 IT 중소기업대표는 채용 지원한 구직자들이 대부분 채용이 되더라도 입사를 거부한다고 구인난을 호소했다. 그는 서류를 살펴보면 경력이 우리 회사에 맞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구직자들이 실업급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허수로 지원한 것이라고 청년 구직자를 비판했다. 채용지원자들이 실업급여를 받는 구직자들인지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관적인 기업인의 편견을 근거로 취업난에 전전긍긍하는 청년 구직자들을 모욕한 것이다.

마지막에 고용노동부 실업급여 업무 담당자의 현장 발언은 청년과 여성 실직 노동자에 대한 편견의 '끝판왕'이었다. 실직자의 생계와 재취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따뜻한 시선이 아니라 보험금 타내려 애쓰는 피보험자를 경멸적으로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오는 실직자들 특히 여성과 청년 계약직 노동자들이 "얼굴에 웃음을 띠고 이 기회에 쉬겠다며 온다"고 말했다. 또한 "실업급여를 받아 해외여행을 가고 여자들은 평소 자기 돈으로 사기 어려운 샤넬 선글라스를 사고 즐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실직자들이 재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실업급여 담당자에게 비협조적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처럼 실직자의 실업급여 자격을 심사하고 취업을 지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담당자에게 "취업하라는 전화하지 마라"고 요구하거나, "난 취업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실직자가 몇이나 될까.

일부 실직자의 일탈행위를 마치 전체 실직자의 행위인 것처럼 일반화하고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실업급여 제도를 손보겠다고 주장한다.

'24번 실업급여 수급' 극단적 사례 공개에, 누리꾼 일침

향후 윤석열 정부는 실직자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조건을 더 강화하고 구직급여 액수를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악하고 국민의 힘은 이를 입법으로 지원할 것이다. 이미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월 최저임금의 80%로 돼 있는 하한액을 삭제하는 내용과 구직급여 지급을 위한 피보험단위기간 요건을 10개월로 늘리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냈다. 지금은 고용보험에 가입해 보수를 받은 일수가 180일 이상이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를 1.5배 더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직급여의 반복 수급도 제한해 5년 이내 2회 이상 반복해서 구직급여를 받는 사람은 구직급여액을 줄이겠다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았다. 임이자 위원장은 공청회에서 같은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급여를 수급한 극단적 사례를 들며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그러나 현행 실업급여 제도에서 심사관이 이를 제대로 걸러내면 불가능한 상황을 일반화 한 것에 대해 어느 네티즌은 "부정수급자는 아마도 그 회사 사업주의 친인척일 것"이라 댓글을 달며 조롱했다.

이날 공청회에 모인 정부 여당의 노동정책 담당자와 정치인, 그리고 관료와 기업인은 저임금에 실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대가만을 바라는 악한 존재라는 전제로 강력한 통제와 처벌만을 강조했다.

경제위기로 어두운 미래에 전전긍긍하는 약 98만 명에 달하는 청년 실직자들이 왜 최저임금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열악한 일자리에 가지 않고 실업을 선택하는지에는 눈감은 채 청년 실직자들을 순식간에 허영심 넘치는 '베짱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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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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