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넘어 DEI 챙겨야…전 세계 ‘열공 중’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7. 1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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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기업 경쟁력

퀴즈 하나. 삼성전자가 지난해 임직원 인건비로 쓴 돈은? 힌트는 지난해 애플 스토어가 한국에서 거둬들인 매출이다.

정답은 38조원이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인건비는 37조6000억원이었다. 2021년(34조6000억원)과 비교해 3조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3조4000억원의 80%에 해당한다. 삼성전자의 인건비 증가는 ‘사람이 자산’이라는 철학 아래 ‘인적 자본’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몇 년 새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이를 언급하지 않는 기업이 없을 만큼 핵심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최근 ESG에서 ‘사회(S)’에 초점을 맞춘 DEI를 실천하려는 기업 역시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미 뜨거운 경영 키워드다.

DEI는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다양성은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 형평성은 ‘균형이 맞는 상태를 이루는 성질’, 포용성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이는 성질’이다.

기업에 적용하면 다양성은 인종, 성별, 연령, 성 정체성, 사회 경제적 배경 등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적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 차이를 포괄한다. 형평성은 출발선이 같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과정이 공평하고 공정하며 모든 개인에게 동등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포용성은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실천하는 관행이다. 존중, 환대라는 감정과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다.

구글, 메타, 아마존,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80%가 ‘다양성과 포용성(D&I)’ 또는 ‘DEI’를 주요 가치로 내걸었다.

147년 역사 이탈리아 기업

동성애 반대했다가 망할 뻔

DEI는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개념이다.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같이 살고, 시한폭탄 같은 흑백 인종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20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DEI 정책이 강화됐다.

서구 사회에서 DEI는 기업 생존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DEI를 무시했다가 기업이 큰 위기에 빠진 사례는 적지 않다.

1877년 설립된 식품 기업 바릴라(Barilla)는 이탈리아 최대 가족 기업 중 하나다. 100가지 이상 파스타 재료를 생산하며 미국과 유럽 시장 3분의 1 가까이 장악했다. 그런데 구이도 바릴라 회장이 2013년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전통적인 가족이다. 동성애자 가족에 대한 광고는 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 됐다. 고객은 바릴라의 성 소수자 차별에 엄청난 반감을 보이며 대대적인 불매 운동에 들어갔다. 그사이 경쟁 업체는 차별화된 광고로 바릴라를 따라잡았다. 바릴라 회장의 뒤늦은 사과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바릴라는 이후 동성애자 권리를 실천하는 비영리집단과 만났고, 전 직원이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다양성을 담당하는 직책을 신설했다. 2018년 바릴라는 세계 파스타 챔피언십 기간에 동성애 가족을 포용하는 디자인의 제품까지 출시했다. 포장에는 파스타를 다정하게 먹는 두 여성의 모습과 아이와 함께 있는 두 여성, 즉 성 소수자로 이뤄진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마침내 바릴라는 2015년 미국 ‘인권 캠페인’이라는 단체로부터 ‘기업평등지수’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위기를 벗어났다. 2019년 블룸버그는 “바릴라그룹이 동성애 혐오증에서 국가적 긍지로 성공적으로 턴어라운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30년 설립된 퍼블릭스(Publix)는 미국 슈퍼마켓 체인이자 종업원 소유 기업이다. 모든 종업원은 주주로서 퍼블릭스의 공동 소유자다. 이직률도 무척 낮고, 근속연수도 25년일 정도로 일하기 좋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퍼블릭스는 ‘성차별’과 ‘인종 차별’로 인한 대규모 소송을 겪었다. 여성들을 저임금 자리에만 근무시키고 유리 천장으로 단단히 쌓아 고위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퍼블릭스는 2년여에 걸친 소송 끝에 8150만달러를 지출하고 소송을 마무리했다. 2000년에는 일부 직원이 인종 차별 소송을 제기했고, 퍼블릭스는 또 한 번 1050만달러를 지불했다. 이제는 퍼블릭스의 구인 광고를 보면 ‘다양성과 재능 경영 담당 부장’ ‘인력 분석과 다양성 담당 과장’ 등을 둘 만큼 ‘다양성’을 대표하는 기업이 됐다.

DEI에서 강조하는 개념은 ‘형평’이다. 이는 평등(Equality)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키가 다른 사람이 담장 넘어 관람할 수 있도록 똑같은 높이의 받침대를 놨다면 이는 평등이다. ‘똑같은’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받침대를 놨다고 하더라도 키가 작은 사람은 못 볼 수 있다. 형평은 개인별로 다른 신장을 반영해 모두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받침대의 높이를 달리하는 것이다. DEI에서 형평의 개념은 개인 차이를 인정하며 동등한 결과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DEI가 수익 높이고 위험 낮춰

혁신 기여도 역시 크게 높아

DEI는 1980년대 생겨난 개념으로 40년 역사를 지녔다. 최근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DEI가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의식이 생겨나면서다.

DEI가 기업 성과와 직접 관계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연구가 다수다. 맥킨지 연구에 따르면, 성별 다양성이 상위 4분위에 속하는 기업이 평균 이상의 수익성을 기록할 가능성이 하위 4분위 기업보다 21% 더 높았다. 인종·문화적 다양성의 경우 영업이익 마진이 평균보다 높을 가능성이 33%였다. BCG는 경영진의 다양성과 혁신 사이에서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경영진 다양성이 평균 이상인 기업의 혁신 수익(Innovation Revenue)이 평균 이하 기업보다 19%포인트 높았다. 혁신 수익은 3년 내 개발한 신제품이나 서비스에서 거둔 수익이다. 영업이익 마진이 9%포인트 더 높았을 만큼 재무 성과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딜로이트는 인구통계학적 다양성과 학력, 문제 해결 방식, 기능 등 인지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삼은 사고의 다양성은 혁신을 20% 향상시켰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또한, 이런 사고의 다양성을 가진 조직은 위험을 30%까지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심리학자이자 DEI 컨설턴트인 엘라 워싱턴 조지타운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에서 “다양함을 포용하는 조직일수록 혁신 가능성이 6배나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DEI를 실천하는 건 ESG만큼, 그 이상으로 어렵다. 경기 불황 같은 불확실성과 사투를 벌이는 기업 입장에서 DEI는 허황한 구호처럼 들릴 수 있다. 또 기업마다 환경과 조직 특성과 형편에 따라 자신만의 DEI 전략을 구축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엘라 워싱턴 교수는 DEI를 ‘가야 할 여정(Necessary Journey)’이라고 표현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식’ ‘순응’ ‘전술’ ‘통합’ ‘지속’ 등 DEI 경영의 다섯 단계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의도적인 DEI 노력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첫 단계부터 DEI를 체화하고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실현해가는 마지막 단계까지, 구체적인 사례와 실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주목할 것은 기업이 이 다섯 단계를 모두 거쳤다 해도 DEI가 완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DEI에 완성이란 없다. 시간이 흘러 기업이 성장하고 세상이 변하면서 전략과 사업이 재평가될 때 DEI도 개선돼야 한다. 저자가 DEI를 ‘여정’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엘라 워싱턴 교수는 “우리가 직장에서 혹은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공간에서 진정으로 번영하는 것은 인간적 권리며, 직장은 직원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핵심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사회, 자신이 맡은 일만 최소한 처리하는 ‘조용한 사직’, 자발적 퇴직이 급증하는 ‘대퇴사’의 시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리더가 DEI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DEI를 높이려면 지속적인 성과관리(Continuous Performance Management·CPM)가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1) 단기(주로 분기) 목표를 측정 가능한 지표로 설정하고 2) 더 짧은 주기로 체크인(목표 달성에 대한 진척도 확인)하고 3) 수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식이다. 측정 가능한 지표를 설정한 뒤 구성원 참여로 목표가 달성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CPM을 선택한 기업의 91%는 승진 결정에서 편향을 제거하는 데 진전을 일궈냈다.

공정성 중시하는 MZ세대

불합리한 기업 문화에 이직

한국에서도 DEI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한국은 ‘다양성’에 해당하는 인종 차별 이슈는 심하지 않다. 그러나 기업에서 여성 인력 비중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특히 임원에서 여성 비중이 여전히 낮다는 점은 고질적인 한계로 언급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349곳을 대상으로 여성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여성 임원은 6.8%(올 1분기 전체 임원은 1만4718명 중 997명)다. 지난해 같은 기간(912명)보다 0.5% 증가한 수준이다. 조사 기업 중 98곳은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내이사의 경우 여성 비율이 2.3%로 지난해와 비슷했지만 30명 중 18명은 오너 일가였고, 전문경영인은 12명에 그쳤다.

하금주 G20 엠파워 얼라이언스 한국대표는 지난 6월 열린 ‘G20 국가 기업의 여성 의사 결정권 확대 방안’ 세미나에서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DEI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우리 기업도 지속 가능한 글로벌 경제를 위해 여성 인력 자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공정성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주류로 떠오르며 형평성 역시 주요 화두로 급부상했다. DEI에서 강조하는 개념은 ‘형평’이다. 이는 평등(Equality)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비유를 하면 이렇다. 키가 다른 사람이 담장 넘어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상황을 그려보자(그림 참조). 만약 담장 넘어 관람할 수 있도록 똑같은 높이의 받침대를 놨다면 이는 평등이다. ‘똑같은’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받침대를 놨다고 하더라도 키가 작은 사람은 못 볼 수 있다. 형평은 개인별로 다른 신장을 반영해 모두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받침대 높이를 달리하는 것이다. 즉, DEI에서 형평의 개념은 개인 차이를 인정하면서 동등한 결과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형평 이슈는 국내에서 치열했다. 특히 성과급을 두고 MZ세대는 극명한 반응을 보였다. CJ올리브영이 연봉의 최대 160% 성과급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직군별 차이가 크다는 점은 상당한 논란을 불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신세계백화점, LG생활건강 등도 비슷한 홍역을 앓았다.

‘어퍼머티브액션’ 위헌 논란

DEI 트렌드 쇠퇴할까 촉각

최근 DEI가 도전 받는 모습도 나타난다. 지난 6월 미국 대학의 소수 인종 입시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액션(Affirmative Action)’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기업 채용 강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업이 DEI 정책을 축소해 유색 인종 젊은이들의 직업 선택을 사실상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세다.

뉴욕타임스(NYT)·로이터통신· CNN 등 외신들은 어퍼머티브액션의 위헌을 이끌어낸 이들이 기업체의 다양성 프로그램을 다음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해 법원 결정이 기업 DEI 정책에도 대학 입시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거라는 신호를 보낸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소송 등 법적 분쟁이 뒤따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보수 성향 단체들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업을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보수 단체들은 이미 맥도날드·허쉬·알래스카항공·안호이저부시 등의 ‘다양성 노력’이 차별적이고 불법적이라는 민원을 접수한 상태다.

앨빈 틸러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공영 라디오 NPR에서 “기업에 실질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보수 단체들이 타깃을 바꿀 가능성이 높으니 기업들이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애플·구글·프록터앤드갬블 등 60여개 미국 기업은 대법원에 어퍼머티브액션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보낸 바 있다. 이들은 “대학의 인종 다양성 부족은 직장 내 다양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일즈포스는 대법원 결정 이후 성명에서 “평등을 위한 우리 회사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대법원 결정과 무관하게 우리의 목표를 향해 가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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