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미쳤다"...돌아온 '목수' 신지애 US오픈 준우승

성호준 2023. 7. 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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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 AP=연합뉴스

마지막 홀 5m 버디 퍼트를 넣은 신지애는 하늘 높이 주먹을 올리며 기뻐했다. 그럴만했다. 신지애는 1988년생으로 나이 35세다. 여자 골프에서는 노장이다. 키는 155cm다. LPGA 투어를 떠나 일본으로 간 지 벌써 10년째다.

그런 신지애가 1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페블비치 골프장에서 벌어진 제78회 US여자오픈에서 합계 6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올랐다. 우승은 합계 9언더파를 친 앨리슨 코푸즈(미국)가 차지했다. 코푸즈의 상금은 약 26억6000만원, 신지애의 상금은 약 13억원이다. 미국 하와이주에서 태어난 코푸즈는 필리핀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태생 어머니를 뒀다.

LPGA 투어의 한국 선수들은 “추운 날씨에 바람 부는 이 어려운 코스에서 신지애 언니가 미쳤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대회에서 신지애 보다 한 살 어린 미셸 위는 14오버파를 쳤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7오버파로 컷탈락했다.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건 김효주로 2언더파 공동 6위다.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평가를 받는 신예 로즈 장은 1오버파다.

신지애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있다. 2008년과 2012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우승했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자연과의 대화 혹은 전쟁이다. 악천후와 맞서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신지애에게 딱 맞는 메이저대회다. 그러나 10년 넘게 지난 옛날 일이다.

신지애는 다른 메이저대회에서는 우승을 못 했다. 다른 메이저대회는 코스가 길고 러프는 길어 힘자랑을 해야 한다. 특히 US오픈이 그렇다. 신지애는 열아홉살이던 2007년 처음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6위에 올랐지만 2013년 이후 3번 출전한 대회 모두 컷 탈락했다. 마지막 US오픈 출전이 2019년이었다. 4년간 미국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공동 2위를 했다.

신지애가 LPGA 투어에서 뛸 때 초크라인(chalk line:목수가 직선을 긋기 위해 쓰는 먹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번 대회에서 목수 신지애가 더 정확해져서 돌아왔다. 이번 대회에서 신지애는 페어웨이와 그린 이외에는 별로 다녀보지 않았다. 페어웨이 적중률이 무려 85.7%다. 그린 적중률은 72.2%, 평균 퍼트 수는 27이다.

신지애가 9번 홀에서 샷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US오픈은 가장 어렵게 코스를 만드는 걸 고려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신지애는 파 4홀에서는 파를 잡고 파 5홀에서 세 번째 샷을 붙여 주로 버디를 잡아냈다. 출전 선수 평균에 비해 아이언으로 3타, 퍼트로 3타 정도를 얻었다.

신지애의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는 243야드, 평균 볼 스피드는 135마일이 정도였다. 그러나 필요하면 힘을 쓸 줄도 안다. 신지애는 오르막인 11번 홀에서 볼 스피드 148마일을 기록했다. 신지애는 헬스클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바다 건너 샷을 해야 하는 어려운 8번 홀이 하이라이트였다. 신지애는 내리막 198야드 두 번째 샷을 그린 앞 페어웨이에 맞혀 그린에 올린 후 5m 퍼트를 넣었다.

현지 방송에서는 신지애가 어릴 적 모친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 보험금으로 골프를 배운 사연도 소개했다.

신지애는 인터뷰에서는 지난달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 대한 사연도 털어놨다. 신지애는 “2주일 전쯤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고 일본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했다. 일본여자프로골프 투어 시즌 최다 상금이 걸린 어스몬다민컵(총상금 3억엔·한화 약 27억원)이었다.

할머니께 유명한 페블비치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신지애는 “할머니는 하늘에서 내가 이곳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 손을 잡고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일본에서 뛰면서 정체된 느낌이 들어 US오픈에 도전했다고도 했다. 신지애는 3라운드 후 인터뷰에서 “어린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봤는데 힘과 스피드가 있더라. 1, 2라운드에서는 그 선수들처럼 해보려다 템포를 잃었다. 그러나 오늘(3라운드) 그렇게 할 순 없다고 판단해 내 게임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게 잘 먹힌 것 같다”고 말했다.

2014년 신지애가 LPGA 투어를 떠나며 세운 목표는 한국, 미국에 이은 일본 상금왕이었다. 그러나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2016년과 2018년 2위에 그쳤다.

올해 분위기는 좋다. 올해 2승을 거둬 상금 1억1904만엔으로 아마시카 미유(1억2395만)에 간발의 차로 2위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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