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살려주세요” 3개월간 722개 병든 식물이 왔다

백재연 2023. 7. 10. 00: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정승희(54)씨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의 반려식물병원을 찾아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의 손에는 누런 잎사귀 서너 개만 남은 고사리과 식물 '실버레이디'가 안겨 있었다.

지난 4월 10일 개장한 반려식물병원엔 이날까지 정씨의 실버레이디 외에도 722개의 화분이 다녀갔다.

서울시 반려식물병원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달에 화분 3개까지 무료 이용할 수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반려식물병원 가보니
지난 4월 개장 722개 화분 치료
내원 절반 이상이 20·30대 ‘식집사’
진찰·처치·입원… 실제 병원 방불
서울 서초구에 있는 반려식물병원에서 지난 5일 주재천(오른쪽)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팀장이 정승희씨에게 반려식물 ‘실버레이디’를 재생시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정승희(54)씨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의 반려식물병원을 찾아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의 손에는 누런 잎사귀 서너 개만 남은 고사리과 식물 ‘실버레이디’가 안겨 있었다.

정씨는 지난 3월 실버레이디를 집으로 들였다. 딸과 함께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새벽 5시면 일어나 현관에 놓인 실버레이디를 볕이 잘 드는 베란다로 옮겼다가 해가 지면 다시 들여놨다. 수분 공급도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실버레이디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식물병원장인 주재천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팀장은 정씨가 건넨 화분 속 흙을 한 줌 손에 쥐었다. 경력 20년의 그가 보기에 정씨의 실버레이디는 ‘과습 상태’였다. 주 팀장이 손에 힘을 주자 흙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 팀장은 “아끼다 보니 물을 자주 준 것 같은데, 이 화분은 물구멍이 작아서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지난 4월 10일 개장한 반려식물병원엔 이날까지 정씨의 실버레이디 외에도 722개의 화분이 다녀갔다. 병원 측도 예상 못 한 호응이다. 과거 농업인 대상 식물 치료를 해왔던 주 팀장은 “코로나19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물을 키우는 분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층의 반려식물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실제 개장일부터 지난달까지 반려식물병원을 찾은 이들의 52.8%가 20, 30대였다. ‘식집사’(식물+집사)를 자처하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병원을 찾아온 한 20대 여성은 150㎝ 크기의 ‘녹보수’를 데려와 치료를 부탁했다. 관엽식물인 녹보수는 ‘재물’ ‘행운’ ‘행복’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어 개업식 화분으로 많이 쓰인다. 이 화분에도 ‘개업 축하해, 엄마 아빠가’라는 리본이 달려 있었다.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 여성은 ‘어머니가 주신 선물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며 호소했다고 한다.

해당 녹보수는 뿌리부터 세균감염이 진행돼 회생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주 팀장은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뿌리 몇 개를 잘라내 집중치료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는 “가져오는 식물엔 저마다 다 사연이 있다”며 “과거엔 농부의 한 해 농사가 내 진단에 달려 있다는 부담이 컸다면 요즘은 전혀 다른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식물병원은 실제 사람 병원처럼 돌아간다. 내원을 하면 진단실에서 식물 상태를 진찰한다. 진단실에는 최대 100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과 3D모니터가 있다. 처치가 필요하면 치료실로 옮겨 분갈이를 하거나 영양제도 투여한다. 상태가 심각할 경우 입원실로 간다. 주 팀장은 “화원과 달리 병원이다 보니 오는 분 모두 온전히 ‘내 식물’에만 집중한다”고 전했다.

서울시 반려식물병원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달에 화분 3개까지 무료 이용할 수 있다. 전화·화상 상담도 가능하다. 다만 50만원 이상 고가의 식물과 희귀식물 등은 입원 치료에서 제외된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