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열차'에 탑승한 할리우드 배우들... 이제 시작이다

양형석 2023. 7. 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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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봉준호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 <설국열차>

[양형석 기자]

서울에서 태어난 후 5살 때 이민을 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자란 재미교포 배우 스티븐 연은 11개의 시즌에 걸쳐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한국계 미국인 글렌 리를 연기하며 유명세를 탔다. 지난 2020년에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에서 한국인 이민자 가정의 가장 제이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이듬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아시아계 배우로는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티븐 연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 실력은 다소 서툰 편이다. 그럼에도 스티븐 연은 고국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스티븐 연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에 출연했을 뿐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등 한국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스티븐 연은 최근에도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 촬영을 마쳤다.

스티븐 연과 두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봉준호 감독은 지난 2017년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옥자>를 연출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관객들이 모호필름과 오퍼스픽쳐스에서 공동 제작한 이 영화를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바로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큰 화제가 됐던 봉준호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 <설국열차>다.
 
 송강호는 2013년 <설국열차>,<관상>,<변호인>을 통해 30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 CJ ENM
 
한국영화에 출연했던 외국배우들

스포츠에서는 각 리그마다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두는 경우가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예술에서는 배우들의 국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실제로 1990년대 중·후반에는 성룡을 시작으로 이연걸, 주윤발 등 홍콩영화를 주름 잡았던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대거 진출했고 한국배우 박중훈도 할리우드 영화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다. 하지만 외국배우들이 한국영화에 출연하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영화 팬들이 '괴작'으로 꼽는 <클레멘타인>에는 <언더씨즈>로 유명한 액션스타 스티븐 시걸이 출연했다. <클레멘타인>은 전 태권도 세계챔피언 김승현(이동준 분)이 납치된 딸(은서우 분)을 구하기 위해 미국 지하세계의 격투장에서 최종보스와 대결을 벌이는 액션 가족영화다. 이 영화에서 스티븐 시걸은 주인공 승현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잭 밀러 역으로 출연했다. 물론 실제 시걸의 출연분량은 카메오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적었다.

2016년과 2019년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에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했다. 2016년에 개봉해 700만 관객을 모은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에서는 리암 니슨이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을 연기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리고 2019년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이 공동 연출했던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는 <트랜스포머>로 유명한 메간 폭스가 미국인 종군기자 메기 역을 맡았다.

미국 출신 배우는 아니지만 그나마 외국배우가 한국영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작품은 2017년에 개봉해 1218만 관객을 동원했던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였다. <택시운전사>에는 <U-571>,<킹콩>,<작전명 발키리>,<어벤저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에 출연했던 독일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이 실존인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푸른 눈의 목격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연기하며 주연으로 출연했다.

서양에 비해 거리가 가까운 만큼 홍콩이나 중국 등 중화권 배우들의 한국영화 출연은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다. 2001년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에는 당시 한창 전성기를 보내던 장백지가 출연했고 2012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는 <첩혈가두>로 유명한 임달화가 첸 역을 맡았다. <만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김태용 감독과 결혼하고 작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도 열연을 펼쳤던 탕웨이는 긴 설명이 필요없는 대표적인 외국배우다.

할리우드 명배우들 끌어 모은 봉준호 감독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는 <어벤져스>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설국열차>에 합류했다.
ⓒ CJ ENM
 
2009년 김혜자 배우,원빈 주연의 <마더>를 끝낸 봉준호 감독이 프랑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신작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봉준호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가 이렇게 스케일이 클 거라고 예상한 관객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4000만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가 공개되고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존 허트, 옥타비아 스펜서, 송강호, 고아성 등 쟁쟁한 배우 라인업이 발표되면서 <설국열차>의 규모가 세상에 드러났다.

2013년 여름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8월1일에 개봉한 <설국열차>는 국내에서 930만 관객을 동원했다. 아쉽게 천만 관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013년 개봉작 중 <7번 방의 선물>(1281만)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했다(12월18일 개봉작 <변호인>은 2013년 568만 관객 동원). 또한 중국을 비롯해 '<설국열차>의 고향' 프랑스 등에서 선전하면서 세계적으로 8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는 성과를 달성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사실 국내에서는 <살인의 추억> 등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설국열차>는 미국의 영화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점수 94%를 받았을 정도로 상당한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서양권 배우들 사이에서 다소 어색하게 끼어 있는 한국배우 송강호와 고아성도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특히 <다크 나이트> 3부작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설국열차>를 꼽기도 했다.

<설국열차> 개봉 후 국내외에서 '양갱'이라는 과자가 재평가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꼬리칸 승객들에게 지급되는 단백질 블록이 양갱과 굉장히 흡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설국열차>가 흥행하고 양갱이 화제가 되면서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편의점에서는 양갱의 매출이 늘어나기도 했다. 또한 <설국열차>에 출연했던 일부 외국배우들은 단백질 블록과 흡사한 모양의 한국과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설국열차>는 지난 2020년 드라마로 제작돼 넷플릭스 채널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제작자였던 박찬욱 감독과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고 미국의 래퍼 겸 배우 다비드 디그스와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제니퍼 코넬리가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작년 시즌 3까지 방영된 <설국열차>는 시즌4의 촬영까지 마쳤지만 방영이 돌연 취소되면서 '결말 없는 드라마'로 남게 됐다.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 틸다 스윈튼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최근 네 작품 중 <기생충>을 제외한 세 편에 모두 출연했다.
ⓒ CJ ENM
 
<설국열차>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렇지만 '캡틴 아메리카'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크리스 에반스 역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신뢰로 <설국열차> 출연을 결정했다. 꼬리칸의 리더 커티스를 연기한 에반스는 커티스 역을 위해 수염을 길렀는데 <어벤져스> 쿠키영상 촬영 때문에 수염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에반스는 <설국열차> 촬영에 지장을 받고 싶지 않다며 얼굴에 피부마스크를 덧대고 <어벤져스>의 쿠키 영상을 촬영했다.

<설국열차>에 출연하기 전까진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에 주로 출연하는 연기파 배우로 알려졌던 영국배우 틸다 스윈튼은 <설국열차>에서 열차의 2인자 메이슨 총리 역을 맡으며 연기변신을 선보였다. <설국열차> 최고의 스타는 송강호와 크리스 에반스였지만 <설국열차>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단연 틸다 스윈튼이었다. 스윈튼은 <옥자>와 <미키 17>에도 출연하며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되고 있다.

<더 록>의 험멜장군과 <트루먼쇼>의 크리스토프 등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에드 해리스는 <설국열차>에서 열차를 만들고 열차 안 상황을 지배하며 통제하는 '절대자' 윌포드를 연기했다. 사실 윌포드는 커티스와 남궁민수(송강호 분)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머리칸에 도착한 후에야 그 얼굴을 드러낼 정도로 출연분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해리스는 짧은 분량에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에서 박강두의 딸 현서를 연기했던 고아성은 <설국열차>에서도 남궁민수의 딸 요나 역을 맡았다. 요나는 극 중에서 '남궁요나'가 아닌 그냥 요나로 불리고 통역기가 필요한 아버지와 달리 커티스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며 뛰어난 청력으로 문 너머의 공간 상황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요나는 영화 마지막 커티스와 남궁민수의 희생으로 열차가 폭발한 후 타미와 함께 최종 생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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