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밥 곽선생' 보면 모태 솔로 탈출? 중요한 게 빠졌다

고은 2023. 7. 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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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촘촘해진 서열 매기기, 이제는 '대안적' 남성성을 말해야 한다

[고은 기자]

'여자들이 좋아하는 찐따남 특징'이라는 제목의 단문성 글, 쇼츠 영상들이 한동안 SNS를 떠돌았다. 무엇보다 훈훈한 듯 잘생겨야 하고 재미없지만 리액션은 있는 남자가 '여자들이 좋아하는 찐따남'이다.  

미디어에 등장한 '찐따남', 곽튜브(곽준빈)
 
 곽튜브 출연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캡처본
ⓒ 고은
 
최근 이 '찐따남'은 서툰 사회성, 또래 남성 무리와 연애 시장에서 소외된 현실 남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다. '곽튜브'가 인싸들은 알리 없는 자기 경험을 풀어내 '국민 찐따남'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면서 부터다. 

자신을 연애 대상으로 느끼지 않는 상대에게 '고백 공격'해 불쾌감을 안겨준 경험, 이성이 웃어주면 결혼까지 상상하는 일상 등을 유튜브 예능 <바퀴 달린 입>에서 거침없이 말했다. 검열 없는 발언으로 다른 패널들과 시청자에게 뭇매를 맞으면서도 곽튜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남성들에게는 공감을 샀다. 

사실 곽튜브의 본업은 구독자 158만을 보유한 여행 크리에이터로 현재 각종 예능에서 활약 중이다. 학교 폭력 피해를 딛고 여행 유튜버로 성공한 일화를 고백한 <유 퀴즈 온 더 블록>(tvN) 출연을 기점으로 대중들의 호감을 얻었다. 아싸가 인싸가 되는 드라마를 직접 쓰며 최근에는 찐따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메인 MC를 꿰찬 유튜브 예능 <조밥 곽선생>의 등장은 이제 그가 다른 찐따들의 연애 선생이 되어 이끌어주는 위치가 되었음을 확인시킨다. 

찌질한 남성성의 등장, 어떻게 봐야할까

그가 처음 찐따남의 속마음을 양지에서 대변하자 남초(남성 이용자가 다수인)커뮤니티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익명에 기대야만 뱉을 수 있는 낯뜨거운 발언들이 곽튜브 스피커를 거쳐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남성 무리에서 밀려나고 여성과 편안하게 대화해 본 적 없는 남성들이 곽튜브를 통해 양지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이를 소외된 집단이 발언권을 얻기 시작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그들의 자기 고백 속에는 철저히 대상화되는 여성,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이 엉켜 있기 때문이다. 곽튜브가 대변하는 찐따남이 신선하지만 유해하고, <조밥 곽선생>이 웃기지만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OO남' 시리즈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을 외칠 것 같은 남자. 월급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통닭을 양손 가득 사 들고 와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기를 펴는 전통적 남성성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저성장, 취업시장 악화, 젠더 갈등, 공정에 대한 높은 사회적 열망 속에서 이룰 수 없는 남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취업마저 힘든 현실에서 연애와 결혼, 그리고 가족 부양까지 청년 남성에겐 산 넘어 산이다. 

물론 힘든 현실 속에서 안 힘든 사람도 있다. 리더십, 외모, 뛰어난 재력까지 모두 갖춘 '알파남'이 바로 그 사람이다. 알파남보다 열등한 남성은 '베타남'으로 부른다. 능력은 있지만 외모가 부족해 여성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남성을 일컫는다.

'알파남', '베타남' 등은 미국 남초 커뮤니티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인데, 한국에서도 남초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알파남', 베타남'을 구분 짓는 양상이 생겨났다. 상남자와 하남자를 나눠 조롱하는 놀이문화와 연결되면서도, '베타' 아래 '감마, 오메가'의 등장은 서열 매기기가 촘촘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성은 철저히 소외된 '연애 고칭' 
 
 '알파남', '설거지론' 관련 유튜브 연애 코칭 영상 썸네일. 유튜브 캡처
ⓒ 고은
 
현실이 위 같은 계급 사다리라고 가정한다면 알파남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각종 연애 코칭 사이트가 범람했다. '여성에게 접근하는 방법', '여성을 끌어들이는 눈 맞춤 방법', '핫걸 만나는 방법' 등이 이들이 전수하는 전략이다.

유튜브에 '알파남'을 검색하면 알파남 정의부터 알파남의 되어야 하는 이유까지 줄줄이 나온다. 들어보면 결국 '알파남'이란 여성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강력한 남성성이다. 자신의 영향력 내에서 존경심과 안정감을 함께 느낄 여성을 찾는데, 결국 알파남 되기가 '잃어버린 전통적 남성성을 되찾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설적인 건 마음을 얻어야 할 연애 대상인 '여성'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에서 오는 강한 자신감, 가꿔진 외모를 획득하면 여성은 전리품처럼 따라온다는 발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때 여성은 전략을 세워 접근하고 얻어야 할 자원이지 동등한 연애 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연애 성공을 위한 각축전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조밥 곽선생>, 웃기지만 씁쓸한 이유
 
 유튜브 웹예능 <조밥 곽선생> EP1, 2 썸네일. 유튜브 캡처
ⓒ 고은
 
<조밥 곽선생>은 곽튜브와 너드남, 그리고 모태솔로 2인과 함께하는 연애 토론 프로그램이다. '인싸(인싸이더)' 사이에서 연애 관련 얘기로 질책과 놀림을 당했던 곽튜브가 찐따들의 워너비로서 연애팁을 알려주는 형식이다.

곽선생(곽튜브)도 무수한 연애 코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연애 토론에는 '왜?'가 없다. 왜 연애를 하고 싶은지, 연애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하길 원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결국 '어떻게' 여자를 만나고 '어떻게' 모태 솔로에서 벗어날지 고민하는 것에 갇혀 있다. 

패널의 반은 연애 경험이 없어서 풍부한 연애 토론도 불가능하다. 초청된 게스트가 옷 스타일을 조언하거나 이성에게 먹힐 만한 대화 스킬을 연습하는 식이다. 연락하는 상대방과 썸인지 아닌지 감별해 주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그래도 쟤보단 내가 낫지'라는 안도감과 같잖음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예상을 벗어나는 오합지졸들의 환장하는 케미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에도 패널들이 연애를 갈망하는 진심 같은 것들이 화면을 뚫고 나와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예능에서 논해지는 찐따들의 경험 나누기도, 돈벌이가 되는 무수한 연애 코티도 결국 '관계'를 배우긴 역부족이다. 갈수록 첨예하게 나뉘는 남성 서열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만이 살아남는 와중에 해답은 따로 있다고 단호히 말하고 싶다. 

대안적 남성성에 대한 상상력이 절실하다

전통적 남성성이 붕괴한 한국 사회에서 오히려 강력한 남성성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커졌다. 극소수인 '알파남'을 제외한 남성들 간의 급 나누기가 더욱 촘촘해져 위계질서가 강력해졌다. 남성 서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성을 증명해 줄 수단이 필요한데 주요 자본(결혼, 가정, 직업, 부동산 등)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면서 '연애'가 유일하게 남은 자원이 됐다.

이때 여성들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취해야 할 물건 취급받으며 걸러야 하는 '꽃뱀'이 됐다가 안 만나주는 '썅년'이 된다. 여성들은 연애 각축전에 끼지도 못하는 와중에 연애마저 못 한 남성들은 서열에서 탈락한다. 우려스럽게도 이 분노가 해소되지 않은 채 애먼 여성, 소수자, 약자에게 향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해답은 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서열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남성성, 더 나은 남성성에 대한 상상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남성들이 유해한 남성상을 공유하고 연애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전략에 몰두하지 않도록 다른 선택지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알파 메일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여성을 동료로 바라보고 우정을 쌓을 수 있는 남성들이 그 대안이지 않을까. 지금도 그런 남성들이 충분히 있고, 아직 주류의 입장이 될 만큼 활발히 논의되지 않은 것뿐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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