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천재가 쓴 풍자소설 『유토피아』
어느 날 알라딘의 지니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니?”라며 소원을 묻는다면, 어떤 나라를 말할까.
500년 전 영국에서 ‘먼 먼 어느 나라에~’로 시작하는 우화 같은 이야기가 출판된다. 토머스 모어(1478∼1535)의 『유토피아』다. 1516년 라틴어로 선보였고, 영어본은 저자가 헨리 8세에게 처형된 후인 1551년 나왔다. 말 한마디만 거슬려도 추방·처형·화형이 예사인 시대였다. 코페르니쿠스·마키아벨리와 같은 시간대를 산 영국 최고의 천재는 하고 싶은 말을 유머와 풍자 가득한 소설우화로 썼다.
지금 유토피아(Utopia)는 보통 ‘이상향’을 뜻하지만, 당시엔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책 원고를 보고 만든 신조어였다. ‘어디에도 없는(ou)’과 ‘좋은(eu)’의 같은 발음을 이용한 그리스어 말장난이다.
『유토피아』는 매우 얇고 쉽다. 아재개그식 언어유희가 여러 언어를 넘나들며 가득하다. 주인공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의 이름도 그리스어로 ‘말도 안 되는 소리(nonsense)를 하는 자’란 뜻이다. 책 속의 현학적인 단어는 사실 재밌는 속뜻을 지닌 신조어다. 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인지, 어느 것이 거꾸로 써놓은 것인지 알 수 없게 했다. 아마도 ‘숨은 뜻 찾기’를 소망했으리라.
안타깝게도 책 내용을 글자 그대로 다큐처럼 읽고, 공산사회 제도를 그대로 따라 한 나라들의 결말이 좋지 않았다. 저자가 그 함정과 위험성을 미리 알려주었음에도…. ‘모두가’ 6시간 일하기는 평생 무위도식하는 귀족과 성직자에게 노동의 가치를 알려주려는 한방이었다.
데카르트를 발전시키면서 반발한 스피노자처럼, 모어는 2000년간 무비판적으로 ‘추앙’돼 온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반론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모어는 극한의 절망과 시련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절대내공 보유자다. 궁극의 지혜는 유머다. 500년이 지난 오늘의 첨단 테크로도 닿을 수 없는 경지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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