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 놓은 고교 국어... 이러니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이준만 2023. 6. 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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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국어 교과... 대학입시에 종속된 고등학교 교육, 뒤따라오는 부조화

[이준만 기자]

 국어 교과의 교과서 표지.
ⓒ 이준만
 
고등학교 국어 교과에 과목이 많기도 많다. 공통 과목으로 국어, 일반 선택 과목으로 화법과 작문, 독서, 언어와 매체, 문학, 진로 선택 과목으로 실용 국어, 심화 국어, 고전 읽기 등의 과목이 있다. 이 밖에 전문 교과 중 국어 교과와 관련해 진로 선택 과목으로 개설이 가능한 문예 창작 입문, 문학 개론, 문장론, 문학과 매체, 고전문학 감상, 현대문학 감상, 시 창작, 소설 창작, 극 창작 등의 과목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1학년 때 '국어', 2학년 때 '화법과 작문' '독서' '문학', 3학년 때 '심화 국어' '언어와 매체' '문학과 매체' '현대문학 감상'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1학년 때 배우는 '국어'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필수 과목인 '문학' '독서' 과목과 선택 과목인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는 대체적으로 학생들의 선택을 많이 받는다. 나머지 과목은 국어를 특히 좋아하거나 딱히 다른 과목을 선택할 게 없어서 선택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궁금한 건, 왜 이렇게 국어 교과의 과목을 쪼개 놨느냐 하는 점이다. 1학년 때 공통 과목으로 배우는 '국어'에서는 문학, 독서, 문법, 화법(말하기), 작문(쓰기) 등과 관련한 글들을 배운다. 여기서 독서는 주로 비문학 지문을 일컫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1학년 국어 과목에서 배우는 글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지문에 활용되는 제재들이다. 1년에 네 번 보는,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에서도 수능과 똑같은 제재들을 지문으로 삼은 문제들이 출제된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에 종속돼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학 입시의 한 부분인 수능에도 당연히 종속돼 있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국어 교과의 과목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쪼개 놓으니, 수능과의 부조화하는 현상이 생긴다.

문제는 2학년부터

수능을 통해서 정시로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1학년 때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학교 공부를 충실히 따라가면 수능 대비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1학년 국어 과목을 통해 수능에 나오는 모든 종류의 제재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2학년 때부터 발생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2학년 1학기에 문학 과목과 화법과 작문 과목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 2학년 2학기에는 독서 과목과 화법과 작문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2학년 1학기의 경우,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수능에 출제되는 독서 지문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다. 2학기가 되면 문학 지문을 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언어와 매체 과목은 수능 국어 영역 선택 과목이니 논외로 하자.

그래서 수능을 통해 정시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어쩔 수 없이 독학을 하거나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도 방과후수업을 통해 여러 가지 강좌를 개설하고 있긴 하지만, 이건 강좌들이 수능과 직결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물론 우리 학교에 국한해서 하는 말이다. 방과후수업을 통해 수능 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가 분명 있을 터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와 사정이 비슷한 학교도 얼마든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수능만 생각한다면 국어 교과 과목을 이렇게 잘게 쪼개 놓을 필요가 없다. 국어 1, 국어 2, 국어 3과 같은 과목을 만들어 놓고 3년 동안 정규 수업 시간을 통해 수능에 출제되는 제재의 지문들을 공부하게 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문학, 독서,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등으로 국어 교과의 과목을 세분화한 데에는 아마도 수능과 같은 대학 입시를 고려하지 말고, 각 과목의 성취기준에 충실한 수업을 진행하라는 요구가 깔려 있다고 해야 옳다. 

그런데 현행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에 종속돼 있다. 여기에서 부조화가 발생한다. 문학 수업 시간에, 문학 과목에서 요구하는 성취기준에 충실한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대학 입시를 의식한 수업을 진행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와 소설을 감상하고, 시와 소설을 창작해 보는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수능 시험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교사가 정리해서 알려주고 학생들은 그것들을 잘 받아 적는 형태의 수업이 주로 이뤄진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또 문학 과목을 배우는 한 학기 동안, 정규 수업 시간에는 독서(비문학) 관련 지문을 접할 수조차 없다. 만일 문학 수업 시간에 독서 과목 관련 수업을 진행하면 선행학습금지법에 저촉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형편이니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학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국어 교과를 다양하게 쪼개 놓은 데에는 그 과목의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 교육을 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수능을 어떻게 대비하느냐가 문제인데, 그 문제는 다양한 방과후학교 수업을 개설하는 등의 대비책을 모색해 풀어야 한다. 각 과목에서 요구하는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 수업을 전개하는 것만이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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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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