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관리 노동자들의 '공짜 노동'을 아십니까

김순옥 2023. 6. 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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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특고노동자는 어떻게 사나 ④]

특수고용노동자가 월 20일 일하고 천만 원 넘게 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진짜일까?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970명을 대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업종에 상관없이 개수임금제, 공짜노동, 각종 부대비용 및 본인 부담금 발생, 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를 연속 보도한다. <기자말>

[김순옥 기자]

코웨이라는 회사에서 나오는 정수기, 비데, 청정기 등을 사용하는 가정이나 사업장을 방문해 필터 교환이나 점검 등 주기적인 관리를 해주는 사람을 '코디'라고 부릅니다. 남자들은 코닥이라고 하고요.

코웨이의 유니폼을 입고 일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객들은 코디를 코웨이의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들로 퇴직금도 기본급도 없이 건당 수수료(임금)를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공기청정기를 점검하는 코디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가전통신노조
 
업무상 비용을 제하면 한달 평균 수입 뚝 떨어져 

코디별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한 달 평균적으로 220계정(점검처리 한 건 한 건을 계정이라고 부릅니다)을 처리하고 계정 평균 수수료는 7300원 정도입니다. 즉, 한 달 동안 점검처리를 하고 받게 되는 점검수수료는 160여 만 원 정도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금액에서 업무 처리를 위해 사용되는 비용을 제하고 나면 수수료는 더욱 낮아집니다. 

회사에서는 업무상 사용 비용으로 통신비 4만 원과 업무지원비 2만 5000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2021년 10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실질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업무상 사용 비용은 코디 평균 54만 원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습니다. 그러니 평균적으로 166만 원에서 업무상 사용 비용 45만 원을 제하고 나면 120여 만 원 정도가 한 달 동안 코디들이 점검처리를 하고 받게 되는 평균 수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수기를 점검하는 코디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가전통신노조
 
제품마다 사용되는 필터와 점검 도구들이 다양하고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동 수단은 필수적입니다. 더구나 지방 같은 곳은 한 집을 점검하고 다음 집을 점검하기 위해 30~40분을 가야 하는 일도 있어서 차량이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회사가 코디 매칭이라는 영업 방식을 도입하면서 일부 코디코닥들은 빠르게 매칭을 잡기 위해 최신형으로 휴대전화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또, 코디 어플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온라인으로 교육이나 미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높은 무제한 요금제와 단말기 요금 등으로 통신비 지출도 높은 편입니다. 

자유롭게 일한다고 광고하지만, 현실은 

코디를 모집할 때는 시간이 자유롭고 육아와 가사를 병행할 수 있다며 모집합니다. 하지만 고객의 시간에 맞춰야 하는 일이라 월초에는 출발 미팅(*월초에 지국에서는 출발 미팅을 진행하는데 이때 회사의 프로모션 등의 영업정책과 마인드 교육, 그달의 개인별 영업목표 등을 작성해서 제출하게 함)이니, 위수임기간(*월초에 코디 어플을 통해 그 달 점검이 잡혀있는 고객들이 배정되는 기간. 고객과 약속을 잡을 때 어플을 통해 다음 약속을 잡는데 위수임기간에는 약속을 잡을 수가 없음)이니 이런저런 일로 지국 사무실에 출근해야 합니다.

결국 내게 배정된 계정이 많든 적든, 지국에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날 빼고 고객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가 원하는 날과 시간에 일할 수 없고 일반 정규직처럼 월초부터 일을 꼬박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한편, 일부 코디들은 신입코디들에게 계정을 나눠주기 위해 일방적으로 기존 코디들의 계정을 뺏는 '계정 갑질'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계정이 줄어들면, 수입은 더욱 감소되고, 원래 담당하던 사람이 점검업무를 하지 못하니 서비스질 문제가 대두되기도 합니다. 

코디가 해야 하는 공짜노동

코디들은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업도 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최대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객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늦은 시간이나 주말이나 상관없이 받게 되고, 만일 제품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도 코디에게 전화하는 고객들이 많아 일이 다 끝난 늦은 시간에도 무상으로 고객 가정에 방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보이지 않는 공짜 노동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제품교육이나 미팅도 모두 내 시간을 이용해 받아야 합니다. 회사는 미팅은 자율이라고 하지만, 코디들은 일부 지국에서는 미팅 불참 시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주는 경우 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전국가전통신노조 조합원들이 계정갑질, 영업강요, 공짜노동 강요를 규탄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가전통신노조
 
코웨이는 온라인, 홈쇼핑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망을 넓히면서, 고객들에게 현금지원이나 선물 등 더 좋은 혜택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코디들이 점검 외 영업으로 수입을 올리는 경쟁 자체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코디들은 고객과의 신뢰와 개인적인 친분만으로 제품을 파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렌탈료 대납이나 선물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또, 설치 시 전기공사나 벽에 타공하게 되는 등의 난공사가 필요한 경우에 고객이 추가 비용을 지급하게 되는데 난공사비를 받지 않는 경쟁사들도 많다 보니 판매를 위해 난공사비까지 자비로 대납해 주는 경우가 있어 영업수수료(임금)는 더욱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조합에서는 이런 부당한 일들을 개선해 가기 위해 회사와의 교섭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되어,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줄 것을 노동부에 요구하며 작년부터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부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고객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일해온 우리 코디, 코닥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고,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터에서 긍지를 갖고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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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국가전통신노조 코웨이코디코닥지부 김순옥 부위원장이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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