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천주교가 벌인 일 [수산봉수 제주살이]

이봉수 2023. 6. 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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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봉수 제주살이] '이재수 난'과 제주 시국기도회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내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기자말>

[이봉수 기자]

▲ 시국기도회 사제단  26일 밤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과 주권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 이봉수
 
▲ '잠들지 않는 남도' 안치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함께 부르고 있는 시국기도회 참가자들. ⓒ 황기자TV 제공

'민중가요'가 터져 나온 천주교 미사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 (...)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이 세월이여 /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천주교 미사에서 민중가요 <잠들지 않는 남도>가 봉헌되는 곳이 제주도다. 장맛미가 잠시 멈추고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지난 26일 저녁 7시반,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길에서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성당 안에서 열리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기도회가 11회째인 제주에선 길에서 열렸다.

'일본 핵폐기수 해양투기 결사반대' '윤석열 퇴진'. 전국에서 온 50여 사제와 수녀들, 200여 평신도와 도민들이 저마다 종이표지판을 치켜 올리며 구호를 외칠 때 그것은 노래처럼 '외로운 대지의 깃발'이 아니었다. 장맛비가 언제 또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에도 성당 안이 아닌 야외에서 기도회를 연 이유는 집회를 더 개방하려는 의도였다. 슬리퍼를 신거나 반려견을 데리고 근처를 산책하던 시민이나 관광객도 한동안, 또는 끝까지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이날 불린 <잠들지 않는 남도>는 가수 안치환이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읽고 '민란'과 '폭도'로 매도된 숱한 제주의 민중항쟁과 4.3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제주는 19세기 중반 이후에도 1862년 4차례 민란(임술민란), 1898년 방성칠 난, 1901년 이재수 난 등 숱한 민중항쟁이 일어난 고장이다.

척박한 땅에서 명칭만 그럴싸한 '목민관(牧民官)'들의 가렴주구를 견디다 못 해 일어난 저항운동이지만 가혹하게 진압된 뒤 '장두(狀頭)'들은 예외없이 처형됐다. '장두'는 여러 사람이 서명한 소장의 첫머리에 이름을 적은 사람을 뜻하는데, 기층민중을 대변한 '실천적 지식인'이라 할 만하다.

제주민중과 충돌한 천주교의 '흑역사'
 
▲ 삼의사비 이재수 난의 지도자였다가 처형된 이재수·오대현·강우백을 기린 서귀포시 대정읍성 앞 삼의사비. 뒤쪽으로 읍성이 보인다.
ⓒ 이봉수
 
특히 이재수 난은 천주교와 제주민중이 충돌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제주에서 천주교가 주도하는 시국기도회가 열린 사실은 얼핏 생각하면 '역사의 모순'을 느끼게 한다. 천주교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도 앞장서서 반대했다. 천주교가 제주에서 극심한 갈등과 비극을 극복하고 교세가 강하면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변혁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이재수 난의 경과를 살펴보자. 박해 받던 천주교는 1886년 한불수호조약 등으로 선교의 자유를 얻은 뒤 교세확장에 적극 나섰다. 프랑스 신부는 왕의 신표인 '여아대(如我待)'를 받아 치외법권의 특혜를 누렸다. 그 신표는 '나처럼 대하라'는 뜻이었으니 '암행어사 마패' 같은 특권을 준 것이다.

1899년 제주 선교를 시작한 천주교의 신도수가 2년 만에 1300명으로 늘어난 데는 일반인도 개종하면 상당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도들은 정부가 파견한 징세관과 유착해 가혹한 세금 징수의 악역을 자임했다. 민중들은 '상무사'를 조직해 이들과 맞섰는데 충돌 과정에서 한 노인이 맞아 죽는가 하면 강간 사건도 벌어졌다.

그러나 천주교인들은 '하느님의 법만 받을 뿐 조선의 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며 옥문을 부수고 범인을 빼내 갔다. 이때 장두로 나선 인물이 강간 사건 피해자의 남편인 대정현의 오대현과 강우백이었으나 천주교도들의 선제공격으로 납치되고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새로 장두로 추대된 이재수는 제주 3읍에 통문을 띄우고 제주성을 함락했다. 흥분한 군중은 천주교도 317명을 살해했다.

그러나 프랑스 군함이 제주 앞바다에 나타나고 강화도 진위대가 파견돼 진압에 나섰다. 세 '장두'는 세제와 교회의 폐단을 혁파하고 도민의 죄를 묻지 말 것 등을 요구하며 투항했지만, 셋은 처형되고 제주도민은 프랑스에 6315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교회의 수난'이냐 '민중항쟁'이냐
 
▲ 황사평 순교자묘역 제주시 화북2동 황사평 순교자묘역은 이재수 난 때 봉기군이 진을 친 들판이었다.
ⓒ 이봉수
 
이 사건을 천주교 쪽에서는 '교회의 수난'을 뜻하는 '교난'(敎難) 또는 신축년에 일어났다고 해 '신축민란'으로 불렀다. 하지만, 제주민중은 반봉건·반외세 항쟁으로 여겨왔다. 민중이 처음 봉기한 대정읍 안성리에는 삼의사비(三義士碑)가 서 있고, 천주교도들이 묻힌 황사평은 천주교의 성지가 됐다. 황사평은 봉기군이 진을 친 들판이었는데 천주교 희생자들의 순교자묘역으로 제공됐다.

삼의사비는 원래 이재수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여동생 이순옥씨가 주도해 제주도민의 기부로 1961년에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고 초라한 삼의사비를 안타깝게 여긴 대정고을연합청년회가 1997년에 세운 거창한 비석이 대신 서 있다. 비석에는 이재수 난의 원인과 경과를 자세히 기록했는데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6일 대정읍성에서 만난 한 노인(70)은 "추사 유배지를 관리하는 일을 하다가 은퇴했다"고만 자신을 소개하면서 "옛 비석을 땅에 묻어버린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옛 비석의 비문은 더 과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고 번듯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복원은 아닐 터이다. 유학시절 유럽을 여행하며 느낀 것은 우리가 책에서나 접한 위대한 사상가, 문인, 예술가들의 무덤과 비석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서 더 위대해 보였던 경험들이다. 시인 워즈워스, 화가 반 고흐 등 인류 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비석이 대개 그랬다. 공동묘지 한 구석, 앞면만 연마한 조그만 자연석에 이름만 새겨져 있어 표지판이 없으면 찾기도 힘든 곳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진실 규명과 반성, 그리고 화해
 
▲ 화해의탑 2021년 천주교 제주교구가 황사평 순교자묘역에 세운 화해의 탑.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어갑시다’란 문구가 새겨졌다.
ⓒ 이봉수
 
이재수 난에 관한 제주도민과 천주교의 인식 차이는 새 천년을 눈앞에 둔 1999년 천주교 제주교구가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교회사의 문제점을 반성하는 시도를 하면서 봉합되기 시작한다. 2003년에는 제주교구와 1901년제주항쟁기념사업회가 '신축년 제주항쟁 102주년 기념학술대회'를 열어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은 '상호존중의 기조 위에 과거사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제주 공동체의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정한 화해는 진실을 밝히고 반성을 바탕으로 태도를 바꿔야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 천주교는 70년대 이래 민주화와 인권 운동의 선봉에 서면서 교세를 크게 신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3학살 배후세력은 반성 안 해

기독교의 또 다른 갈래인 개신교 쪽의 영락교회는 제주4.3 때 무고한 양민들까지 악랄하게 학살한 서북청년단의 배후로 거론되고 있으나,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반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지난 9일 영락교회 조찬기도회에서 "군인과 경찰이 침략자에 맞서다가 초래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해주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제주4.3, 광주5.18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 배상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서북청년단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단체가 올해 4.3추모 행사장에 나타난 것도 새로운 조짐이다.  

"'원자력마피아' 인류 생존을 책임질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제주 시국기도회에서 낭독한 성명서를 통해 "일본과 한국 두 정부는 입을 맞춘 듯 국제원자력위원회(IAEA) 조사 결과를 믿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며 "원자력 체제 유지를 위해 오늘까지 거짓과 속임수, 은폐 공작을 일삼아 온 '마피아'가 과연 인류 전체의 생존을 책임져 줄까"라고 반문했다.

사제단은 또 "심각한 위험을 알아서 해저 터널을 통해 수 km 밖에다 쏟아버리는 얌체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인류 전체가 양심의 시험대에 올랐다"며 "핵 폐수의 꼭지를 트는 순간부터 속도만 느릴 뿐 핵폭탄 단추를 누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종교도 양심의 심판대에 올랐다
 
▲ 제주 시국기도회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수녀와 신도, 제주도민들이 ‘해양투기 결사반대’ 등의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봉수
 
이어 사제단은 "양심이 무너지고 타락한 것은 돈과 쾌락 앞에 맥을 못 추는 현대문명의 병폐 때문이지만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린 종교의 책임도 크다"며 "믿어서 복 받고 죽어서 천당 가자는 복음이라면 세상을 속이고 좀먹을 뿐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으니 종교 또한 양심의 심판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사제단 송년홍 비상대책위원장은 강론에서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흑과 백, 선택에는 중립이 없습니다. '예' 할 때는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이 바로 선택하는 길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는 "퇴진이 아니면 탄핵도 있다"며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일본에게 한마디도 못 하는 무능력자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성찬 의식이 끝난 뒤 김정도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 실행위원장은 연대발언을 통해 '과학'이란 말이 악용되고 있다면서 핵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전국 순회 시국기도회는 7월 3일 부산, 7월 10일 안동에 이어, 8월 16일 서울에서 일단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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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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