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학원, 편의점보다 3배 많다…마곡 등 新학원가 등장

이가람, 최민지, 장윤서 2023. 6. 2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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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강서구 마곡동의 한 상가 건물 모습. 2019년말에 준공된 이 상가의 2층과 3층에는 각종 학원이 들어섰다. 이가람 기자

‘2만4284개’
지난달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에 있는 학원의 총 숫자다. 이미 동네 골목 곳곳까지 들어선 서울 내 카페 수(1만7026개)를 크게 웃돈다. 과당경쟁을 막고자 점포 간 출점 거리 제한까지 생긴 편의점(8597개)보다 약 3배 더 많다. 대치동과 같은 '사교육 특구'를 넘어 서울 시내 곳곳에 학원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사교육 공화국’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사교육비 25조 돌파…1600개 학원 몰린 대치동


김영옥 기자
지난해 25조원을 돌파한 사교육비 대부분은 학원에 모인다. 통계청의 2022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교육비(25조9538억원) 중 학원 수강이 차지한 금액은 18조8028억원(72.4%)에 달한다. 전국 초·중·고교생 545만여명 중 서울 학생(80만6340명)은 14.8%이지만, 사교육비 지출에서는 22.2%를 차지한다. 사교육 참여율도 전국에서 서울(84.3%)이 가장 높다.

중앙일보는 학원이 지역에 어떻게 정착하고 파고드는지 분석하기 위해 서울 시내 학원 및 교습소를 467개 법정동별로 분류했다. 일종의 '사교육 지도'인 셈이다. 2019년~2023년 서울 초·중·고교생 수는 6만여명 줄었지만 전체 학원 수는 18개 감소하는데 그쳤다. 학원 수가 늘어난 법정동은 97개인데, 줄어든 곳은 147개로 더 많다. 그만큼 기존 사교육 특구와 새로 만들어진 학원가를 중심으로 학원들이 밀집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경민 기자

467개 법정동 중 학원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 대치동(1609개)이다. 이어 양천구 목동(1052개)·양천구 신정동(887개)·노원구 중계동(601개)·노원구 상계동(494개) 순이었다. 학원이 아예 없는 곳은 152곳으로, 대부분 종로구와 중구 등 구도심 지역이었다.

1600여개 학원이 몰린 대치동은 부동의 ‘사교육 1번지’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대치동은 2019년 1381개였던 학원 수가 4년 사이 228개 더 늘었다. 의대 정시 모집 합격자 중 절반가량을 배출했다고 알려진 대치동의 A학원은 18개였던 분원이 4년 새 40개로 불어났다. 전통적인 학원가로 손꼽히는 목동(989→1052개)과 중계동(576→601개)도 양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100개 넘는 학원 급증…마곡동 학원가의 등장


김영옥 기자
대치동, 목동 같은 전통적인 학원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인근 지역으로 사교육 영토가 넓어지고 있다. 최근 학원 수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신(新) 학원가'의 등장이다.

강서구 마곡동은 2019년 학원 수가 100개에 불과했지만 4년 사이 2배가 넘는 235개가 됐다. 23일 찾은 마곡역 7번 출구 인근 상가 외벽은 학원 간판과 홍보 문구가 가득했다. 2019년에 지은 8~10층 규모 신축 상가 건물은 공실이 적지 않았지만, 2층과 3층은 수학·영어 학원과 주산·암산 교습소, 학습센터 등으로 꽉 차있다.

마곡동은 16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는데, 2014년부터 입주를 시작해 1만세대가 넘는 대단지로 성장했다. 최근에도 상가 건물이 계속 생기고 있다. 이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2017년부터 민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19년에 상가가 잇따라 준공되면서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며 학원이 제일 먼저 들어섰다”고 말했다.

마곡엔 지역적으로 가까운 목동 학원이 진출한 사례가 적지 않다. 목동의 특목고 입시로 유명한 B영어학원은 지난해 말 마곡에 첫 직영점을 열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광명 등 학원이 성장할 수 있는 여러 지역을 두고 고민 끝에 마곡을 선택했다”며 “1000명 규모 초등학교도 있고 LG사이언스파크나 이대서울병원 등이 들어서면서 고소득층이 꾸준히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문을 연 지 6개월 만에 700여명의 수강생을 확보했다고 한다.

마곡역 인근의 공진초는 학생 수가 1937명으로 서울에서 두 번째로 큰 초등학교다. 가장 큰 학교는 대치동 학원가 인근의 강남 대도초(1985명)다. 학생 수가 급감하는 중에도 많은 학생 수를 유지하는 학교에는 사교육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공진초 건너편 2층 상가건물에는 학원 14곳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공인중개사 홍모씨는 “학원이나 교습소를 차리려고 대기하는 학원장이 10명이나 된다”며 “상가를 매수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지만 기존 세입자가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어학원장 C씨는 “목동이나 대치동만큼 학군이 좋지 않지만, 주거비를 아끼는 대신 사교육에 더 투자하겠다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학원 때문에 강 건널 필요 없다”…목동 추격하는 마포


지난 23일 강서구 마곡동의 한 상가 건물 입구에 부착된 학원 홍보물의 모습. 이가람 기자
지하철 공덕역과 대흥역 일대에 붙어있는 마포구 대흥동·염리동·신수동도 급부상하는 학원가다. 이들 지역에도 4년 사이 86개 학원이 새로 들어섰다. 그동안 강남은 대치동, 북부는 중계동, 서남 지역은 목동이 학원가로 자리 잡았다면, 서북부 지역은 이렇다 할 학원가가 없었다. 하지만 재건축으로 유명 건설사 브랜드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덕역이 교통의 요지로 급부상하면서 젊은 부부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강남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졌고 재개발 예정지는 신혼부부가 자녀 교육을 위해 구축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기조차 어렵게 됐다”며 “마포가 대치동에 이은 제2의 학원가로 급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재건축을 앞둔 목동은 당분간 학생 공백이 발생하게 되고, 젊은 부부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마포가 인근의 사교육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마포의 한 공인중개사는 “재개발 이후 소득과 학벌 수준이 높은 부부들이 모여들면서 마포의 생활수준이 목동보다 높아졌다”며 “대치동 유명 학원의 분원들이 계속 입점하면서 좋은 학원을 찾아 강을 건너는 ‘목동 라이딩’은 이제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동 역시 75개였던 학원이 4년 사이 135개로 증가했다. 바로 옆에 맞붙은 명일동에도 이미 356개의 학원이 몰려있지만 학원가의 영역이 더 커진 것이다. 상일동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이른바 ‘고덕동 대장주’로 불리던 4932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2019년 9월부터 입주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학원 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 이 아파트 상가에만 23개의 학원이 들어섰다.


“사교육 핵심은 결국 상위서열 대학진학”


전문가들은 대입 경쟁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학생 수가 감소하더라도 학원은 특목고 준비, 선행학습, 재수종합, 의대반 등 경쟁적으로 입시공포를 이용한 일종의 ‘상품’을 전략적으로 내놓고 있다”며 “사교육의 핵심은 결국 ‘상위서열 대학진학’을 위한 경쟁인 만큼 정부가 학벌사회 완화나 대학 상향평준화 등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사교육 시장은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장은 "대학 서열화 문제가 있더라도 대입이 학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면 학생들은 학원을 찾지 않을 것"이라며 "학교에서 대입 준비가 어렵다는 시그널이 아래 학년으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학원이 계속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람·최민지·장윤서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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