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낳을 자격, 키울 자격, 버릴 자격?

조민영 2023. 6. 2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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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많은 사랑을 받던 와중 격렬한 비난 여론에 직면한 적이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고등학교 3학년 영주와 현이가 '고딩 엄빠'가 되겠다고 나선 과정을 그린 회차였다.

부모 될 준비가 안 된 애들이 끝내 출산을 결정하는 과정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출산을 미화해 10대 임신 출산을 조장하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최소한 안정적 직장은 있어야, 내 집은 마련해야, 혹은 육아를 도울 나의 부모(아이의 조모)는 있어야 아이 낳고 키울 자격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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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지난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많은 사랑을 받던 와중 격렬한 비난 여론에 직면한 적이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고등학교 3학년 영주와 현이가 ‘고딩 엄빠’가 되겠다고 나선 과정을 그린 회차였다. 부모 될 준비가 안 된 애들이 끝내 출산을 결정하는 과정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출산을 미화해 10대 임신 출산을 조장하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학교 그만두고 돈 벌겠다’ ‘아이 낳고도 공부 잘할 수 있다’는 현이와 영주의 의지는 그저 철없는 고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한 장면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이와 영주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모가 되겠다고 나섰으나 현실의 벽을 경험하면서 지칠 대로 지쳐 마을 어른인 두 할머니 춘희(고두심)와 옥동(김혜자)을 찾아갔을 때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현이는 임신한 영주에게 반찬을 챙겨주고, 영주는 오랜만에 편안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는다. 이를 바라보던 할머니들은 “아꼽다(예쁘다). 어린 것들이 애를 난댄(난다고) 하고 기특허다”며 웃는다. “기특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쓴 대사인가. 영주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내가 전부인 아빠를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 그치만 나도 아빠가 없어 외롭다”고 울부짖을 때서야 이해가 됐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닥친 10대들은 사실 누구보다 무섭고 외롭고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져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이제 어른과 사회가 해줄 것은 잘 해내도록 응원하는 일 아니겠냐고 작가는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모두가 편이 돼도 힘든 게 육아다. 돈과 시간, 부모의 기본 소양과 양육법의 중요성도 갈수록 강조된다. 끔찍한 아동 학대, 유기 사건 등은 ‘부모 자격론’을 강화시킨다. 부모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네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질책도 ‘낳을 자격’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만큼이면 충분한 자격일까. 성인으로 결혼해 이른바 ‘정상’ 부부가 되면 자격을 갖춘 건가. 최소한 안정적 직장은 있어야, 내 집은 마련해야, 혹은 육아를 도울 나의 부모(아이의 조모)는 있어야 아이 낳고 키울 자격이 있는 걸까. ‘이 정도의 부모’는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 그 자체를 선택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이들이다. 이들에게 아이를 ‘낳을 자격’ ‘키울 자격’을 말하는 건 무용한 것을 넘어서 위험하다. 반대로 ‘낳고 기르면 안 되는’ 기준으로 읽힐 수 있어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버릴 자격’이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와 불법 입양거래 실태를 다룬 영화 ‘브로커’에서 아이를 버리려는 소영(아이유)도 엄마 될 자격을 말한다. 소영을 성매매로 끌어들인 존재였던 ‘포주’ 여성은 “그런 게 무슨 엄마가 된다고” 힐난한다. 그런 소영이 모성애를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기를 불법 입양시키려는 이들과 함께 다니면서다. 아이를 아끼는 마음을 공유하고, 지지하고, 위로를 나눌 가족 같은 존재의 힘이다.

출산했지만 등록되지 않은 아이가 지난 8년간 2236명에 달한다는 뉴스에 온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갑자기 확인된 사실 같지만 같은 기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가 1400여명이다. 언제든 관심을 가졌다면 알았을 사실이다. 걱정되는 건 ‘자격 없는 출산’ 자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또 커지는 것이다. 비난은 무용한 반면 위기 임신·출산 시 초기에 어떤 도움과 가이드를 받았는지에 따라 향후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는 건 입증된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건 “왜 낳았냐”는 비난이 아니라 선의의 응원과 지지를 전할 방법을 찾는 것 아닐까.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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