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돌 같던 이에게 ‘용서’를 던졌더니···[개척자 비긴즈]

최기영,이영은 2023. 6. 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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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스무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난주간 사역비 프로젝트. 이름에 거창함이 묻어나지만 사실 ‘작게나마 의미 있게’에 방점을 둔 개척 공동체의 몸짓이었다. 돌아보니 프로젝트는 종려주일의 시작과 고난주간을 거치는 동안 공동체에 진하게 가슴을 물들일만한 장면들을 가져다줬다. 부활절 예배가 진행되는 공간의 공기부터 전과 다름이 느껴졌다. 그만큼 내는 헌금에서 받는 헌금으로의 경험이 성도들에게 적잖은 임팩트를 줬던 것 아닐까.

부활절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을 드리며 말씀을 나누는데 주중에 사역비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얘기를 들었던 터라 개척교회 초보 목사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헤아릴 수 없는 감사의 감정이 샘솟았다. 공동체에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고난주간 사역비란 이름의 7만원.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작은 재정일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 공동체의 개척자들이 쏘아 올려진 이 작은 공이 큰 울림을 줬음은 분명했다. 용서를 하고 또 받기 위해 닫혔던 마음의 껍질을 깨고 용기를 꺼냈다. 사역비가 만들어준 한 끼 식사가 교제의 마중물이 되어 형제를 용서했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용서했으며, 친아버지를 용서했다. 남편을 용서했고 아내를 용서했다.

가볍게 던진 말을 지키지 못해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을 만났고, 아직 사역비를 사용하지 못하고 기회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자꾸 가족들이 자신에게 밥을 사야 한다고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부분 가정 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로 시작되는 예루살렘의 회복이 우리 공동체 속에 이뤄진 것을 봤다.

그야말로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거쳐 용서와 사랑의 사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은 예배의 시작부터 달랐다. 우리 공동체는 한 학원 강의실 장소를 빌려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드리려면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문은 학원의 메인 입구다. 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웰컴 테이블과 웰컴 티 그리고 간식이 준비돼 있다. 성도들이 커피를 마시며 일주일 만에 만난 영적 동지들과 근황 토크를 나눈다. 몇 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해 자신이 자주 앉는 자리로 향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자세로 묵상하며 예배를 준비한다. 그게 우리 작은 공동체 나름의 루틴 같은 거였다.

그런데 이날은 왠지 다들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부활의 기쁨이 가득한 상태, 서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무엇을 나누어도 좋은가 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초보 목사도 이렇게 기쁜데 예수님은 얼마나 기쁘실까. 마음이 저릿하다.

삶의 자리에서 잠시 머물고 왔지만 같은 마음으로 연결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인한 기쁨이며 행복이었다. 성도들이 커피를 나눈 곳에는 2023년 표어가 크게 붙어 있다. ‘복음으로 살다가 좁은 길에서 만납시다.’ 복음으로 살아온 우리의 발걸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서로 발견했고 따듯하게 그 발걸음을 인도해주신 주님의 손길을 느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외롭거나 힘든 길이 아닌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웅장해졌다.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원래 예배드리던 자리에 앉아 예배하지 않고 웰컴 테이블이 놓인 공간에서 그대로 예배를 드렸으면 어땠을까. ‘그곳에서 서서 삶을 나누고 예배를 드렸다면’이라는 미련이 남는다. 준비된 대로 찬양과 설교를 하지 않더라도 삶으로 말씀을 살았던 우리의 나눔이 그 안에서 더 가득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쨌든 1차로 커피를 마시고 모두 예배의 자리에 앉았다. 성도들 앞에서 짧게 인사하고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를 하고 있는데 성도들의 시선에 눈이 갔다. 대부분 소쿠리에 가득 담긴 소금빵과 작은 병에 담긴 진보라색 포도 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첫 성찬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까’ 등 엄청난 고민을 했더랬다.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께선 돕는 자를 예비해두셨다. 한 선배 목사님의 조언으로 성찬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다(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다시 전한다).

성찬기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 공동체만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교회에서의 성찬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나를 기념하라’라는 문구와 십자가가 새겨진 하얀색 포 아래 은색이나 금색으로 도금된 성찬기에 떡과 포도주가 소분돼 있는 모습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그 모습을 보고 든 처음 생각은 이거다. ‘양이 너무 적은데?’ 떡은 각설탕보다 작았다. 포도주는 한 모금도 되지 않았다. 양을 적게 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병과 분잔을 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함일까. 누가 떡의 크기와 포도주의 양을 정했는지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성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첫단추는 ‘최적의 소금빵 찾기’였다. 아내와 딸 그리고 내가 소금빵 평가단이 되어 빵의 크기, 구움의 정도, 맛 등을 비교하며 성찬에 쓰일 소금빵 선발에 나선 것이다. 주변 빵집을 돌며 소금빵을 구입해 맛을 봤다.

주일 오전 10시에 받을 수 있는 완벽한 크기와 색깔, 맛을 가진 동네 빵집을 선정했다. 조언을 준 선배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오기 전 에어프라이기로 빵 냄새가 나도록 후각부터 사로잡게 했는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 공간에서 에어프라이기는 무리였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효과가 났다. 갓 구워진 빵 스스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에어프라이기 효과가 아주 조금 났다.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이윽고 예배는 시작됐다. 메시지와 함께 고난주간을 아름답게 물들인 사역비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며 용서로서 사랑을 보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으로 배웠음을 나눴다. 그렇게 부활절 예배는 ‘나를 기념하라’는 성찬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병과 분잔을 시작했다. 앞으로 나와 소금빵과 포도주스를 받아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빵과 포도주를 받았을 때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빵 맛있다. 그치?”

‘어라? 이게 아닌데.’ 벌써들 먹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면서 잠시 가지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맛있는 빵 냄새가 1시간 동안이나 스멀스멀 올라왔으니 배가 고플만 했다. 한 곳에서 실소가 나왔다. 그 옆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때가 차매 일제히 팝콘이 터지듯 예배 공간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성찬은 웃음으로 가득했고 부활은 기쁨으로 기억되었다. 함께 예배를 드린 성도들은 지금도 소금빵과 포도주스를 먹고 마시면 부활절이 생각이 날 것이다. 사역비를 통한 용서와 사랑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러면 됐다. 마치 영화 촬영장의 NG장면 같았던 부활절 성찬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다시 정돈하고 함께 고백했다. “우리의 배고픔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소서. 우리의 목마름이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소서.”(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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