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나무가 자라는 집에는 아픈 사람이 없다

완도신문 정지승 2023. 6.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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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전국 70%의 비파 생산... 2011년 집중 육성해풍 맞고 자란 열매 당도 뛰어나

[완도신문 정지승]

ⓒ 완도신문
 
현악기 비파(琵琶)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비파(枇杷). 6월 그 황금빛 열매가 그윽한 향기로 우리를 유혹한다.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에 들지 못했지만 군자가 좋아하는 과일에 포함되어 수묵화에 종종 등장하는 나무. 거뭇한 수묵화에 샛노란 열매의 색채가 은은하게 퍼져 퍽 인상 깊게 보았던 때가 있었다.

남송시대 화원 임춘은 화조도로 유명했던 인물인데, 그의 비파산조도와 비파수우도가 비파 그림의 대표작이다. 이후, 사군자를 그리는 화원들에 의해 비파나 포도, 복숭아와 같은 과일 그림이 활발하게 그려졌고, 초충도나 화조도와 함께 일반에 전해지면서 조선시대 민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비파 열매와 잎은 조선말기 장승업의 그림 기명절지도의 소재로도 사용됐다. 구한말의 거장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서화를 배우고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이한복(1897~1940)의 비파난화 역시 비파 그림으로는 유명하다.

오창석체의 전서를 잘 쓰고 서화협회 회원이었던 그는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8회까지 작품을 출품했는데, 글씨와 그림 중 비파난화를 같이 출품해 입상했다.
 
ⓒ 완도신문
 
비파나무가 자라는 집에는 아픈 사람이 없다는 말은 비파의 약성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집마다 약나무로 하나씩 심었다는 비파나무 약성에 대해서는 요즘 학계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당대학교는 비파 열매를 집중 연구해서 아토피 질환에 특효가 있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등 비파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비파는 향이 좋아 음식 첨가제로 유럽에서도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는데, 완도에서는 과육이 풍부한 '완도비파'를 육성해 상품화하고 있다. 전국 비파 생산량 70%가 완도에서 생산된다. 비가림 시설에서는 5월에, 노지에서는 6월에 수확한다.

비파는 장미과의 늘푸른잎나무로 자연에서는 10미터까지 크고 중국 남서부가 원산지며, 과일로서는 드물게 한겨울에 꽃이 핀다. 중국에서 비파열매를 노귤(蘆橘)로 불렀다. 양쯔강 이남 전역에서 생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남부 내륙에서만 열매가 열려 잎에 비해 열매는 일반에 널리 퍼지지는 못해 귀한 대접을 받았다. 

1477년 조선 세종의 명으로 편찬된 의방유취에서는 위암에 대한 처방으로 비파잎의 효능이 등장한다.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위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고 알려져서 그 약효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된 기록처럼 전한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서 유의태가 위암에 걸렸는데,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친구인 김민세가 바로 알아챈다. 유의태가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비파엽 냄새가 난다고 답했다. 의학에 밝은 유의태가 비파잎을 먹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삼국지의 조조와 비파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조조는 그의 집 정원에 있는 비파나무를 매우 아꼈다. 그래서 누구도 열매를 따지 못하게 하고 매일 그 숫자를 세어 보기도 했다. 어느 날 보초병 중 하나가 몰래 비파 두 개를 따먹었고 조조는 비파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조조는 곧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꾀를 내어 비파나무를 베어내라고 명했다. 그러자 보초병이 "그렇게 맛있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왜 베어버리십니까?"라며 놀래서 범인을 바로 잡아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천하의 미식가로 알려진 소동파는 손님을 접대할 때마다 비파를 즐겨 대접했다고 하니 저장성이 희박한 열매를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해서 음식에 넣어 맛을 배가시키지는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덧붙여 본다. 

그 밖에 중국계 이민자가 하와이에 비파를 반입한 것과 일본에서 이스라엘과 브라질로 비파가 퍼졌다고 한다. 지금은 터키와 레바논, 그리스, 이탈리아 남부, 스페인, 프랑스 남부, 아프리카 북부에서도 재배되고 인도 등지에도 널리 퍼져 비파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법이 생겨났다. 

아열대 과일로 국내에서는 완도군이 2010년부터 하우스 재배를 시작해서 이듬해부터 특화작물로 집중 육성했다. 완도에서는 2022년 기준 연간 130톤 정도의 비파를 생산하고, 그 외 남해와 거제도 등지에서도 노지에서 소량 재배한다.

지역 특화작목으로 재배하고 있는 비파로 만든 와인이 지난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폐회식 환송 만찬의 만찬주로 사용돼 눈길을 끌었다. 전남도가 주최하는 남도 전통주 품평회 과실주 부문에서도 최우수상에 2015년, 2021년 두 차례 선정됐다. 

군외면 망축리 비파이야기 농장에서 수확한 비파는 유명백화점에도 납품한다. 양동근 비파 명인은 무작정 비파가 좋아서 귀농해 오로지 비파 생산에 정성을 쏟고 있다.

생과로 먹어도 좋지만 완도비파는 농축 주스와 비파잎 차, 비파 와인, 비파 식초 등 다양한 형태로 맛볼 수 있게 개발하여 판매한다. 비파과실은 황금색을 띠고 있으며 과즙이 많고 맛과 향이 뛰어나며 항산화, 피로회복 등의 효능을 갖춘 웰빙식품이다. 

지금 완도에서는 해풍을 맞고 자란 황금색 비파 수확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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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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