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싸움의 승자는 인도?…키신저 극찬했다, 이 외교관 전략

전수진 2023. 6. 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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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나렌드라 모디(오른쪽) 총리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모디는 22일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열렸던 지난해 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미국 주도로 러시아 규탄 결의안 채택을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상임 이사국 중 3개 국가가 기권했다. 예상과 기대를 깨고 기권표를 던진 국가는 인도.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과 손잡고 쿼드(Quad, 미ㆍ일ㆍ호주ㆍ인도의 안보협의체)의 일원이 된 그 인도다. 러시아 규탄 불참뿐 아니라 인도는 전쟁 중에도 계속해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며 교역을 유지해오고 있다.

동시에 인도는 미국을 통해 오랜 앙숙 중국을 이이제이(以夷制夷)하고 있다. 미ㆍ중 패권시대, 미국의 새 외교 키워드인 인도ㆍ태평양 전략에도 이름을 올렸다. 인도 스타일의 국익 제일주의 외교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를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인도는 동맹을 믿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77%에 달하는 국정 지지율 뒤엔 외교 정책에 대한 지지가 있다. 인도 역시 국내 정치는 분열의 극단을 달리지만, 국론의 조각을 잇는 역할을 외교가 하고 있는 셈이다.

나렌드라 모디(오른쪽) 인도 총리가 2021년 뉴델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환영의 제스처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의 국익 제일주의 외교의 중심엔 이 인물이 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2019년부터 나렌드라 모디의 외교장관으로 활약해오고 있다. 국익 제일주의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내 외교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언급한 외교관이다. 대개 막후에서 조용히 외교 조종간을 잡는 것을 즐기는 그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한 단어는 "다극화된(multipolar) 세계"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물으며 선택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에서 인도는 어느 쪽도 아닌 국익만을 택한다는 선언이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말했다. "1945년 이후 국제사회 질서는 급격하게 변했으며 이제 새로운 형식(template),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한 시대로, 동맹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말인즉슨, 모든 분야에서 궤를 맞추어 협력하는 타이트한 동맹 대신 유연한 파트너십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반응은 어떨까. 괘씸죄로 다스리는 대신 인도 마음 살피기에 나섰다. 모디 총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초청으로 22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사전 준비차 인도를 찾은 인물은 미국 외교의 핵심 브레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그만큼 인도가 미국의 현재 국익에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다.

미국 외교의 핵심 브레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은 지난 4월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설리번은 한 술 더 떠 자이샨카르 장관의 '파트너 론'에 동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설리번 보좌관이 인도에서 "미국 주도의 새 질서"를 강조하면서 "파트너"라는 단어는 24번 반복했으나 "동맹"은 단 두 번 언급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인도가 미ㆍ중 패권 시대, 동맹 대신 파트너십이라는 시즌2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이샨카르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표현했다. 모디 총리의 방미에 맞춘 인터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도의 자국 중심 외교에 대한 설명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이코노미스트가 붙인 기사의 부제는 "인도는 자국 이익 중심 외교(self-interested diplomacy)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였다.

인도 외교장관인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오른쪽)와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지난 1일 남아공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도의 자국 중심 외교의 산물 중 하나가 핵보유국 인정이었다. 인도는 1968년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며 핵 개발에 나섰다. 반대와 규탄의 목소리를 냈던 미국은 그러나 2005년 인도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다. '민간 원자력 에너지 및 우주 분야 협력 계획 공동 성명'이라는 문서에 합의하면서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이코노미스트에 국방 관련 협력을 강조하면서 "'중요하다'는 단어가 충분하지 않을 정도"라며 "인도와 미국과의 관계는 (2005년 공동성명 이후) 지난 20년간 심화해왔으며(intensified), 대부분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 그러했다"고 강조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이어 "인도의 엘리트 층은 사실 미국을 의혹의 눈길로 바라봤다"고도 덧붙였다. 국가 지도자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미국에 대해 외교장관이 한 언급치고는 다소 도발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모디 총리의 방미를 주목하고 있을 국가, 중국에 대해 자이샨카르 장관은 인터뷰에서 말을 아꼈다. 이코노미스트가 "중국과 (인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미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라고 묻자 자이샨카르 장관은 이런 답을 내놨다. 그대로 옮긴다. "중국과 우리가 가진 문제는 2020년 여름에 촉발된 것이다. 중국과의 일련의 문제들과 미국과의 관계 발전의 상관관계는 없다. 미국과의 관계는 지난 20년 간 꾸준히 발전해왔고 지난 10년 동안 그 발전엔 속도가 붙었다. (인도와) 중국과의 국경에서 발생해온 어떤 것도 인도와 미국의 관계와 무관하다는 실증적 데이터도 있다. (중국이 미국과 인도 관계를) 연결 짓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잘못됐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맨 왼쪽)가 지난달 일본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말을 걸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러시아 원유 수입 등 교역을 계속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답했을까.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러시아는 인도에 "전쟁 기간 특별 할인가"까지 해주고 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 인도의 러시아 원유 수입을 비판하고 있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누구에 대한 것인지 그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느냐." 이코노미스트가 "일례로 미국 의회도 비판한다"고 하자, 자이샨카르 장관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답하다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에겐 우리의 계산법이 있다. 우리의 정책은 우리가 만든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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