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 거행

박길수 2023. 6. 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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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주년 6.10만세운동 국가기념일을 맞이하여 2023년 6월 10일 11시,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채길순)는 옛 개벽사(경운동 88번지) 터에서 기념식을 진행했다.

기념식은 '동학 의례'에 따라 심고와 주문 3회 병송, 채길순 이사장이 기념사, 주선원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의 기념의 말씀, 이동초 천도교 선도사의 만세 선창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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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 제작과 배포의 현장, 개벽사 터에서 행사 진행

[박길수 기자]

▲ 제97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 참가자 
ⓒ 박길수
 
제97주년 6.10만세운동 국가기념일을 맞이하여 2023년 6월 10일 11시,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채길순)는 옛 개벽사(경운동 88번지) 터에서 기념식을 진행했다.

당시 개벽사는 천도교에서 6.10만세운동을 위해 전담한 '격고문'과 '선전문' 등을 보관했던 곳이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탄로되면서 일제 경관들이 포위하여 압수수색과 탄압을 가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기념식은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원과 천도교인,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은 '동학 의례'에 따라 심고와 주문 3회 병송, 채길순 이사장이 기념사, 주선원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의 기념의 말씀, 이동초 천도교 선도사의 만세 선창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채길순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6.10만세운동(병인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 '3대옥' 사건의 하나로서, 기미년 3.1운동의 정신과 기운을 계승하여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거쳐 조국광복에 이르는 끊임없는 독립운동 장정의 중요한 계기점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는 갑오(1894) 기미(1919), 병인(1926)으로 이어져 온 자주 대한의 수호, 평화의 세계 질서 구축 운동"을 계승하여 "오늘의 통일 조국 건설, 생명평화세계 구현의 과업"을 성취하자고 당부했다.

주선원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은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3.1운동과 6.10만세운동의 근본이 되는 정신은 '자주'"라고 강조하고, "오늘날에도 우리 민족은 여전히 자주를 성취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내려오는 민족운동의 연장 선상에 있는 6.10만세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이 땅에 자주적인 국가, 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는 데 매진하자"고 언급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6.10만세운동 역사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2026년 3년 앞으로 다가온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향하여 연차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잊힌 6.10만세운동의 올바른 정신을 계승하고, 널리 선양하는 일, 6.10만세운동의 유족과 후손들을 규합하여 그 정신의 기본 골격을 바로 세우는 일에 대한 다양한 제안을 수렴하는 등 후속 업무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기념사 전문>

오늘 제97주년을 맞이하는 6·10만세운동 기념일이다. 6·10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옥(三大獄) 사건의 하나로, 기미년의 3·1운동을 재 점화하여 조선독립을 향한 대장정을 이어가고자 한 운동이다. 우리가 6·10만세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새삼스레 기념하는 까닭은 자주독립을 향한 끊이지 않는 행진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일이 여전히 우리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1926년의 6·10만세운동은 작게는 1904년의 갑진개화운동과 1919년의 3·1운동을 이어 1929년 광주학생운동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크게는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32년째 되는 해에 일어나서 그로부터 19년 후에 조국광복을 이루는, 분기점이 되었다.

당시 천도교는 박내원을 중심으로 권오설이 중심이 된 조선공산당과 제휴하여 순종의 국장일에 맞춰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이 참여하는 거족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박내원은 격고문과 선전문의 인쇄를 전담했고, 각 지방에 사전 연락을 취하고, 운동자금을 지원했다. <대한민국 만세> 등의 선전문은 개벽과 신여성 등의 잡지에 끼워 넣어 전국에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6월 6일 개벽사에서 격고문이 발각되자 일제는 천도교대교당을 포위, 천도교중앙종리원과 개벽사 직원 30여 명을 검거하고, 격문 7만여 장을 압수했다. 또한 의암 손병희 선생의 별저였던 상춘원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인(大韓民國臨時政府印)'을 압수했다. 각 지방에서도 2천여 명의 관련자가 연행 또는 검속을 당했다.

천도교-조선공산당 제휴의 6·10만세운동은 비록 사전에 드러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지만, 그것이 일제의 눈과 손발을 묶어 두는 사이 학생들의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되어, 6월 10일 서울 곳곳에서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감행했다.

6·10만세운동 때 천도교는 중앙대교당이 기마경찰들에게 포위된 채 위협에 시달리고, 수많은 천도교 지도자들이 사전구금 되고, 상춘원이 압수수색 당했다. 또한 일제는 이 해 8월에는 기어코 개벽을 강제 폐간시킴으로써, 천도교의 기세를 꺾는 데 매진했다. 이는 당시 천도교주 춘암 박인호의 암묵적 지지 하에 권동진, 박내원, 박내홍 등 천도교 인사가 6·10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준비해 나갔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갑오(1894) 기미(1919), 병인(1926)으로 이어져 온 자주의 대한 수호, 평화의 세계 질서 구축 운동이 오늘의 통일 조국 건설, 생명평화세계 구현의 과업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안다.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그 길 위에서 다시, 독립 만세, 자주의 나라를 부르짖는다.

2023.6.10.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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