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패키지 아닌 자유여행으로 가는 이유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드디어 해외 자유여행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에 자주 비치는 중증의 장애인들과 또다른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발달장애 학생들과 처음 도전하는 해외 자유여행 준비가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고,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여곡절이 많던 두달 여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고, 여행을 위한 준비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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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입국신고서 작성 연습하기 |
| ⓒ 권유정 |
요즘은 신고서 작성도 미리 온라인으로 한 뒤 QR코드를 찍어 제출하는 방식이 흔한데 일본 또한 Visit Japan Web을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해보니 이메일 주소로 가입을 하고 비밀번호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메일 주소는 너무 길어 외우기 어렵고, 보고 쓰려해도 영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알파벳을 몰라도 똑같은 모양 찾기라도 하려면 대문자와 소문자의 매치는 돼야 한다. 보이는 글자는 소문자인데 키보드에는 대문자만 있으니. 화상키보드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그 부분은 낫지만 비슷비슷한 모양이 많아 구별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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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이도 극상의 Visit Japan Web 비밀번호 조건 |
| ⓒ 권유정 |
1시간 여의 사투 끝에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했다. 단지 영어만 난관이 아니었다. 생년월일을 알아도 익숙한 순서가 아닌 일, 월, 연도의 순으로 써야 한다든지 한 자리 숫자는 앞에 0을 붙여야 한다든지 칸을 맞춰서 써야 한다든지 예상치 못했던 많은 부분이 난관의 연속이었다. 특히 소근육이 약한 일부 아이들은 정보를 알아도 작은 칸에 맞추어 또렷한 글자로 쓰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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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자 여권 사진을 보며 서툴지만 열심히 정보를 찾아 베껴쓴다 |
| ⓒ 권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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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반가족 등록에 대한 Visit Japa Web의 친절한 답변 |
| ⓒ 권유정 |
계정 가입이 가능한 아이들은 각자 가입하여 정보를 입력하도록 했다. 예상대로 비밀번호 생성과 이메일 인증에 다소 시간이 걸렸고, 항공편 입력은 항공사 목록이 너무 길어 선택이 오히려 더 어렵기도 했다.
그래도 실물여권이 있으면 사진 촬영만으로 여권 정보가 자동 입력되고, 숙소 주소는 우편번호 검색으로 한결 간단하게 입력할 수 있으며, 국적이나 직업 등의 정보는 한글로 된 보기 중에 선택하면 된다는 등의 장점이 있었다. 한번 신고서를 작성해 본 경험이 헛되지 않아 제법 수월하게 정보를 입력하고 QR코드를 캡처했다.
그리고 계정 가입이 어려운 아이들만 교사들이 나누어 동반가족으로 등록한 뒤 QR코드 사진을 각자의 휴대폰에 저장하고 찾아서 보는 연습을 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거나 사진을 삭제하는 만약의 사태(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경우다)를 대비해 개인별 QR코드를 모두 출력해 교사들이 가져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트래블월렛 카드를 충전하고 ATM에서 출금을 하는 방법과 트리플 앱에 사용한 용돈을 기록하는 방법까지 안내를 한 번 하고 진짜 여행 준비가 끝났다.
패키지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여행의 묘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니 서류만 한 더미였으나 무거워진 짐만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유여행은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지나고 나면 더 많은 추억으로 남는다. 패키지여행에서는 근사한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면, 자유여행은 그 풍경을 찾아 헤맨 모든 과정이 추억으로 남는다. 패키지여행에서는 맛있었던 음식이 기억에 남지만 자유여행에서는 성공적인 메뉴 선택도, 대실패 한 메뉴도 훗날의 에피소드로 추억된다.
스페인 여행에서 맛보았던 수많은 음식 중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바르셀로나에서 보이는대로 들어간 빠에야 전문점으로, 매우 짜고 비싸서 소위 마말하는 '눈탱이를 맞은' 식사였다. 당시에는 분노했으나 지금은 가족끼리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박 5일의 여행뿐 아니라 여행을 준비한 두 달 여의 기간이 모두 설레고, 기대되고,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자유여행에 도전한 의미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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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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