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100년 전 노래

이준희 2023. 5. 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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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에 담긴 첫 번째 대중가요, '희망가'의 100년

[이준희 기자]

 <동아일보> 1923년 5월 18일자에 실린 일본축음기상회 광고.
ⓒ 동아일보사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3년 5월 18일, <동아일보> 지면에 흥미로운 광고 하나가 실렸다. 일본축음기상회 경성출장소에서 낸 그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신한 그러고 제일 재미있는 백 종 이상의 노래와 창가의 음보(音譜)를 제작하였습니다. 각 권번 기생의 미성, 동경 유학생의 창가를 집에 앉아서 들을 수 있습니다. 1차 목록을 청구하여 주시오."

구체적인 작품 목록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음반 판매를 홍보하는 것이 분명한 이 광고는, 당시 한국어 음반을 제작하는 유일한 음반회사였던 일본축음기상회가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을 소개한 광고였다. 3분 전후로 녹음된 노래가 앞뒤에 하나씩 실린 음반이 이때 총 70장 새로 녹음, 발매됐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첫 번째 대중가요 음반이었다.
헛헛한 마음을 파고든 대중가요
 
 1923년에 발매된 <이 풍진 세월> 음반 딱지.
ⓒ 이준희
1916년에 발표된 신파극 주제가 <카추샤의 노래>부터 대중가요 작품은 확인이 되지만, 초기 대중가요는 음반이 아닌 신문이나 노래책 같은 인쇄물과 구전으로 유통되었다. 판소리나 민요 같은 전통음악은 이미 1907년부터 음반에 실리기 시작했으나 대중가요는 아직 사람들에게 낯선 새로운 음악이었으므로, 얼마나 잘 팔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바로 음반에 담기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대중이 익숙하게 느끼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1923년에 발매된 첫 번째 대중가요 음반에 '신식창가'로 수록된 것은 세 곡이었다. 앞면에는 <너와 나와 살게 되면(사랑가)>과 <홋도뽀루(축구가)>가 실렸고, 뒷면에는 <이 풍진(風塵) 세월(탕자(蕩子)경계가)>이 실렸다. 괄호 안은 음반 발매 이후 만들어진 목록에 표기된 것으로, 음반에 적힌 것은 사실 가사 첫머리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므로, 괄호 안이 보다 형식을 갖춘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앞면 두 곡은 100년 세월이 지나면서 완전히 잊히고 말았지만, 뒷면 수록곡 <이 풍진 세월>은 '흘러가 버린' 노래가 아니라 여전히 '흐르고 있는' 노래이다. 심지어 지금도 노래방 목록책에서 찾아 반주기에 맞춰 부를 수 있다. 다만 제목과 가사, 그리고 곡조 일부는 100년 전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었는데, 1923년 음반에 기록된 <이 풍진 세월> 대신 이제는 <희망가>라는 제목이 통용되고 있다.

<이 풍진 세월> 역시 음반에 앞서 인쇄물에 먼저 기록되었고, 1921년에 간행된 노래책 <낙원창가>에 <탕자자탄가>라는 제목으로 가사와 악보가 실렸다. 이후 많은 1920년대 노래책에 수록이 되는 한편, 1923년 첫 음반 이후 연주자가 다른 세 가지가 녹음이 더 발매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양금과 단소 같은 전통악기로 연주한 것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시절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노래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곡은 원래 19세기 미국에서 찬송가로 불리던 곡조인데, 일본으로 건너와 <夢の外(꿈 너머)>라는 제목과 새로운 가사로 1890년 간행 창가집에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대중가요는 아니었던 셈이다. 1910년에는 선박 사고로 죽은 학생들을 애도하는 노래로 또 바뀌어 <七里ヶ浜の哀歌(시치리가하마의 애가)>로 거듭났고, 그 가사 첫머리에서 딴 <真白き富士の根(새하얀 후지산 봉우리)>라는 제목으로 크게 유행을 하게 되었다. 종교를 위한 찬송가가 교육을 위한 창가로, 그것이 다시 유행가로 바뀌었던 것이다.

일본 유행가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가 조선으로 건너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기 시작한 때는 1919년 3·1운동 직후쯤이라고 한다. 실제 그러한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신문에서 확인되는데, 1920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관련 내용이 있다.

바로 그 전날 창간된 <동아일보>에 "노동하는 형제의 노고를 위로키 위하야" 지었다는 <노동가>라는 노래 가사가 실렸고, 말미에 "곡조 <이 풍진 세상을>"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직접 불러 보면 <노동가> 가사가 <희망가> 멜로디 전반부에 딱 맞게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가사를 쓴 평파(平波)는 <동아일보> 창간 멤버였던 기자 변봉현의 필명이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20일자에 실린 <노동가> 가사.
ⓒ 동아일보사
1920년 봄에 신작 노랫말을 소개하면서 이런 곡조에 맞춰 부르면 된다는 설명이 나왔을 정도면, 그 가락이 이미 세간에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이 조선 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마무리된 이후 좌절을 느낀 이들이 많았고, 그 헛헛한 마음을 파고들었던 노래가 <이 풍진 세상>, 즉 <희망가>였다는 해석이 그렇게 무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희망가> 근거없는 오해와 낭설들

음반 역사로만도 100년이 된 노래이기에, <희망가>에는 이런저런 오해와 낭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우선 그 제목에서부터 따져 볼 만한 점이 있다. 1920년대 음반이나 노래책 등에 다양한 제목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은 앞서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희망가>라는 제목은 전혀 없다. 그 당시 <희망가>로 불린 노래들이 몇몇 있기는 했으나, 모두 이 곡과는 완전히 다르거나 정황상 다른 것으로 확실시되는 작품들이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하는 노래에 <희망가>라는 제목이 붙은 때는 그럼 언제인 것일까? 현재 확인되는 자료로 보면 1962년에 녹음된 고복수의 노래가 첫 번째 사례이다. 그 전에는 음반이나 노래책 어디에서도 <희망가>라는 제목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복수의 뒤를 이어 남일해, 명국환 등 가수들도 <희망가>로 이 노래를 녹음했으므로, 1960년대 이후 <희망가> 제목이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희망가>라는 제목이 처음 등장하는 1962년 고복수 음반.
ⓒ 이준희
<희망가> 관련 오류 가운데 또 중요한 것은 1930년대 인기 가수 채규엽이 이 노래를 녹음했다는 설이다. 채규엽이 녹음한 음반 목록은 이제 거의 완전히 밝혀져 있지만, 거기엔 <희망가>는 물론 <이 풍진 세상>이나 <탕자자탄가> 같은 다른 제목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규엽 <희망가>가 유튜브 등에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는, 1967년에 녹음된 명국환의 노래를 채규엽이 부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명국환 <희망가>에 잡음을 잔뜩 입혀서 1930년대 녹음으로 들리게끔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해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상당히 많다.

가수뿐만 아니라 작사자에 관해서도 근거 없는 낭설이 돌아다니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히 퍼진 것으로, 임학천이라는 인물이 <희망가> 가사를 지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런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냥 주장만 있을 뿐 어디에도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른바 '복(사해서)붙(이기)'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가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1921년 <낙원창가>에는 책을 찍어 낸 출판사 광문서시(廣文書市)에서 <탕자자탄가> 가사를 '개량'했다고 되어 있을 뿐이며, 그밖에는 어디서도 작사자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가수나 작사자처럼 심각한 오류까진 아니지만, <희망가> 곡조가 일본에서 먼저 유행할 때 제목인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에 관한 소개에도 지적할 만한 점이 있다.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를 우리말로 번역한 표현을 보면 나름 전문가라는 연구자나 평론자들도 모두 '새하얀 후지산 뿌리(또는 기슭, 자락)'로 쓰고 있는데, 이는 일본어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데에서 생긴 오류이다. 굳이 일본어 상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후지산에서 새하얀 곳은 아래 산기슭이 아니라 당연히 위쪽 산마루다.

한국어와 달리 일본어에서는 한자 읽기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根은 '곤' 또는 '네'로 읽을 수 있고, <真白き富士の根>에서는 '네'로 발음한다. 그런데 '네'라고 읽을 수 있는 한자 중에는 고갯마루나 산마루를 뜻하는 嶺이나 峰도 있다.

일본어에서는 발음이 같은 한자를 본뜻과 상관없이 바꾸어 쓰는 것이 가능하므로, <真白き富士の根>의 根은 뿌리나 산기슭이 아니라 발음이 같은 峰, 즉 산마루로 번역을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아테지(当て字)'라 하는데,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한자 용법이다.
 
 새하얀 후지산 '마루'의 모습
ⓒ 일본정부관광국
100년 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오다 보니 이런저런 부작용(?)도 생기긴 했지만, 한국 대중가요 초창기 역사에서 <희망가>의 의미는 어쨌든 각별하다. 그냥 듣고 부르다가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 대중가요라는 견해도 있겠으나, 그 각별한 역사성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한다면 같은 노래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희망가> 음반 100년은 그래서 이렇게 되짚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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