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패션쇼를?…기대와 우려 교차

문수정 2023. 5. 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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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야경.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연다. 경복궁 중심건물인 근정전 일대에서 패션 브랜드 행사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조선시대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근정전에서 패션 브랜드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된다.

구찌는 16일 오후 경복궁에서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크루즈 패션쇼는 휴양지로 떠나는 이들을 위한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선보이는 행사다. 구찌, 루이비통,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SS(봄·여름), FW(가을·겨울) 시즌 외에 선보이는 컬렉션이다.

일각에서는 휴양지와 어울리는 컬렉션을 선보이는 럭셔리 브랜드 패션쇼를 국보(223호)인 근정전에서 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찌는 지난해 11월 초 근정전에서 패션쇼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10·29 이태원 참사 직후라 애도 차원에서 취소했었다.

취소된 패션쇼는 ‘구찌 코스모고니 패션쇼 인(in) 서울 경복궁’이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구찌 측은 “세계적 수준의 천문학이 연구됐던 경복궁의 역사적 가치, 천문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쇼의 주제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겠다”며 장소 사용을 신청했었다. 문화재위원회는 ‘경복궁이라는 역사문화유산의 가치를 강화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확실히 고증받을 것’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신청을 받아들였다.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란 패션위크에서 공개된 '구찌 2023 가을 겨울 여성 컬렉션' 패션쇼 장면. 구찌 제공

이번 패션쇼에는 ‘다른 의미’가 부여됐다. 구찌 측은 패션쇼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을 전파하고 한국 문화를 세계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찌의 글로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르코 비자리는 “구찌는 역사, 예술, 장인정신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해 전 세계에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을 전파하고 있다”며 “세계적 건축물인 경복궁(에서 열리는 패션쇼)을 통해 한국 문화와 이를 가꿔 온 한국 국민과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문화를 구찌의 패션쇼를 통해 알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에 대해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쇼를 통해서만 알릴 수 있는 것이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구찌의 패션쇼로 경복궁이 화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유서 깊은 문화 공간에서 패션쇼를 했다’는 구찌의 히스토리가 하나 더 생긴 것으로 보는 게 맞다”며 “경복궁의 아름다움을 활용해 구찌가 얻는 게 훨씬 큰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찌는 그동안 미국 뉴욕 디아미술재단,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클로이스터,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 궁전의 팔라틴 갤러리, 프랑스 아를 프롬나드 데 알리스캉, 이탈리아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 등에서 패션쇼를 진행했었다.

비자리 회장의 발언을 보면 구찌가 추구하는 바도 경복궁을 알리려는 것과 연관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비자리 회장은 “서울과 피렌체, 이탈리아와 한국은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경이로움을 창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러한 점이 구찌가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개최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했다. 구찌는 19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기대하는 이들도 적잖다. 구찌의 한국 상륙 25년째를 맞아 우리나라 전통을 알릴 수 있는 공간에서 패션쇼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행사라는 것이다. 구찌는 1998년 우리나라에 플래그십 부티크를 처음 선보였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가 한국에서 이채로운 패션쇼를 펼친다는 것 자체가 한국 시장의 위상이 높아지고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방증”이라며 “너무 엄격하게 접근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구찌는 지난해 문화재청과 협의해 3년 동안 경복궁의 보존 관리와 활용을 위한 후원을 약속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경복궁은 조선 최고의 법궁이자 궁중 예술, 건축뿐 아니라 한글 창제와 천문학 등의 발전을 이룬 문화와 과학의 중심지”라며 “구찌와의 조우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복궁의 진정한 매력을 전 세계인들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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