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나무·가죽·종이·천 가리지 않고 태워서 작품 만드는 ‘버닝’

2023. 5.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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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불에 태우는 것은 대상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이러한 태움을 예술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불에 타다’ ‘태우다’라는 뜻의 영어 ‘Burn’에서 나온 버닝(Burning)은 ‘버닝아트’라고도 불리며 전기 버닝펜을 이용해 나무·가죽·종이·천 등을 태워서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버닝과 비슷한 예술이 있죠. 조선 후기 인두나 쇠붙이를 불에 달궈 지져서 종이·모시·비단·나무·가죽 등에 그림을 그린 ‘낙화(烙畵)’입니다. 전통 수묵화 화법과 유사하나 붓 대신 인두를 사용하는 낙화장은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죠. 그중에서도 합죽선·붓대 등 대나무에 인두로 그리고 새기는 경우 ‘낙죽(烙竹)’이라고 하는데요. 죽공예로 명맥을 이어온 낙죽장은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죠. 낙화는 현대에 오며 주로 인두로 작업해 인두화라고도 합니다. 관광지에서 인두화란 이름으로 파는 상품을 본 적 있을 거예요.

이유민(왼쪽)·조유나 학생기자가 버닝펜으로 가죽을 태우고 수성 염료로 채색해 가죽 마우스패드를 만들었다.


버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이유민·조유나 학생기자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고은쌤 버닝공방&연구소를 방문했어요. 이곳을 운영하는 김고은 작가는 “버닝은 서양에서 유행하다가 일본에 전해졌고, 2010년쯤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죠. "나무·가죽·종이·천 등을 태워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기존 소품에 버닝을 해 꾸미기도 하죠. 태울 재료와 버닝펜만 있으면 남녀노소 쉽게 인물·풍경·동물·캐릭터를 그릴 수 있어요. 최근엔 친구 생일 선물이나 연인과의 추억을 새긴 작품 등 20대 여성분들의 주문 제작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소장하고 있는 가죽 아이템을 버닝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꾸미기도 해요.”

유민 학생기자가 “버닝은 종류가 다양하나요?”라고 물었어요. “버닝은 태울 재료에 따라 우드버닝·가죽버닝·종이버닝·천버닝 등이 있어요. 가장 일반적인 우드버닝은 나무를 사용해요. 나무는 다른 재료보다 내구성이 좋아 뚫릴 일이 없고, 잘못 태워도 그 부분만 사포로 문질러 다시 태우면 되죠. 구하기 쉬운 삼나무나 은행나무·자작나무·체리나무·호두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선택할 수 있어요. 단, 건조가 덜 되거나 마감·코팅 처리된 것, 송진이 많은 나무는 잘 안 타고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요. 우드버닝은 나무 향을 맡는 재미도 있어요. 체리나무는 달콤한 향이 나고, 호두나무를 태우면 고소한 향이 나죠.”

버닝 재료로 많이 쓰는 나무는 가죽·종이·천보다 내구성이 좋고 잘못 태운 부분을 사포로 문질러 쉽게 수정할 수 있다.

김 작가가 “나무·가죽·종이·천 중에 뭐가 가장 잘 탈까요?”라고 질문했어요. “가죽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입을 모았죠. “맞아요. 표면 조직이 연하고 부드러운 가죽이 제일 잘 타요. 그다음은 나무죠. 종이·천은 타는 속도가 가죽·나무보다 느려요. 쉽게 타는 가죽은 낮은 온도에서 작업해야 해요. 높은 온도로 작업하면 가죽이 빠르게 수축해 표면이 울죠. 가죽도 나무와 마찬가지로 마감 처리된 것을 사용하면 버닝할 때 유독물질이 많이 나와요. 되도록 인조가죽보다는 생가죽을 쓰는 게 좋죠.” 종이는 가죽·나무보다 구하기 쉬운 게 장점이에요. 너무 얇지 않은 한지·종이상자·우유팩으로도 버닝이 가능하죠. 천은 내구성이 있는 옥스퍼드·광목·캔버스 등을 사용합니다. 유민 학생기자가 “버닝 중에 수정하려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물었어요. “나무는 수정할 부분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칼로 조금씩 긁어내 다시 태우면 돼요. 가죽·천은 한 번 타면 수정이 어려워 처음부터 신중하게 작업해야 해요. 종이는 볼펜 지우개로 수정할 수 있어요.”

김고은 작가가 종이를 태워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왼쪽 사진)와 한지를 버닝해 완성한 한지꽂이.

버닝에 꼭 필요한 버닝펜은 일반형과 고급형이 있어요. 일반형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초보자가 속도를 조절하면서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 유용해요. 고급형은 온도 조절 기능이 있어 빠른 속도로 섬세한 작업할 때 사용하죠. “버닝펜은 200~700도 고온이고, 전원을 켜면 보통 5초 만에 500도 이상 올라가요. 버닝펜 손잡이에 턱이 있어서 바닥에 닿아 화재가 날 일은 거의 없고, 일부러 장난을 치지 않는 이상 화상을 입을 일도 없죠. 또 본체에 달린 펜꽂이에 버닝펜을 꽂으면 안전하게 쓸 수 있죠.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항상 전원을 꺼야 해요.”

가죽을 태우고 채색해 꾸민 다이어리(왼쪽 사진)와 손거울. 버닝은 기존 소품을 태워 예쁘게 꾸미는 데도 사용된다.


“펜촉처럼 앞에 달린 것은 무엇인가요?” 버닝펜을 본 유나 학생기자가 궁금해했죠. “버닝펜 끝에 설치해 대상을 태우는 버닝펜팁입니다. 용도에 따라 선용(선팁)과 좁은 면용·넓은 면용(면팁)이 있어요. 선팁은 끝이 삼각형, 면팁은 삼각형에 끝이 평평한 면이죠. 직선·곡선을 그리고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선팁은 0.5~5mm로 굵기가 다양해요. 1mm 선팁을 주로 쓰며, 3mm 이상의 경우 열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어 초보자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바탕을 채우고 명암을 줄 때 사용하는 면팁은 굵기 대신 끝 모양과 폭에 따라 구분해요. 좁은 면용은 작은 주걱 모양의 좁은주걱팁과 직사각형 모양의 직사각팁이 있고, 넓은 면용도 비슷하게 주걱팁과 사각팁이 있는데 면의 가운데를 뚫고 그 사이를 벌린 형태죠. 주걱팁은 부드러운 면, 사각팁은 거친 면을 표현할 때 씁니다.”

“세로로 버닝펜에 꽂은 버닝펜팁 앞부분을 가로로 살짝 구부려 쓰기도 하는데요. 선팁의 경우 구부리면 삼각형 끝부분과 양쪽 변을 동시에 쓸 수 있어 선 두께 조절이 용이해지고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요. 붓을 쓸 때 가는 붓을 눌러 굵은 선을 표현하는 것과 굵은 붓으로 굵은 선을 표현하는 게 다른 것처럼요. 예를 들어 0.8mm 선팁으로 1mm 선을 만들면, 1mm 선팁으로 만든 선에 비해 좀 더 날카롭죠. 면팁은 구부리면 면이 쉽게 닿을 수 있어 손을 힘들게 기울이지 않아도 돼요. 원하는 색상이 나오게 하려면 속도를 조절하면 돼요. 버닝펜을 천천히 움직이면 색이 진하게 타고, 빠르게 움직이면 연하게 타죠. 또 계속 쓰면 태우며 생긴 찌꺼기가 팁에 달라붙으니 잘 제거해 주세요.”

버닝펜 사용에 익숙해지기 위해 남은 가죽으로 버닝 연습을 하는 이유민(왼쪽 사진) 학생기자와 수성 염료로 가죽에 채색 중인 조유나 학생기자.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색연필, 수성·유성 마커 등도 사용할 수 있다.


가죽버닝으로 마우스패드를 만들기로 한 소중 학생기자단 앞에 마우스패스 크기로 자른 천연 소가죽과 여우·소녀 그림 도안, 도트펜, 수성 염료, 수성 바니시(마감재), 붓, 물 등이 놓였죠. 유민 학생기자는 여우, 유나 학생기자는 소녀 그림 도안을 골랐어요. 도안은 저작권에 유의해서 온라인·책에서 찾거나 개인 사진, 직접 그린 이미지 등으로 작업하면 돼요. 도안 크기에 따라 작업 시간이 달라지니 빠르게 작업하고 싶은 초보자는 크기가 작은 도안을 고르면 됩니다.

“먼저 넓은 페인트붓으로 가죽 전체에 촉촉하게 물을 발라야 해요. 가죽이 뻣뻣해서 물을 발라줘야 도트펜으로 도안을 가죽에 새길 때 잘 긁히죠. 색칠하기 전, 마감하기 전에도 물을 발라야 가죽이 변형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붓으로 물을 바른 뒤 잠시 말려 가죽 표면에 물방울이 안 보이고 만졌을 때 촉촉한 정도가 되면 사용합니다. 드라이기로 말려도 되지만 갑자기 뜨거운 열이 가해지면 가죽이 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마스킹테이프로 가죽에 도안을 붙여 고정하고, 도트펜으로 도안을 따라 가죽에 선을 새겨줍니다. “도안 이외에 본인이 넣고 싶은 글이나 그림을 새겨도 괜찮다”는 말에 유민 학생기자는 본인 이름과 날짜를, 유나 학생기자는 본인 이름·날짜·문구까지 새겼죠.

김고은(왼쪽에서 둘째) 작가는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버닝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재료를 태워 만드는 다양한 명암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버닝을 하기 전, 각자 자르고 남은 가죽에 고급형 버닝펜으로 연습을 해봤어요. 가죽버닝을 할 때는 200~300도 사이 낮은 온도를 유지해요. 나무는 400~500도, 잘 타지 않는 종이나 천은 500~700도 정도로 온도를 높이죠. 선팁이 장착된 버닝펜으로 가죽에 닿는 위치와 속도를 조절하면서 선 굵기와 색이 어떻게 나오는지 파악한 유민·유나 학생기자는 작업에 돌입, 일정한 속도로 선을 따라 버닝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도트펜으로 새긴 선을 따라 버닝을 마친 후 전체적으로 물을 발라주고 남은 부분은 수성 염료로 채색하기로 했어요. “버닝에 쓰는 채색 재료는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색연필, 수성 염료, 수성·유성 마커 등 다양해요. 남은 부분을 다 채색할 필요는 없어요. 원하는 부분에 원하는 채색 재료를 골라 칠하면 됩니다.” 수성 염료를 팔레트에 덜어 물을 조금씩 섞어주며 밝기를 조절해요. 가는 붓으로 가죽에 칠하기 전에 신문지·휴지 등에 미리 칠해보고 색이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합니다. 가죽에는 두세 번씩 덧칠해야 색이 변하지 않고 오래 유지될 수 있어요." 유민 학생기자는 주황색·녹색·갈색 등으로 여우 머리·눈·코·꼬리와 여우 주변의 이파리를 채색했어요. 유나 학생기자는 갈색·분홍색·파란색·노란색·분홍색 등으로 소녀의 머리·옷과 주변 꽃을 칠했죠.

재료를 태우는 예술 ‘버닝’으로 예쁜 그림도 그리고, 마우스패드 같은 실용성 있는 소품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운 소중 학생기자단.

“채색을 다 하면 버닝 작업은 끝나나요?” 유민 학생기자가 말했어요. “버닝 작품은 마감 처리를 해줘야 해요. 마감재에는 수성·유성 바니시, 가구·도마용 왁스, 천연·합성 오일 등이 있어요. 나무는 온도·습기·자외선에 영향을 받아 나무 자체가 변형될 수 있어 반드시 마감 처리해야 하죠. 가죽은 시간이 지나 색이 짙어지는 것 말고는 버닝한 부분이 변하지 않아요. 다만 마감재를 발라주면 색이 빨리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수성 바니시를 마른 헝겊에 적셔 가죽 전체에 꼼꼼히 도포했어요. 페인트붓·스펀지를 이용해도 되는데, 마감재가 빨리 굳을 수 있어 빠르게 바르는 게 중요하죠. 마감재가 손에 묻지 않을 정도로 마르면 작품 완성입니다.

“버닝은 공방뿐만 아니라 태울 재료와 버닝펜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공예예요. 집에 있는 나무로 된 시계나 티슈케이스, 가죽으로 된 다이어리나 지갑을 꾸밀 수 있죠. 무엇보다 재료를 태울 때 생기는 다양한 색의 명암이 버닝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빠르게 버닝하면 색이 엷어지고, 느리게 버닝하면 색이 짙어지죠. 채색하지 않고 태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닝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

■ 가죽버닝으로 마우스패드 만들기

① 마우스패드 크기로 자른 가죽과 버닝펜, 도안, 도트펜, 수성 염료, 수성 바니시(마감재), 붓, 물 등을 준비한다.

② 페인트붓으로 가죽 전체에 물을 발라준다.

③ 촉촉한 상태에서 마스킹테이프를 이용해 도안을 가죽에 붙이고, 도트펜으로 선을 그린다.

④ 마른 상태에서 버닝펜을 이용해 그린 선을 태운다.

⑤ 가죽 전체에 물을 발라주고 수성 염료와 가는 붓으로 원하는 부분을 채색한다.

⑥ 마른 헝겊으로 마감재인 수성 바니시를 가죽 전체에 빠르고 꼼꼼하게 발라준다.

⑦ 마감재가 손에 묻지 않을 정도로 마르면 완성.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저는 예전에 우드버닝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나무에만 버닝할 수 있는 줄 알았죠. 취재를 통해 가죽·종이·천 등에도 버닝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고은 작가님은 버닝 재료 중 가죽이 가장 잘 타서 초보자가 쉽게 버닝할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하셨죠. 작가님께 버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죽버닝 마우스패드 만들기를 해봤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였어요. 버닝펜을 누르는 속도에 따라 탄 자국의 명암이 달라졌죠. 가죽에 채색도 하고 마감재까지 발라주자 마우스패드가 광이 나고 예뻤어요. 소중 친구들도 재료가 타면서 그림이 그려지는 매력을 지닌 버닝에 도전해 보세요.

이유민(경기도 위례초 4) 학생기자

이번 취재로 버닝에 대해 알게 돼 신기했습니다. 가죽으로 버닝을 할 때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 했는데 김고은 작가님이 자세히 가르쳐 주셔서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어요. 완성된 가죽 마우스패드를 보니 만들 때의 긴장은 싹 날아가고 뿌듯함만 남았죠. 버닝펜이 가죽을 지나는 그 느낌과 가죽이 타면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서 힐링 되기도 했어요. 집에 돌아와 제가 만든 가죽 마우스패드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버닝도 해 보고 싶습니다.

조유나(서울사대부초 5) 학생기자

글=박경희 기자 park.kyunghee@joongang.co.kr, 사진=이대원(오픈스튜디오)·고은쌤 버닝공방&연구소, 동행취재=이유민(경기도 위례초 4)·조유나(서울사대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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