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왜 '경복궁' 매료됐나...내일 '근정전 패션쇼' 숨겨진 비화 [더 하이엔드]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구찌’가 내일(16일) 서울에서 ‘2024 크루즈 패션쇼’를 개최한다. 아시아에서 구찌가 여는 첫 번째 크루즈 패션쇼다. 장소는 경복궁.
그간 많은 해외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한국에서 쇼를 열어왔지만, 이번 쇼는 기대감이 다르다. 그 어떤 곳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의 역사적 공간, 경복궁이 바로 그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구찌는 경복궁에서 쇼를 열기 위해 지난해부터 많은 애를 써왔다. 먼저 지난해 11월 행사를 준비했지만, 국가 애도 기간에 동참하기 위해 전날 행사를 전면 취소한 바 있다. 경복궁에서, 그것도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스타 브랜드인 구찌의 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던 많은 사람이 실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구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올해 다시 경복궁에서의 쇼에 도전했고, 드디어 해냈다. 이번 쇼는 구찌가 1998년 국내 첫 플래그십 매장을 선보인 지 25년 만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문화유산과 만난 패션쇼
구찌는 지금까지 역사적, 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세계 문화 유산에서 쇼를 해왔다. 지난 8년 동안 이탈리아 피렌체의 피티 궁전과 풀리아에 있는 까르텔 델 몬테,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프랑스 아를의 프롬나드 데 알리스캄프 등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발표해, 그 장소와 보존 가치에 대해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구찌의 행보는 패션쇼를 단순히 새로운 의상을 선보이는 행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찌는 쇼를 통해 역사와 예술, 문화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 등 문화재와 그 문화재가 속한 지역 사회에 광범위하게 기여하기를 원한다.
이들의 이런 행보는 브랜드 철학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1921년 창립한 구찌가 102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표적인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근간엔 ‘유산에 대한 존중’과 ‘동시대적 문화에 대한 이해’란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여행가방 등 가죽 제품을 만드는 가죽 공방으로 출발해, 그 역사와 전통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발전시켜 왔다. 그동안 선보인 컬렉션은 브랜드의 아카이브와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들이 많다. 또 한편에선 예술·음악·영화 등 장르 경계 없이 관련 커뮤니티를 지지·후원해 왔는데,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유산에 기반을 둔 동시대적 문화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패션쇼 역시 구찌가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다. 쇼를 통해 문화 교류의 중심지인 경복궁의 역사적 가치와 권위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마르코 비자리 구찌 글로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구찌는 지난 25년간 한국에서 지역인재 교육 지원 및 문화유산 보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유대감을 형성해왔다. 세계적 건축물인 경복궁을 통해 한국 문화 및 이를 가꿔 온 한국인과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와 한국은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경이로움을 창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점이 구찌가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적 확장력이 결합한 공간
여러 장소 중에서 경복궁을 무대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구찌는 지금 한국이 세계의 관심을 받는 문화 중심지가 된 것을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가 문화적으로 확장된 결과로 본다. 경복궁은 한때 아픔을 겪었지만, 중건과 지속적인 복원을 통해 지금 한국의 역사적 유산이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명소가 됐다. 구찌 측은 “K-컬처가 세계의 관심을 받는 지금, 문화적 확장력의 근간으로서 경복궁이 갖는 의미 역시 우리가 이곳을 주목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경복궁은 한국의 대표적인 궁이다. 1395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창건된 후 조선시대를 포함한 한국의 역사를 담고 있다. 당시 지어진 궁궐이나 대규모 건축물이 지형에 의존해 지어진 데 반해, 경복궁은 도성 설계를 먼저 했다. 평지를 선택해 땅을 고르고 근정전을 중심으로 각 건축물이 사각형 형태로 퍼져 나가듯 공간을 구성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1867년 고종 2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됐다. 처음 경복궁 담장 안에 건축된 건물은 755칸. 중건 당시엔 그 10배인 7700칸으로 늘었다가 일제 침략기에 10분의 1만 남기고 모두 소실됐고, 1990년대 이후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다시 사라진 건물들을 복원·확장하고 있다.
경복궁이 갖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는 크다. 특히 세종이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며 한글 창제와 천문학의 발전을 이뤄낸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다른 조선의 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주로 기거했다. 세종과 함께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과학·문학·예술의 발전을 끌어낸 중심지였고, 조선 왕조는 경복궁을 확장·개조하며 건축의 미학과 기능성을 발전시켰다. 특히 쇼가 열릴 경복궁 근정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알현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으로, 해외 브랜드 ‘구찌’와 한국 역사가 공식적으로 만난다는 상징적 의미와도 잘 맞는다.
3년간 경복궁 보존 활동 후원
구찌는 지난해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통해 향후 3년간 경복궁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을 위한 후원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 문화유산 및 창의적 랜드마크를 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한국에서도 이어간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경복궁은 조선 최고의 법궁이자 궁중예술, 건축, 한글 창제와 천문학 등의 발전을 이룬 문화와 과학의 중심지”라며 “구찌와의 조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복궁의 진정한 매력을 전 세계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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