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걸쳐 준비한 그 남자의 '사적인' 복수

양형석 2023. 5. 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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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F.게리 그레이 감독의 심리 스릴러 <모범시민>

[양형석 기자]

대한민국 법원은 재판을 통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같은 사건에 대해 총 세 번의 판결을 받을 수 있는 '3심제'를 택하고 있다. 지방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항소를 통해 고등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2심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면 상고과정을 통해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릴 수 있다. 단 무분별한 항소와 상고를 막기 위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올라갈수록 법원과 법관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지난 2017년에 개봉했던 정우와 강하늘 주연의 법정영화 <재심>은 살인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주인공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3심제를 통해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형이 확정된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증명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재심청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무죄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선 재심청구를 할 수 없다.

이처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긴 재판과정을 거치더라도 재판결과에 불복하는 사람은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재판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충동적으로, 또는 철저한 사전 준비 끝에 가해자에게 사적인 복수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2009년에 개봉했던 F.게리 그레이 감독의 <모범시민>은 괴한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주인공이 범인과 가해자를을 보호한 사법부를 향해 복수를 하는 범죄 스릴러 영화다.
 
 2009년에 개봉한 <모범시민>은 제작비의 2.5배에 달하는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주)시너지하우스
 
뮤비 연출로 시작한 범죄액션영화 전문 감독

어린 시절부터 비디오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만들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운 그레이 감독은 1989년 야구영화 <메이저리그>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90년대 초반 뮤직비디오 감독 일을 시작한 그레이 감독은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등 유명 힙합 및 R&B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995년 아이스 큐브가 각본작업에 참여하고 직접 주연을 맡은 <프라이데이>를 만들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1997년 범죄드라마 <셋 잇 오프>를 연출한 그레이 감독은 1998년 사무엘 L.잭슨과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액션영화 <네고시에이터>로 북미 4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2003년에는 <분노의 질주>와 <트리플X>로 유명한 빈 디젤 주연의 <디아블로>와 마크 월버그, 샤를리즈 테론,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이탈리안 잡>을 연출했다(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국내에서 같은 날 개봉했다).

2005년 오늘날 최고의 스타배우로 성장한 드웨인 존슨의 초기작품 중 하나인 <쿨!>을 연출한 그레이 감독은 2009년 제라드 버틀러와 제이미 폭스가 출연하는 범죄 스릴러 <모범시민>을 선보였다. 그레이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돋보였던 <모범시민>은 5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북미와 해외에서 고른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1억27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2011년 브루스 윌리스와 제이미 폭스 주연의 <케인&린치>를 만든 그레이 감독은 2015년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바로 닥터 드레와 아이스 큐브, 이지 E 등이 모여 결성한 N.W.A라는 힙합 그룹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이었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80년대 미국 힙합문화가 낯선 국내에서는 외면 당했지만 세계적으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그레이 감독은 2017년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을 연출해 12억36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을 견인했다. 이는 고 폴 워커의 유작이었던 <분노의 질주: 더 세븐>(15억1600만 달러) 다음가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 역대 2위에 해당하는 흥행성적이다.  2019년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로 다소 아쉬운 성적(2억4900만 달러)을 기록한 그레이 감독은 올해 케빈 하트와 샘 워싱턴, 김윤지가 출연하는 신작 <리프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화끈한 액션 아닌 촘촘한 심리스릴러
 
 영화 <모범시민> 스틸 이미지.
ⓒ (주)시너지하우스
 
<모범시민>은 제라드 버틀러가 복수심에 불 탄 강렬한 눈빛으로 관객들을 노려보는 포스터 때문에 개봉 당시 스케일이 큰 액션영화로 오해를 받았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화끈한 액션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모범시민>은 화려한 액션보다는 두 주인공의 두뇌싸움이 돋보이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모범시민>은 주인공이 법원의 결정에 반발해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는 점에서 1996년에 개봉한 매튜 맥커너히와 산드라 블록, 사무엘 L.잭슨 주연의 법정영화 <타임 투 킬>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타임 투 킬>의 칼리(사무엘 L잭슨 분)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가해자들을 응징했다면 <모범시민>의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 분)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 복수를 진행한다.

클라이드의 최종목표이자 영화의 주제는 범인에게 제대로 된 형량을 내리지 않은 미국의 사법시스템이었다. 물론 아내와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사법거래를 통해 풀려나는 가해자들을 향한 복수는 상당히 잔혹하다. 특히 가해자 중 주범인 다비(크리스찬 스톨스 분)에게 독을 먹인 뒤, 전신을 마비시킨 후 그의 아내와 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지를 절단한다.

사실 클라이드에게 있어선 복수의 당사자였던 닉(제이미 폭스 분)이 끝까지 살아남는 결말에 대해 의아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클라이드 입장에서 보면 닉은 충분히 비난 받아 마땅한 인물이지만 닉은 어쩔 수 없이 풀어줘야 했던 범죄자들에게 경멸과 혐오를 느끼는 등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클라이드가 시한폭탄의 폭발과 함께 사망하면서 속편소식이 없었던 <모범시민>은 13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5월 속편 제작소식이 들려왔다. <모범시민>을 비롯해 <이퀼리브리엄>,<솔트>,<토탈리콜> 리부트 등의 각본을 썼던 커트 위머 작가가 속편에서도 각본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만 속편 제작소식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간단한 시놉시스는 물론이고 주요 캐릭터와 배우 캐스팅 소식조차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영화마다 캐릭터가 변하는 제이미 폭스의 연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제이미 폭스는 <모범시민>에서 제라드 버틀러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검사 닉 라이스를 연기했다.
ⓒ (주)시너지하우스
 
물론 <올드보이>처럼 복수를 당한 오대수(최민식 분)가 복수를 하려는 이우진(유지태 분)을 역으로 추격하는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복수극은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돼야 관객들의 흥미가 극대화된다. <모범시민> 역시 괴한들의 습격으로 아내와 딸을 잃은 클라이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96%에 달하는 승소율을 유지하기 위해 범인과 거래를 시도한 검사 닉은 주로 클라이드에게 이용 당하는 쪽으로 나온다.

2004년 영화 <레이>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던 명배우 제이미 폭스가 또 다른 주인공을 받쳐주는 서브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폭스는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클라이드 역의 제라드 버틀러를 돋보이게 만들어줬다. 폭스는 이처럼 작품을 위해 자신의 캐릭터를 희생하는 유연함을 가진 배우로 지난 2014년에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 빌런 일렉트로를 연기하기도 했다.

1999년 TV시리즈 < Popular >를 통해 2001년 영 할리우드 어워즈 신인상을 받았던 레슬리 빕은 <아이언맨1,2>에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가 아이언맨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 챈 크리스틴 기자로 출연했다. 레슬리 빕은 <모범시민>에서 닉의 열정 넘치는 후배검사 새라를 연기했는데 영화 중반 클라이드가 차량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무고한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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