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은 늘어나지만... 나는 아직 유치원에 다닌다

대전광역시노동권익센터 2023. 5. 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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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오후 상관없이 울리는 전화... 학부모 민원에 AI가 되어간다

이 글은 2023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수기입니다. <편집자말>

[대전광역시노동권익센터 기자]

 유치원에서 일하며 정신과 약의 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 픽사베이
 
소설<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뇌의 측두엽 깊은 곳에 있는 감정, 특히 공포나 분노를 처리하는 편도체가 작기 때문이다. 명칭은 '아몬드'를 닮았다 하여 그리스어인 'almond(편도)'에서 유래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편도체가 작아 작가적 상상이 더 해진 윤재처럼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공감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는 있다고는 한다.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나는 별다른 꿈이 없었다. 사실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내 점수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저 점수에 맞춰 원서를 넣은 대학에서는 차마 4년을 버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뒤늦게 선택한 곳이 '유아교육과'였다. 그 선택에는 내 의지보다 주변의 영향이 더 컸다. 그렇게 한순간의 선택으로 나는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유치해 아직도 유치원 다닌다고도 한다.

유치원은 겉보기에는 즐거운 곳이다. 사람 사이에 칸막이가 있고, 결재서류가 왔다 갔다 하는 직장에 비하면 내 의지로 하루를 즐겁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곳이다. 아이들과 함께할 일과를 계획할 수 있고, 천진난만한 아이들 말에 맞장구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임박한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노동이라는 인식도 없었고, 더군다나 내 감정이 소모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말투며, 식성이며 성격이 변해가고 있었다. 눈이 2개 밖에 없는 죄로 십수 명의 아이들이 일일이 무엇을 하는지 보지 못해 학부모들에게 영문도 모를 사과를 해야 할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오전 7시에도 사명감으로 받은 전화

최근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돼 감정노동자라는 단어를 쉽사리 들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감정도 노동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퇴근 후에도 학부모들의 상담 전화를 응대하고, 오전 7시부터 전화벨 소리가 울려도 사명감으로 당연히 받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한 증상들이 생겼다. 퇴근 후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익숙한 번호들이 뜨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OO에게 무슨 일이 있었더라' 생각해 보고 '아까 작은 상처가 나서 밴드를 붙여줬는데 깜빡하고 얘기 안 했던가'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20명 내외의 만3~5세 어린아이들을 혼자서 봐야 하는 대한민국 유아 교육계 현실에서 모든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다 봤다고 말하는 사람이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일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언론에서는 일부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들의 학대 사건이 마치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인 듯 확대 보도되는 바람에 부모들의 걱정 어린 관심은 의심으로, 교사들은 학대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물이 CCTV 설치 의무화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아직 CCTV가 설치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 수시로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 끼치고 의욕이 떨어진다.

응대할 첫 번째 대상이 어린아이이기에 최대한 나쁜 감정을 억누르며,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다시 알려주는 게 내 하루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다음에는 민원이 들어 온 학부모에게 유치원에서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또 설명해서 원만한 관계를 쌓는 것도 내 일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기계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친절함을 보이고, 학부모에게는 혹시 모를 민원에 대비해 아이에게 어떤 문제 상황이 있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기록해서 결재받는 등 나를 위한 안전장치들을 만드는 기계 같았다.

정신과 약의 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유치원에 다니면 사랑의 편지를 꽤 많이 받는다. 한글을 깨친 아이들은 글로,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은 공주 같은 예쁜 여자의 그림을 주며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한 번은 아이들이 주는 그림을 받으며 아이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관찰기록 수첩을 보며 '고마워. 네가 최고야'라고 대답했다.

과거에는 뽀뽀를 열 번은 하며 네 편지 덕에 행복하다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진심은 뺀 고마움을 말한다. 초임 때만 해도 편지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스크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던 순수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처절한 월급쟁이만 남아있다.  

한국 나이로 마흔을 넘기며 이런 내 모습을 나이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의식 없이 반응하고, 내 감정이 다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는 것이 소원인 내게 예상치 못한 비수가 꽂히는 날이면, 퇴근 후에도 내 가정과 아이는 제쳐두고 일에 대한 근심에 넋을 놓곤 한다.  

습관적으로 물건을 두고 가는 아이가 있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아침에 어떤 착복상태로 왔는지를 매일 기억하기는 힘든 일이다. 목도리를 하고 왔는지, 장갑을 끼고 왔는지 일일이 알 수가 없는 데다 그 아이는 유독 물건을 여기저기 두고 다니는 아이였다.

어떤 때는 교구장 뒤에서 목도리가 발견됐고, 다른 친구 사물함에서 모자가 발견될 때도 있었다. 기본생활 습관 지도를 매일 하지만 유독 한 귀로 흘리는 듯한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가 딱 그랬다. 엄마도 매일 아이가 물건을 빠뜨리고 오는 것에 참을 만큼 참았으리라. 그날은 울부짖으며 왜 잘 챙기지 못하느냐고 퍼붓고 가는데 터지려는 눈물과 함께 맞받아치고픈 감정을 꾹 눌러 참았다.  

집에 가서도 내 마음은 전혀 풀리지 않았지만, 후폭풍이 염려돼 아이 엄마가 저녁 식사를 마쳤을 거라 예상되는 시간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마음이 좀 진정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장문의 문자로 사과했다.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한걸까라는 생각이 수백 번 들었지만 억울함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인 순간이었다. 그냥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으면 될 것을 그렇게까지 면박을 줬어야 할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또 눌러 아이 엄마를 달랬고, 다음 날 아이를 데리러 왔을 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뒤로 그 엄마는 나에게 가장 친절한 학부모가 됐다.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그 과정을 겪는 동안 나는 너무 아프고 힘들다. 작년 이맘때부터 먹기 시작한 정신과 약은 일 년째 끊지 못하고 있다. 근무하는 동안 쏟은 감정노동이 채 회복도 안 됐는데, 퇴근 이후에도 응대할 일이 생기거나 일 얘기 때문에 동료나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 같아 지치고 괴로웠다.

주말에는 종종 잠수를 타기도 하며, 일과 관련된 톡방은 당연히 무음으로 처리해 둔다. 정신과 약의 용량은 줄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

나이 마흔 넘어 '예쁜 공주님'으로 불린다
 
 유치원에서 일하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 픽사베이
 
많은 것을 참아내야 하는 이 일을 18년간 하며 <아몬드>의 윤재처럼 편도체가 매우 작거나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공포나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상처받을 일도 없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느라 감정 소모를 할 일도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도 힘이 들 때면 가끔 구인사이트를 꼼꼼히 살피고는 한다. 그렇게 며칠을 살피다 보면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인데…'라며 마음을 다시 한번 꽉 잡는다.

사실 육체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든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육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이 일의 큰 장점이자 보람이다. 나는 마흔이 넘었지만,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동료 선생님들도 대부분 제 나이보다 적게는 서너 살, 많게는 열 살씩은 어려 보인다. 새싹 같은 아이들에게서 얻는 긍정적인 감정들이 육체를 더 젊게 해 주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면 이만한 일 또한 없는 것 같다.

올해 만 4세, 우리 나이로 6살이 되는 아이들을 맡았다. 14명의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이다. 주로 7살을 맡아오다 오랜만에 6살을 맡았는데, 신학기 첫날 진이 다 빠져버렸다. 불러도 당최 쳐다보지를 않는 것이다. 목소리가 높아질 뻔한 걸 참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난 지금, 아이들은 어느새 유치원에, 반에, 그리고 나와의 생활에 적응하여 더없이 예쁜 짓을 한다. 아이들의 꽃처럼 밝고 따뜻한 미소가 모든 힘듦을 삭제시킨다. 아이들은 매일 "예쁜 공주 선생님"이라 부르며 마음을 녹인다. 이 아이들이 아니면 누가 나이 든 나에게 매일 '공주'라 불러줄까. 이마에 주름이 가고, 머리에 서리가 내려도 아이들에게는 계속 '예쁜 공주 선생님'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직 유치원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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