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막 기업]"시니어 인턴이 해결사로...영화 '인턴' 현실서 벌어졌죠"

박유진 2023. 5. 1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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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임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쏟아지는 게 사회 문제라는데, 문제가 아닌 자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위기'로 여겨지는 고령사회가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인턴'처럼 말이다. '인턴'에서는 인터넷 의류 업체 대표(앤 해서웨이 분)가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통해 70세 시니어 인턴(로버트 드 니로 분)을 고용한다. 시니어 인턴의 역량을 의심하던 대표는 그가 보여주는 처세술과 노하우를 접하며 결국 신뢰를 갖게 된다.

앙코르브라보노는 중장년층이 은퇴 후 인생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중장년 인재를 육성하고, 그 인재가 필요한 조직에 연결하는 기업이다. 비영리법인이며, 지난 2015년 만들어져 올해 창립 9년차가 됐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1일 박경임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61)을 인터뷰했다. 이화여대 비서학과(현 국제사무학과) 졸업 후 1984년부터 외국계 기업에서 바이어로 근무했던 박 이사장은 다니던 회사가 한국에서 지사를 철수하며 2002년 일을 그만뒀다. 전형적인 경력단절 여성이었지만, 13년이 지나 앙코르브라보노 창업에 합류하며 다시 사회에 나왔다.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협동조합 박경임 이사장이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서 시니어와 기업 연계 활동 자료집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10년을 넘게 일을 쉰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 지사가 철수하며 어쩔 수 없이 퇴직한 셈이지만, 당시에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쉬어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출장을 다니느라 피곤이 쌓여있었고, 일하는 엄마로서 늘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탓이다. 일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 됐을 때 어머니의 암 발병을 알게 됐다. 2년 동안 투병하는 어머니 옆에서 지냈다. 돌아가시고 나니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함께, 할 업무가 없다는 사실에 적응이 안 됐다.

그런데 한창 연락이 오던 헤드헌터들로부터의 연락마저 끊겼다. 어머니 옆에 있으면서 일할 여력이 없을 때는 취업 제안이 와도 후배들을 연결해줬는데, 막상 내가 여유가 생기니 안 오더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주부로만 지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동창회 회장을 맡고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등 나름대로 대외활동을 찾아서 했다.

-사람들의 퇴직 후 커리어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다른 퇴직자와 이야기하던 중 전직 지원 컨설턴트 자격증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우리처럼 일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다른 경력자들의 전직을 지원해주는 업무, 즉 아웃플레이스먼트(퇴직자 또는 퇴직예정자의 재취업을 위해서 제공되는 일련의 서비스 프로그램) 업무였다. 2015년 초 정부에서 추진하던 신직업 발굴 프로젝트 중 하나로 그 자격증에 대한 교육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육 과정을 신청해 공부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듣고 서류 접수 마지막 날 신청했다.

국비 지원 프로그램이라 선정되기까지 면접 등 여러 과정을 거쳤다. 삼십몇년 만에 서류 접수, 면접 같은 과정을 겪으니 몸은 힘들지만 신선했다. 수업도 주중에 매일 5시간씩 들었는데, 오랜만에 하는 외출이었고, 새로운 걸 배우는 일 자체가 재미있었다.

-앙코르브라보노 창업에 합류한 계기는.

▲쉬고 있을 때도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같이 사업하자고 권유해왔다. 그런데 관계가 좋은 지인과 업무로 엮이면 부작용이 생길까 봐 늘 거절했다. 그러다 전직 지원 컨설턴트 교육 과정 중에 창업 합류 제안을 받았다. 당시에 제안했던 분이 "능력 있는 퇴직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사회적인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했는데, 거기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 퇴직 시니어 중에는 고학력, 고경력자들이 많다. 그분들의 학력과 경력을 활용하는 사업 모델을 찾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듣고 함께 하기로 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각자 다른 교육과정에서 만난 사람 6명이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터디하면서 창업을 준비했고, 창립총회를 2015년 8월에 하면서 문을 열었다. 원래 협동조합으로 시작했다가, 비영리법인이 되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지금은 조합원이 총 10명이고, 이 중 4명이 직원이다. 2016년에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고 2019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매출이 궁금하다. 많이 벌지는 않더라도 직원 월급은 줘야 할 텐데. 주 수입원이 어디인지?

▲기업, 지자체, 정부조직과 연계해 베이비부머들에게 공헌형·생계형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시니어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게 그 예다. 작년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퇴직 또는 퇴직을 앞둔 중장년이 전북 농촌에서 활동비를 받으며 일할 기회를 만드는 사업을 진행했다. 기업의 성장지원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해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2억원으로 늘었으면 좋겠다.

-창립 9년차다. 그 당시 중장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지금의 차이가 느껴지는지.

▲많이 달라졌다. 창업을 준비하던 2015년만 해도 시니어들은 대부분 '퇴직하면 사회생활 끝'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퇴직한 사람들도 본인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나서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인생 2막을 위한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도 여러 군데에서 진행한다.

-시니어 인턴 연계 작업을 하며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몇 년 전 어떤 금융업 스타트업에 시니어 인턴을 매칭한 적이 있다. 직원들이 20~30대인 젊은 조직이었다. 당시에 그 스타트업 대표가 "시니어들과 한 번도 일 안 해봤다. 대화해본 적도 없다"고 말하면서 반신반의하더라. 한 달쯤 지나 모니터링 차원에서 그 스타트업을 방문했다. 갔더니 대표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금융감독원에서 갑자기 점검을 나왔는데, 대표와 직원들이 당황해하던 와중에 그 시니어 인턴이 진두지휘해 감독관에게 전달할 자료를 순식간에 만들었다는 거다. 그 사례 때문에 "조직에 시니어가 왜 필요한지 절감했다"고 말하더라. 또, 대표로서 외롭고 고민이 많을 때 상담자 역할을 해줘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보람차다.

-앙코르브라보노의 추후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퇴직 시니어들의 일거리를 수도권 외 지역으로 확산하는 일이다. 아직은 이런 일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앞서 이야기한 전북 농촌 활동 사례 같은 일을 더 많이 늘리고 싶다. 지역 소멸을 막는 데 중장년들이 큰 역할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지금은 기업, 지자체, 정부조직과 연계해 일을 만들고 있지만, 나중에는 우리처럼 중장년끼리 만든 단체들이 협업해 '시니어 커뮤니티'를 대규모화하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싶다. 중장년의 일자리 연구도 확대하고 싶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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