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옥순대교에서 가은산 오르기

이보환 2023. 5. 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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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환 기자]

▲ 가은산 정상 가은산은 옥순대교를 출발해 야트막한 경사로, 암릉을 오르는 구간이다. 산행 내내 청풍호와 기암괴석을 만날 수 있다
ⓒ 이보환
걱정은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 수다떨고 술까지 마셔봐도 어딘가 공허하다. 그럴 때 가장 좋은 처방이 바로 걷기다. 시집이나 수필집 한 권을 지참하면 금상첨화다. 선비처럼 뒷짐지고 걸으면서 그동안 과정을 되새김해 본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볼 요량이다.

코스는 평지보다 산이 좋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 보면 탁 터질 때가 있다. 잡념은 땀방울과 함께 날아가고 심신이 편안해진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 해결 방도나 방향은 내가 이미 아는 그것이다. 먹을거리만 있다면 몇날 며칠도 걸을 것 같다.

몇년 전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시작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었다. 칭찬부터 시기, 질투, 다툼 등 소소한 일상을 여러 각도에서 담아내자고 다짐했다. 이제 3년차다. 어느 정도 뿌리는 내렸다고 자평한다.

창간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의 덕분이다. 독자와 시민기자, 필진들의 애정으로 가능했다. 직업이나 지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글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지면을 풍부하게 한다. 감사한 나날이다.

잔잔한 봄바람이 부는 4월30일 충북 제천 가은산으로 간다. 옥순대교 옆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이미 하산한 이들도 더러 있다.

아뿔싸! 장갑을 깜빡하고 왔다. 이 일대는 바위산으로 필수품인데 말이다. 매점에 들어가서 목장갑을 주문했다. 사장님 왈, "제가 끼는 것인데 오늘 그냥 사용하세요. 내려와서 시원하게 커피나 한 잔 드세요". 

아침에 흐렸던 날씨가 점점 맑아진다. 봄 날씨는 짐작하기 어렵다더니 입고 온 바람막이가 과하다. 단촐한 차림으로 바꿨다. 넓고 푸른 청풍호를 가로지르는 옥순대교를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가은산(575m)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에 자리한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산 이름의 유래를 찾아봤다. 지역주민들이 '가는산'이라고 부른 연유다. 옛날 마고할미가 이 산에 놀러왔다가 '이 산에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도성이 들어설 땅인데, 내가 이곳에 눌러앉아 살려고해도 한양이 될 땅이 못 되니 떠나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단다. 전설같은 이야기다.

등산 초입부터 얕은 오르막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순대교 전망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옥순봉은 명승 제48호. 행정구역상 충북 제천시 수산면에 포함됐지만 인근 자치단체인 단양과의 연관도 깊다. 따라서 단양팔경과 제천십경 두 군데 모두 들어간다. 

옥순봉! 퇴계 이황 선생이 '거칠게 분출한 바위들이 마치 활기차게 올라오는 대나무 죽순과 같다' 하여 명명했다고 한다.
 
▲ 월악산국립공원에 포함된 가은산 곳곳에 마련된 이정표는 처음 가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위험표시 구간, 출입금지 안내문은 방문객들의 안전을 확보해준다
ⓒ 이보환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였던 퇴계 선생은 옥순봉을 보고 중국의 소상팔경보다 더 빼어난 경승이라 극찬했다. 그는 청풍부사에게 옥순봉의 행정구역을 단양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옥순봉의 빼어난 절경을 포기할 수 없던 퇴계 선생은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고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 물론 그 글자는 충주댐 건설 이후 수위가 높아지면서 물에 잠겼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희고 푸른 바위들이 총총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절경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수직으로 된 절벽의 갈라진 틈이 강물의 위력을 대변한다. 일렁이는 청풍호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빨간 교각의 옥순대교와 하얀 유람선이 무채색 풍경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푹신한 흙길에 박힌 돌들이 우직하다. 울퉁불퉁한 길이 발바닥을 자극한다. 돌길을 지나자 하늘과 가까워진다. 강물과 가까운 바위산의 나무들은 키가 작다. 영양분을 덜 받아서인지, 바람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올망졸망한 소나무가 분재처럼 멋스럽다.

가은산을 처음 찾는 이들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정표가 길 곳곳에 설치되어 방문객을 안내해준다. 위험 구간에는 출입금지 표시도 확실하다. 하늘과 가깝던 길이 계곡쪽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나무들이 해를 찾아 목을 길게 빼서 그런지 하나같이 쭉쭉 뻗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푸른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볕이 눈부시다. 

분명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내리막이 계속된다. '앞으로 얼마나 오르려고 이렇게 내려가는 거지'.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훗날을 걱정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순간, 딱따구리의 곧고 날카로운 부리가 꾸짖듯 따닥따닥 크게 들린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려간다면 반드시 올라가리라.' 숲속의 거대한 바위를 마주 할 때마다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눅진함을 응원한다.

그나저나 가은산의 명물 '새바위'를  찾을 수 없다. 커다란 바위가 보일 때 마다 '저게 새바윈가' 목을 빼고 쳐다본다. 그러나 아니다. 새바위 찾기가 쉽지않다. 정상을 1㎞ 남짓 남긴 시점부터 본격적인 암릉이다.

가파른 철계단과 암벽 구간은 멋진 조망을 선물로 내놓는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한 커다란 바위를 지탱하고 있는 나무가지와 큰바위 사이에서 주춧돌이 되어주는 작은 돌맹이가 시선을 빼앗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척척해내는 자연이 위대하다. 

커다란 바위 아래 펼쳐진 청풍호가 나를 거인으로 만든다. 잔잔한 청풍호에 조심스레 발을 걸치니, 작은 파동이 호수를 움직인다. 물결은 점점 퍼지며 달팽이 집을 만든다. 산바람, 강바람이 한곳에 모이니 가슴이 확 트이며 마음이 넓어진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암벽과 나무, 파란 하늘과 깊은 물이 펼쳐진다.  깊은 심호흡을 할 때마다 봄향기가 가슴 가득 담긴다. 이 기운으로 정상까지 쉬지 않고 오른다.

결국 새바위는 만나지 못했다. 일대 산을 꿰고 있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탐방로 제한 구역에 포함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그래서 찾을 수가 없었구나'. 조금은 허탈했지만 안전문제든, 환경문제든 막아놓은 구간을 찾지 않은 것은 잘했다고 위안했다.

나무로 둘러쌓인 정상은 포근하다. "하나, 둘, 셋" 정상석이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낸다. "찰칵" 가은산이 활짝 웃고 있다.

옥순대교~가은산~옥순대교 원점회귀 구간은 총 6.9㎞로 왕복 4~5시간 정도 걸린다. 어느 산이든 여유있게 즐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믿는다. 정상을 오른 시간 만큼 하산 할 때도 꼭 투자하라고. 옥순대교 주차장 매점에서 아이스커피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 바위에 살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가은산은 흙길과 암릉이 조화롭다. 커다란 바위에 살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경이롭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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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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