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우승' KGC, 승자도 패자도 빛난 마지막 경기

이준목 2023. 5. 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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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T' 오세근부터 '허재의 재림' 김선형까지

[이준목 기자]

▲ 통합우승 달성한 KGC 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GC 김상식 감독과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프로농구 역사에 두고두고 길이 남을 만한 명승부였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프로농구 출범 이래 최초의 '7차전-연장전'까지 치르는 대혈전 끝에 결국 안양 KGC 인삼공사가 서울 SK를 따돌리고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5월 7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2023 KBL 챔프전 최종 7차전에서 정규리그 1위팀 KGC는 3위 SK를 100-97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3패를 기록하며 정규리그에 이어 통합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챔프전 7차전이 열린 것은 프로농구 역대 6번째이자 2008~2009시즌 KCC와 서울 삼성의 대결 이후 무려 14년 만이었다. 또한 7차전에서 연장전까지 간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KGC에게는 통산 4번째 챔프전 우승이다. 2011-2012시즌부터 2016-2017시즌, 2020-2021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른 KGC는 울산 현대모비스(7회), 전주 KCC(5회)에 이어 역대 최다우승 단독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올해는 정규리그와 챔프전 통합우승(2016-2017시즌에 이어 2번째), 구단 역사상 최초의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이어, 동아시아슈퍼리그(EASL) 우승까지 올시즌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트레블(3관왕)을 휩쓸며 창단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명실상부한 KBL의 새로운 '왕조'로 등극했다고 할 만하다.

창단 이래 최고의 한 해... KBL 새 왕조된 KGC
 
▲ 프로농구 챔피언 안양 KGC 인삼공사 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GC 오세근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KGC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구단의 모든 우승 역사를 함께해온 두 위대한 '원클럽맨' 오세근과 양희종에게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오세근은 올해 챔피언결정전 7경기에서 평균 35분 36초를 소화하며 평균 19.1득점 10리바운드, 야투율 60.4%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정규리그(13.1득점 6.4리바운드)를 훨씬 웃도는 맹활약을 펼쳤다. 승부에 사실상 쐐기를 박는 마지막 결승 자유투도 오세근의 몫이었다.

기자단 투표 총 94표 중 71표를 휩쓴 오세근은 루키 시즌이었던 2011-2012시즌, 그리고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한 2016-2017시즌에 이은 통산 세 번째 챔프전 MVP를 수상했다. 프로농구 'GOAT(역대최고선수)'로 불리우는 양동근(울산 현대모비스 은퇴, 통산 6회 우승-3회 MVP)과 최다 챔프전 MVP 수상 타이 기록이다.

올시즌을 기점으로 오세근은 토종 빅맨으로서는 KBL에서 단연 역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 '챔프전 우승+MVP 수상 경력'에서 오세근보다 앞선 선수는 이제 전무하다. KBL 토종빅맨 계보를 대표한다는 서장훈(통산 2회 우승, 챔프전 MVP 1회), 하승진(2회 우승, MVP 1회), 이승현(1회 우승, MVP 1회)을 모두 제치고 동률이던 김주성(3회 우승, MVP 2회)마저 넘어섰다. 무엇보다 이 선수들이 모두 20대 최전성기에 달성한 기록이라면, 올해의 오세근은 농구선수로서 환갑에 가까운 '만 3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괴물같은 활약을 보여줬다는 데서 더 빛난다.

2007년부터 오직 안양에서만 활약해온 양희종은 마지막 은퇴 시즌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KGC는 양희종의 공헌도를 기려서 영구결번을 확정했다. 김태술, 정영삼, 이동준, 김영환, 함지훈 등 동시대를 풍미한 2007 드래프티 황금세대 중에서도, 원클럽맨과 영구결번에 이어 은퇴 시즌 우승이라는 완벽한 피날레까지 장식한 선수는 양희종이 유일하다. 양희종은 어깨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서 거의 기용되지 않았으나, 김상식 KGC 감독은 우승이 거의 확정된 연장전 종료 직전 양희종을 코트로 투입하여 전설의 마지막 순간을 예우했다.
 
▲ 골대 그물 자르는 김상식 감독 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GC 김상식 감독이 골대 그물을 자르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KGC는 이번 시즌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승기 감독과 간판슈터 전성현(이상 고양 데이원점퍼스)이 이적하며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KGC는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해던 김상식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빈 자리를 메웠다. 김 감독은 고려대 출신으로 실업 중소기업은행과 프로 나산과 KGC의 전신인 SBS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2003년 은퇴했다.

김상식 감독은 현역 시절 '이동미사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국가대표 슈터였지만, 지도자로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5년 SBS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6년 안양 KT&G 감독대행, 2008년 대구 오리온스 감독, 2014년 서울 삼성 감독대행, 국가대표 감독(2019-2021) 등을 역임했지만, 모두 팀성적이 좋지 않았다. KGC를 맡기 전까지 KBL 감독 통산 성적이 39승 68패에 불과했고 봄농구 경험은 아예 전무했다. 이로 인하여 안양 KGC 감독에 선임되었을 때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은 특유의 부드러운 인화 리더십과 합리적인 자율농구를 앞세워 KGC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이미 잘 구축된 우승후보급 전력을 물려받은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가진 전력을 잘 활용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했을 때 김 감독의 업적이 폄하될 이유는 없었다.

김상식 감독은 지도자로서 처음 맞이하는 봄농구에서는 캐롯과의 4강전-SK와의 결승전에 걸쳐 상대의 잇단 변칙 전술과 라인업에 고전하기도 했으나, 일비일희하지 않고 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플레이에 집중하는 '정공법'으로 끝내 감독 첫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역대 챔프전에서 시리즈 5차전까지 열세를 기록하고도 시리즈를 뒤집고 역전 우승한 것은, 1998년의 대전 현대(현 KCC)와 2002년의 대구 동양(현 데이원) 이후 KGC가 역대 3번째이자 무려 21년 만이었다.

감동 선사한 SK의 투혼

우승은 아깝게 놓쳤지만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한 SK의 투혼 역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2021-2022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SK는 올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의 2연패에 도전했으나, 동아시아 슈퍼리그 결승에 이어 챔프전에서도 모두 KGC에게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SK는 압도적이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악재가 많았다. 안영준이 상무에 입대했고, 전년도 MVP 최준용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플레이오프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에는 패배가 승리보다 많아지며 6강 진출조차 불투명해보이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강의 '원투펀치' 김선형과 자밀 워니를 주축으로 조직력을 재정비했다. 두 선수는 나란히 선두팀 KGC의 변준형-오마리 스팰맨을 제치고 국내 선수-외국인 MVP를 휩쓸었다. 여기에 최성원-최원혁- 오재현은 '수비 삼대장'을 형성했고, 전성기가 지났다던 베테랑 최부경과 허일영이 부활하며 플레이오프에서 힘을 보탰다. SK는 정규시즌 마지막 6라운드를 전승한 데 이어, 3위로 올라온 플레이오프에서는 6강전(6위, 전주 KCC)-4강전(2위 창원 LG)을 연이어 스윕하는 저력을 발휘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전희철 감독의 지략도 빛났다. 사령탑으로는 2년 차이지만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전 감독은, 올해 봄농구에서는 워니-김선형의 투맨게임에서 3-2 드롭존, 강압수비 등 다채로운 전술변화와 적재적소의 선수기용으로 전력을 극대화하며 그동안의 성과가 단지 '선수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

결과적으로 15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 하고 4쿼터 대역전패를 당한 6차전의 경기운영이 아쉬운 옥에 티가 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 감독의 전술적 판단미스라기보다는 선수단의 체력고갈이 원인이었다. 전 감독은 경기 후 아쉬운 패배를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은, 애초에 전 감독의 리더십과 지략이 없었다면 SK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슛하는 김선형 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 SK 김선형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SK의 에이스 김선형은 가히 '1998년 허재의 재림'이라는 데자뷰가 떠오를 만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35세의 김선형은 챔프전 7경기 평균 18.3점 3.3리바운드 8.6어시스트 1.9스틸,3점슛 2.3개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남겼다. 프로농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준우승팀 MVP였던 1997-1998시즌의 허재(당시 33세, 7경기 평균 23점 4.3리바운드 6.4어시스트 3.6스틸, 3점슛 3.6개) 이후로 준우승팀 에이스가 보여준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특히 7차전에서는 3점슛 5개 포함 37점 5리바운드 10어시스트 5스틸의 원맨쇼를 기록하며 자칫 KGC의 완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경기를 연장까지 가는 접전으로 이끌었다. 이 중 김선형이 3쿼터에만 몰아넣은 19점은 국내선수의 챔피언결정전 한 쿼터 최다득점 신기록이기도 했다. 우승을 놓치면서 챔프전 MVP도 라이벌 오세근에게 아깝게 넘겨줬지만, 김선형은 끝까지 에이스로서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또한 김선형이 한층 더 빛난 부분은 치열했던 승부가 끝난 직후 보여준 아름다운 매너였다. 김선형은 대혈전을 치르고도 아깝게 우승을 놓친 데 대한 실망이나 좌절감을 드러내는 대신, 먼저 고생한 동료들을 위하여 따뜻하게 박수를 치고 격려하며 위로했다. 또한 KGC 선수들에게도 다가가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후회없이 치열하게 싸우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도 프로의 자세라고 했을 때, 김선형은 진정한 스포츠의 '품격'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훌륭한 상대가 있기에 승자의 업적도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의 진짜 매력이다. KGC는 찬란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SK가 함께 경쟁해줬기에 이번 챔프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농구팬들에게 회자될 전설로 기억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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