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방서 다투다 쓴 'ㅂㅅ' 표현, 모욕죄 무죄…대법서 선고 뒤집힐 가능성도 [디케의 눈물 75]

김남하 2023. 5. 4.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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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회원, 단체 채팅방서 대표 모욕 혐의로 피소…"욕설 아닌 '부정적 감정' 표현" 항소심 무죄
법조계 "흔히 욕설로 쓰이는 표현이라도…초성 차용해 표현하는 정도면 모욕 정도 경미하다고 본 것"
"사회적 분위기 및 인식 변화 따라 모욕 판단기준 달라져…표현의 자유, 무시할 수 없는 가치"
"과거 '듣보잡', '관종' 등 표현 모욕 인정되기도…상고 이뤄진다면 대법 판결 한 번 받아봐야"
ⓒgettyimagesBank

단체 채팅방에서 욕설을 연상케 하는 'ㅂㅅ'이라는 표현을 썼더라도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ㅂㅅ'은 욕설로 통용되는 '병신'의 초성을 딴 글자로, 법원은 이를 직접적인 욕설이 아닌 부정적 감정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명확하게 상대방을 지칭하며 '병신'이라고 욕설을 한 것이 아니라 특정 단어나 초성을 차용해 사용하는 정도라면 모욕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법원에서 본 것 같다"고 해석했다. 다만 앞선 유사 판례들과 배치되는 판결이라서 대법원에서 선고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4부(부장판사 이태웅)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이었던 A씨는 지난 2020년 10월 시민단체 대표 B씨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다투던 중 'ㅂㅅ' 등 표현을 썼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내부 부정행위 신고자를 탄압한다'는 이유에서 다툼이 벌어졌고, A씨는 B씨에게 "ㅂㅅ 같은 소리", "ㅂㅅ아"라는 표현을 담은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가 'ㅂㅅ'이라고 한 것을 '병신'이라고 한 것과 동일하다고 봤다. 1심은 "경멸적 표현을 담은 욕설로 피해자 인격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저하시킬 위험이 있는 모욕행위"라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ㅂㅅ'과 '병신'은 문언상 양 표현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없다"며 "'ㅂㅅ' 표현은 상대방의 언행에 대응하면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한 정도로 보이고, 피해자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모욕적 언사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는 재판부가 피고인의 행위를 모욕이 아닌 '부정적 감정' 표현으로 판단한 근거에 주목했다. 법무법인 율샘 김도윤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모욕죄는 특정인의 외부적 명예가 침해됐을 때 성립하는데, 행위가 이뤄진 당시 상황이나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한다"며 "A씨가 한 정도의 표현은 용인될 수 있는 정도라고 재판부에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적 표현에 대해 특정 단어나 초성을 차용해 사용하는 정도라면 모욕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특정 누군가를 지칭해 '병신'이라고 직접적인 욕설을 하거나 성적인 표현을 했다면 모욕죄가 성립했을 것이다. 또, B씨가 만약 장애인이었다면 법원의 판단이 달라졌을 수 있다. 'ㅂㅅ'이라는 표현은 '병신'의 준말로, 장애 비하 표현으로도 비춰질 수 있어서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리더스 김희란 변호사는 "1심에서 벌금형이 나왔으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는 것은 곧 재판부가 모욕에 대해 어떤 관점,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앞서 나온 비슷한 판례를 보면, 어떤 표현이 개인의 인격을 심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거나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욕설이 아닌, 경미한 정도의 추상적 표현이 사용된 경우라면 헌법상 기본권인 '명예 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각자 영역 내에서 조화롭게 보호해야 한다고 설시돼 있다. 이 두 가지 기본권을 보장하려는 재판부의 고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gettyimagesBank

반면 이번 판결이 앞선 유사 판례들과 배치되는 판결이라며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법무법인 삼승 김성훈 변호사는 "다소 이해되지 않는 판결이다. 과거에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의 준말)'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표현도 법원에서 모욕적 표현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며 "굳이 'ㅂㅅ' 정도 수준의 발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모욕으로 보지 않겠다는 취지의 판결로 보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법 감정이나 사회 상식과는 다소 동 떨어진 판단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호암 신민영 변호사 역시 "과거 '관종(관심 종자)', '소시오패스' 등 표현도 모욕죄로 인정된 판례가 있었다. 이번 경우는 명확히 '병신'이라고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앞선 모욕죄 인정 판례 등에 비춰보면 충분히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어 보인다. 아마도 항소심 재판부에서 'ㅂㅅ'을 다른 추상적 표현으로 판단한 것 같은데 상고가 이뤄진다면 대법 판결을 한 번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봤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 법조계 전문가들은 사회적 분위기나 인식의 변화에 따라 모욕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희란 변호사는 "A씨가 쓴 표현을 두고 부정적 감정을 담은 해소용인지 상대방을 모욕하기 위해 고의를 갖고 한 행동인지는 시대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일반인들이 일상 대화 속에서 비속어나 욕설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러한 표현들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면 처벌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윤 변호사는 "SNS가 발달하고 상호 간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비속어나 욕설에 대한 관용의 폭이 넓어졌다.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욕설을 받아들이는 역치도 달라졌다"며 "개인의 명예도 물론 중요하지만, 표현의 자유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가치라고 사법부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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