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의 가장자리] 백 년을 기억하는 화해
『백년의 고독』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장편소설이 있다. 백인에게 점령당한 남미의 수치스러운 백 년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기록했다. 해괴한 수치의 역사를 살려낸 이 소설은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00여 년 전, 17세기부터 호주에 이주한 백인들은 원주민을 열등하다며 차별하고 학살했다. 1800~1970년대에 걸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동화 정책으로 원주민 아이들 10%를 백인 가정이나 보육원에 보내 강제로 ‘세탁’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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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민 차별에 고개 숙인 호주
5월 26일 ‘국립 사과의 날’ 지정
독일·남아공 등도 역사에 사죄
한·일 미래도 과거 기억서 시작
」
노동당 총리 케빈 러드는 2008년 2월 13일 국회의사당에 빈민층 원주민인 애버리지니를 가득 모시고 사과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강제로 떼어져 시설에 수용됐던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에 사과했다.
“잘못된 법과 정책으로 고통받은 원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특별히 강제로 가족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에게 깊이 사과합니다.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는 사과합니다. 자랑스러운 문화에 모욕과 수치심을 줬던 잘못을 우리는 사과합니다. 수상으로서, 저는 미안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나아갑시다.”
그날 의사당 안에 원주민은 물론 야외에서도 살색과 상관없이 손을 모아 사과의 현장을 목도했다. “We apologize” “We say sorry”를 여섯 차례 반복한 총리는 원주민 대표들을 끌어안았다. 호주는 매년 5월 26일을 ‘국립 사과의 날’로 지키며 혐오 문제를 극복하려고 애쓴다. 호주 정부의 사과는 같은 해 6월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 탄압을 사과하는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100년 전에도 독일은 폴란드를 괴롭혔다. 1970년 12월 7일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올해 4월 23일 독일 대통령은 “독일인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을 가슴에 달고 사과했다.
3년 전 나는 그 위령탑에 가서 그 마음 생각하며 무릎 꿇고 손을 모았다. 위령탑에서 꽃을 정리하던 폴란드 남성은 고맙다며, 입고 있던 ‘평화 운동’ 셔츠를 벗어 내게 입히고 폴란드 손국기를 건넸다.
백 년 이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흑인 차별은 1994년 넬슨 만델라에 의해 멈추었다. 진실을 밝히고 보복 대신 사면하고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다. 넬슨 만델라처럼, 우리 내부의 국가 폭력, 1948년 제주도민, 1980년 광주항쟁 등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일본에서 10여 년 살면서 나는 일본이 아시아에 해온 백 년의 과거를 괴로워하는 일본 시민, 작가, 학생을 많이 만났다. 소설가 오에겐자브로는 “일본이 어느 정도 사죄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큰 범죄를 한국에 범했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라고 했다.
백 년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호주 총리나 독일 총리처럼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해야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법적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 아쉽게도 일본 시민단체가 내각부에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죄편지를 권유한 일에 대해 아베는 만나기는커녕 “위안부에 사죄편지는 털끝만큼도 생각 안 한다”는 망언을 남겼다.
‘학폭’이나 국제관계나 비슷한 면이 있다. 가해자는 가해했던 기억을 망각한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원주민 청년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주인공 뫼르소처럼 가해자는 폭력을 뉘우치지 못한다.
물론 일본 정부도 사과한 적이 있다. 2015년 7월 미쓰비시 머터리얼은 미국 LA까지 가서 미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다음 해 2016년 6월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도 사과하고 배상했다.
다만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 및 강제 동원은 합법적 행위”라면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았다. 현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일본이 백 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해자의 망각에 힘을 보태는 해괴한 상황이다.
한·일 사이의 백 년을 기억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기회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강제노역,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은 인륜의 문제다. 백 년을 기억하는 것은 피해의식이나 자학적 태도도 아니고, 인간 존엄과 일본이 바로 서고 신뢰받는 길이다. 구원의 방법은 이미 과거에 있으며, 진정한 희망은 과거의 기억에서 나온다. 진실과 대면한 이후에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 있다.
김응교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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