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서 뇌로… 르네상스의 '권력 이동'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유튜브 '김응빈의 응생물학' 운영 2023. 4.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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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빈의 생생바이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유럽에 이르기까지 흔히들 뇌는 피를 식히는 장소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그 옛날 사람들에게 지성과 감성이 머물며 몸을 통제하는 곳은 심장이었다. ‘외워서(by heart)’나 ‘진심으로(with all my heart)’ 같은 영어 관용 표현이 이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같은 표현을 은연중에 쓰고 있다. 아무튼, 르네상스를 거치며 뇌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혁의 선두 주자는 벨기에 출신 의사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였다. 그는 1543년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라는 역작(총 7권)을 출판하여 근대 해부학의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 뇌를 다룬 제7권에서 베살리우스는 당시까지 전해오던 잘못된 사실을 여럿 바로잡았다. 예컨대 모든 신경이 심장이 아니라 뇌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울러 베살리우스가 그린 정교한 해부도 덕분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뇌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사람의 뇌 구조를 그대로 그려내는 수준을 넘어 부위별 기능과 역할을 밝혀내려는 야심 찬 인물이 등장했다. 1664년, 영국인 의사 윌리스(Thomas Willis)는 사람과 동물의 뇌 비교와 뇌 손상 환자 치료과정에서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한 <대뇌 해부학>을 내놓았다. 그는 복합적이고 추상적인 사고와 같은 인간만의 고차원적 능력은 뇌의 겉 부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의 뇌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여기서 지성이 나온다는 것이 윌리스의 추론이었다.

표면이 심하게 주름져 있는 대뇌피질의 앞, 뒤, 옆, 위쪽을 각각 이마엽(전두엽), 뒤통수엽(후두엽), 관자엽(측두엽), 마루엽(두정엽)이라고 부른다. 각 엽에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영역이 존재한다. 기능상으로는 감각령과 연합령, 운동령으로 구분한다. 감각령은 감각신경을 통해 받은 정보를 인접한 연합령으로 보낸다. 연합령은 감각 정보를 분석·처리하여 그 결과를 운동령을 보내 운동신경을 통해 지시를 내린다. 일찍이 윌리스도 말하기를, 명령을 내려보내 신체를 조종하는 뇌가 마치 왕과 같다고 했다.

실제로 뇌는 우리 몸의 ‘컨트롤타워’다. 뇌는 중추신경계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감각기관에서 전달받은 다양한 정보를 종합 분석하여 명령과 조절 기능을 수행한다. 중추신경계에서 뻗어 나와 온몸에 퍼져 있는 말초신경계는 그 기능에 따라 체성신경계(몸신경계)와 자율신경계로 나눈다. 자극 정보를 중추신경계로 전달하고, 이에 대한 명령을 해당 반응기에 보내는 체성신경계는 12쌍의 뇌신경과 31쌍의 척수신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율신경계는 대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람의 뇌는 보통 대뇌, 소뇌, 중뇌(중간뇌), 간뇌(사이뇌), 연수(숨뇌)로 구분한다. 그리고 중뇌와 간뇌, 연수를 합쳐 ‘뇌줄기(뇌간)’라고 부른다. 연수에 이어져 척추 속으로 뻗어 있는 척수는 뇌와 말초신경계를 연결한다. 말하자면 몸에서 뇌로 그리고 뇌에서 몸으로 오가는 정보의 중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척수가 없는 무척추동물에 비해서 척추동물의 중추신경계가 크게 발달할 수 있게 되었다.

뇌를 비롯한 신경계는 ‘뉴런(neuron)’이라고 부르는 신경세포로 구성된다. 뉴런은 다른 체세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독특한 구조가 ‘자극과 반응’이라는 정보전달 기능을 가능하게 해준다. 뉴런은 핵과 세포질로 이루어진 신경 세포체와 여기서 나온 축삭과 가지돌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 그대로 나뭇가지를 닮은 가지돌기는 인접한 뉴런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밧줄을 연상시키는 축삭은 이 신호를 인접한 다른 뉴런에 전달한다. 뉴런을 통해 흐르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전기신호이다.

인접한 뉴런들 사이에는 ‘시냅스(synapse)’라고 부르는 극미한 틈이 존재한다. 축삭 말단에 도달한 전기신호는 거기에 있는 미세한 주머니를 터뜨린다. 그 안에는 뉴런과 뉴런 사이, 곧 시냅스를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들어있다. 흔히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사람 뇌에서 확인된 신경전달물질은 100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행복 호르몬이라는 말은 자칫 ‘호르몬 =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오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둘 다 인체의 화학적 메신저라는 점은 같지만, 둘은 엄연히 구별된다.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에서 전기적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반면, 호르몬은 세포 밖으로 분비되어 혈액이나 림프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특정 표적 세포를 자극한다.

물질적 성분만 놓고 보면 뇌는 머리뼈 속에 들어있는 1.4㎏ 정도의 지방과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렇게 단순한 구조체가 어떻게 인체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자그마치 천억 개가 넘는 뉴런이 500조가 넘는 연결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청나게 복잡한 뇌의 작동 원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뉴런 간 무수한 연결을 통한 정보 교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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