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시티'로 유명한 자이푸르 한번 보세요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4. 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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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왕들의 땅

[김찬호 기자]

다람살라에서 밤 버스를 타고 델리로 내려왔습니다. 다시 돌아온 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향하는 곳은 자이푸르입니다. 자이푸르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는 조드푸르와 우다이푸르를 여행했습니다. 모두 라자스탄(Rajasthan) 주에 위치한 도시죠.

'라자스탄'에서 '라자(Raja)'는 왕을 의미합니다. '스탄(Sthan)'은 땅이라는 뜻이죠. 곧 라자스탄은 왕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인 인도에서 왕이라니요. 하지만 라자스탄에는 여전히 여러 '라자' 혹은 '마하라자(Maharaja)'가 살고 있습니다.
 
 조드푸르의 메헤랑게르 성
ⓒ Widerstand
라자스탄은 인도 서북부에 위치한 주입니다. 파키스탄과 접경하고 있죠. 서쪽으로는 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저는 방문하지 않았지만, 자이살메르(Jaisalmer) 같은 도시는 낙타 사파리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요. 
사막 지형의 특성상 라자스탄에서는 통일 왕조가 등장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나의 도시를 중심으로 지방 정권들이 성장했죠. 사막의 왕조들은 때로 서로 연합하며 이민족의 침입에 맞섰고, 때로는 서로 갈등하며 전쟁을 벌였습니다.

무굴 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굴 제국은 남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한 왕조였지만, 모든 땅을 직할지로 통치하진 않았습니다. 무굴 제국의 우위를 인정하기만 하면, 지방 정권의 자치권을 존중받을 수 있었죠. 라자스탄의 여러 왕은 왕조를 이어가며 나름의 자치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영국령 인도 제국도 그랬죠. 라자스탄을 포함해 여러 지역에는 지역의 왕조가 이어졌습니다. 영국은 이들과 조약을 맺고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했지만, 명목상으로 왕조는 살아남았습니다. 영국 지배에 협력하는 대가로 왕조의 존속을 얻어낸 것입니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할 때까지도 565개의 '번왕국(Princely State)'이 남아 있었습니다. 인도 영토에서 영국이 직접 통치하던 땅은 6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자이푸르의 마하라자가 사는 시티 팰리스
ⓒ Widerstand
물론 이러한 왕국의 존재는 독립해 새로 만들어진 인도 공화국에게는 걸림돌이었습니다. 각 왕조는 인도나 파키스탄에 편입될 수도 있었지만, 독립을 선언할 수도 있었습니다. 인도는 발라브바이 파텔 부총리를 중심으로 각 왕국과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파텔 부총리는 적극적으로 각 왕국의 인도 편입을 추진했습니다. 왕들에게는 재산을 보호하고 일부 특권을 유지시켜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죠. 그래도 독립을 원하는 지역은 무력으로 병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각 왕국은 모두 인도나 파키스탄에 병합됩니다. 이 과정에서 카슈미르 문제와 같은 갈등도 물론 발생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인도 공화국이 이 왕들에게 약속했던 특권은 점차 축소됩니다. 과거 왕국의 영토와는 관계 없이 주의 경계가 재조정되었습니다. 일부 지역은 다른 주에 통합되었죠. 하지만 라자스탄에는 여전히 많은 마하라자들이 명목상으로나마 존속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막대한 재산을 갖고 도시 중심의 궁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메헤랑게르 성의 성벽
ⓒ Widerstand
자이푸르에도, 조드푸르에도, 우다이푸르에도 도시 중심에는 마하라자가 거주하는 궁전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구역이 관광객을 위해 개방되어 있지만요.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지만, 저도 여러 궁전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궁전 안에 새겨진 역사는,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화려한 궁전과 성벽에 전쟁과 상처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곳에서는 독립의 상실이 아픔이나 치욕으로 기억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은 폴로 경기를 하며 즐겼을 뿐입니다.

조드푸르에 있는 메헤랑게르 성은 강력한 요새였습니다. 성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도 높고, 구불거리며 급하게 꺾여 있습니다. 대규모의 군사가 올라오기는 어려운 곳이겠죠. 단단한 성벽도 높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국의 지배는 별다른 전투 없이 손쉽게 이어졌습니다.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로 유명합니다. 도시 중심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화려한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죠. 자이푸르가 '핑크 시티'로 탈바꿈한 것은 1876년의 일입니다. 후일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에드워드 왕세자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도시를 분홍색으로 칠한 것입니다. 이 역시 자이푸르의 마하라자가 지시한 일이었습니다.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
ⓒ Widerstand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이들에게 무굴 제국의 지배는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합니다. 힌두교를 믿는 이들에게, 이민족인 무슬림의 지배는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었을까요? 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아들였다면, 또 영국의 지배를 회피할 이유는 없겠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의 인도 공화국은, 이들에게 또 어떤 의미일까요? 무굴 제국이나 영국의 지배와, 인도 공화국의 지배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일까요? 오히려 자치권을 크게 축소하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 인도 공화국이 이들에게는 더 폭력적인 지배로 느껴지지는 않을까요?
 
 우다이푸르의 호숫가. 언덕 위의 건물이 마하라자가 사는 시티 팰리스다.
ⓒ Widerstand
물론 세 나라는 많은 점에서 다릅니다. 전근대의 지배 방식과 근대의 지배 방식은 다릅니다. 제국의 지배 방식과 공화국의 지배 방식도 분명히 다르죠. 왕족의 시각과 민중의 시각은 역시 또 다를 것입니다. 식민 제국의 지배와 민주주의 공화국의 지배를 비교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진보를 무시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하고, 때로 모욕적이기도 한 질문마저 감내하고 답해주는 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라자스탄의 사람들에게도 당당히 답할 수 있어야겠죠. 식민 제국의 체제보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체제가 우월하다고요.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요. 지금의 인도 공화국은, 그렇게 당당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자이푸르의 마하라자가 만든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
ⓒ Widerstand
인도는 연방제 국가입니다. 각 주의 상황도 정서도 참 많이 다르지요. 인도를 여행할수록, 저는 인도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여러 나라가 모인 대륙에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꼭 연방제 국가가 아니더라도,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니까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집단이 자신의 자리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판단합니다. 그 모든 기억과 판단을 수렴하고, 질문에 합리적인 답변을 내리는 것이 민주주의를 통해 수립된 정부의 역할이겠지요.

마침 라자스탄에 머무는 동안, 인도에서는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교과서에서 이슬람 제국이었던 무굴 제국의 역사를 축소하고, 힌두와 이슬람의 화해를 추구한 간디의 암살 배경 등이 삭제된 것입니다. 모디 총리가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구자라트 학살 사건도 교과서에서 빠졌습니다.

14억의 목소리를 마주한 인도 정부는, 정말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식민 제국보다 우월한 민주주의 공화국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라자스탄의 시민들에게 인도 제국과 인도 공화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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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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