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푸쉬카'를 끌면서 내가 들은 말들

강은혜 2023. 4. 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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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만연한 '빈익빈 부익부'와 '비교 사회'를 동시에 실감한 하루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은혜 기자]

 푸쉬카를 끌고 아이랑 공원 산책.
ⓒ 강은혜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유모차를 거부했다. 내려달라고 우는 통에 한 손은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한 손은 아이를 안는다. 체력 소모가 컸다. 유모차 외 탈 것을 검색했다. 푸쉬카, 전동카, 유모카, 트라이크, 유아용 세발자전거... 요즘은 아이 태울 장비들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주 동안 어떤 것을 사야할지 머리 아프게 고민했다.

제품 리뷰를 꼼꼼하게 살피고 지인들 조언까지 듣고 나서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푸쉬카'를 선택했다. 푸쉬카는 자동차 유모차 형태다. 푸쉬카는 핸들링이 좋지 않고 노면이 고르지 못한 길에서는 소음이 심한 편이라는 후기가 많았다. 그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의 장점은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것.

브랜드 별로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마음에 드는 브랜드가 있었지만 제품 구매를 두고 망설였다. 약 30만 원 정도 하는 가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곧장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그러나 내가 사고자 하는 브랜드의 제품은 중고 매물도 적었다.

알림 설정을 했다. 새로 올라오는 매물 중 조건이 맞으면 바로 사야지 마음을 먹었다. 알림이 울릴 때마다 확인을 바로 해도 다른 사람에게 금방 팔리는 실정이었다. 수요 대비 공급이 적어 중고 가격 형성도 높은 편에 속했다.
 
 중고거래 검색하면 나오는 푸쉬카 매물.
ⓒ 강은혜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 저렴하게 올린 분에게 푸쉬카를 중고 구매하게 되었다. 아이는 푸쉬카를 보자마자 당장 타겠다며 들떴다. 푸쉬카를 좋아한 덕분에 집 주변 공원을 편하게 데리고 다닌다.

푸쉬카를 끌며 들은 첫 번째 말

한편 푸쉬카를 끌다 보니 투샷(한 화면에 두 명의 인물을 담은 장면)을 담을 때가 종종 생겼다. 푸쉬카에 올라타 그저 해맑은 웃음을 짓는 내 아이와 푸쉬카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동시에 담겼다. 어쩌다 그 투샷에 명암을 넣었더니 시대의 현주소가 보였다. 

푸쉬카를 끌고 육교 건널 일이 있었다. 약자를 위한 승강기를 탔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어르신 두 분과 함께 탔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 땐 저런 게 어딨었어요? 매일같이 업고 다녔지."
"그러게요. 요즘 시대는 저런 것도 있고 참 좋아요. 그런데 애를 안 낳는다잖아요?"
"정부에서 돈도 많이 준다던데... 애만 낳으면 되는데."

어르신들 대화에 괜한 반발심이 들었다. 그 까닭에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낼 뻔했다. '그러게요, 어르신. 정부가 돈도 준다는데 젊은 사람들은 왜 애를 안 낳을까요?'

푸쉬카를 끌다 갑작스럽게 대한민국 현주소가 촤르르 펼쳐졌다. 저출산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인구 문제지만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 저출산 국가라는 점에서 아쉬울 뿐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연이은 참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보며 아이들이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안이 생기는 것부터 맞벌이를 해도 여전히 여성에게 지우는 육아 몫이 커서 생기는 불만들까지, 저출산의 원인은 얼기설기 얽혀 있다.

나는 이 시대에 만연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하나의 원인이라 본다. 잘 사는 사람 보면 질투가 나는 한편 ,나의 가난은 갈수록 깊어져서 미혼은 '나 혼자 산다', 기혼은 '둘이서 산다'를 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년 성인 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미혼과 기혼 모두 '경제적 불안정'을 1위로 꼽았다.

'경제적 불안정'이라는 원인에 정부 보조금은 훌륭한 저출산 지원 정책으로 보인다. 2024년 출생 아기부터는 월 100만 원씩 준다고 하니 표면만 보면 어르신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 지원 정책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이유는 '고작'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풍요로운 먹거리에 엥겔지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데 물가도 동반 상승하니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여기에 품위 유지비, 사교육비 등까지 합쳐지면 정부 보조금은 '고작'이 된다. 주변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 이야기만 듣더라도 사교육비 월 100만 원은 우습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싶다면 더 이른 연령부터 사교육비를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부족함 없이 채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이 든다. 돈만 많으면 범죄조차 묵인될 것 같은, 안 될 게 없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이상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푸쉬카를 끌며 들은 두 번째 말

하굣길 시간에 푸쉬카를 끌다가 학생들을 마주쳤다. 중학생 남자 아이들 여러 명이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와 대박, 포르쉐! 아기가 비싼 차 끌어!"

집 엘리베이터에서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들 두 명에게서 또다시 비슷한 말을 들었다. 아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대화를 쉽게 엿들을 수 있었다. 

"○○야. 이거 포르쉐야. 이거 엄청 비싼 차야."
"아 그래? 얼만데."
"완전 비싼 건 9억 한대."

순간 9억이라는 숫자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아이가 뭘 잘 알지 못하면서 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내 손은 이미 포털 사이트에 '포르쉐 9억'이라고 치고 있었다. 2022년 9억이 넘는 포르쉐 '싱어'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떡하니 보인다. 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그나저나 아이들은 비싼 차를 왜 이리도 잘 아는 것일까. 두 번째 현주소가 펼쳐졌다. 그것은 갈수록 심해지는 '비교 사회'였다. 가격대가 다소 높은 푸쉬카를 중고 구매하려는 순간부터 '어떤 것'이 실체를 드러냈다.

제품을 제값 주고 사자니 가계 사정부터 고려한다. 비싸고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비싼 브랜드 제품을 끌고 싶은 부모 마음이 공존했다. 많은 부모의 선택지는 중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뜻밖에 푸쉬카 중고 품귀 현상에서 '비교하는 사회'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요새는 아이들도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무시한다고 한다.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전염되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엔 내 가치관이 명확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교육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부모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막상 낳아보니 그들의 심정이 이해된다. 아이에게 많은 경험과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왕이면 내 자식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게 당연한 부모 마음이었다. 어느새 '남들보다 더 잘 살기' 프로젝트를 세운다. 물질적 풍요로움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살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귀를 쫑긋 세우다 보면 지갑은 텅 비어간다. 그러나 소위 '태어났더니 부모가 ○○이더라' 하는 금수저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99% 불가능의 영역일지 모른다.

어르신과 아이들의 대화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차올랐다. 그들을 헤아리면서도 어쩐지 이질감이 들어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 이질감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한 것도, 단면만 보고 전체를 폄훼하려는 것도... 그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삶의 미세한 영역까지 알게 모르게 타인과 비교한다. 저출산 문제 기저에는 정부 보조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교가 존재하며 그 비교는 다시 아이들에게 되물림되고 있음을... 그리고 남들의 시선 따위 내게는 절대 없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그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글로써 남겨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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