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에겐 등불이죠”…깜깜한 밤 더 환한 약국

박선혜 2023. 4. 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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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야간약국, 365일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불 밝혀
2010년 시범사업 시작 이후 올해 3월 ‘제도화’ 안착
“국민 홍보 강화·야간 근무 약사 위한 재정적 보완 필요”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 공공야간약국이 새벽 1시까지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박선혜 기자

밤 11시, 엄마 최유미씨(31세)는 갑자기 깨 보채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온몸에 울긋불긋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이다. 손발이 찼고, 미열도 느껴졌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당장 응급실을 가야하나 고민이 됐다. 급하게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밤늦게까지 여는 약국이 있을 테니 찾아보라는 대답을 받았다. 바로 인터넷을 찾아보니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정말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 약국이 있었다. 

“막막했는데 깜깜한 건물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보이더라고요. ‘공공야간약국’이라는 전광판이 걸려있었어요. 약사님이 다행히 상태가 심각해보이지는 않는다며 간지러움을 예방해주는 약을 주셨어요. 덕분에 아이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날 진료도 무사히 받았어요. 응급실 가면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큰 도움이 됐어요.”

새벽 1시까지 여는 ‘공공약국’… 늦은 밤 다급한 환자 발길 이어져 

공공야간(심야)약국이란 365일 심야 시간과 공휴일에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약국을 말한다. 이들 약국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문을 열어놓는다. 그 동안 늦은 밤 약을 구할 수 없던 국민들의 불편감을 해소하고 전문 약사의 복약지도를 통해 오남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공공야간약국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빛을 발했다. 오밤중 갑자기 몸살과 고열을 겪는 환자들이 약사를 통해 해열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코로나19에 재감염된 김모씨(33세·남)는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너무 추워서 중간에 눈을 떴고 열을 재보니 38.2도였다”며 “편의점에서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해열제를 사먹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여자 친구가 밤거리를 달려 늦게까지 여는 약국에서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사다줬다”면서 “그 약국 아니었으면 밤새 고생했을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특히 아이를 둔 가정에서 집 주변 공공야간약국은 ‘유용한 존재’다. 어린 아이들은 갑자기 열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시군구별 공공야간약국 위치를 공유하는데 남양주 등 경기 지역, 송도 등 인천 지역, 그 외 지방에 거주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소아전문병원이나 응급실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A공공야간약국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응급실 가기가 용이하지 않은 환자들이 심야에 약을 살 수 있어 좋아하셨다”며 “화상, 상처가 생긴 경우는 물론 음식 알레르기, 전신 두드러기, 급체, 장염, 몸살 등 다양한 원인으로 약국을 찾아오신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들은 심야에 무조건 응급실로 가지 않고 약국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약사의 상담을 받아 나이질 수 있다”면서 “환자는 의료비용을 아끼고, 병원은 응급실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건강보험료 재정 지출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6일 밤 11시. 깜깜한 건물들 사이로 환하게 불을 밝힌 약국이 보인다. 이 날 지나가던 행인 A씨는 “가끔 야근하거나 약속이 있는 날에는 집으로 가는 길이 어둡고 사람도 없어 무서울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불이 켜져있는 야간약국을 보면 반가울 때가 있다”며 “아픈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더 반가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진=박선혜 기자

시범사업 끝 법제화… 홍보·지원금 부족은 개선점 

공공심야약국은 지난 2010년 대한약사회의 ‘심야응급약국 및 연중무효약국’ 시범사업으로 출발했다. 

그 해 7월부터 6개월간 실시된 시범사업에 전국 2800여개 약국들이 손해를 무릅쓰고 참여했다. 24시간 또는 새벽 6시까지 운영하는 ‘레드마크’ 응급약국과 새벽 2시까지 이용하는 ‘블루마크’ 응급약국으로 나눠 불을 밝혔다. 

시범사업 이후 시민들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지자, 2012년부터는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12개 시·도 58개 지방자치단체가 약국 운영 지원에 나섰다. 참여 약국의 수는 줄었지만 지자체 예산에 따라 지정된 108개소가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홍보가 미흡해 손님이 늘지 않았고, 지자체별로 지원금이 달라 운영이 어려워진 참여 약국은 점차 발을 뺐다. 결국 대한약사회가 정부를 상대로 공공심야약국 운영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고, 기나긴 씨름 끝에 지난해 7월1일 정부 예산을 토대로 한 6개월간의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정부의 독려에 61곳의 약국이 추가돼 총 169개소가 운영됐다. 

그리고 올해 3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공심야약국이 더 이상 시범사업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이 이뤄졌다. 운영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공공심야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은 매년 시범사업 연장 여부에 마음 졸이지 않고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간 미진했던 홍보, 야간 근무 인력 부족 등의 문제도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B공공심야약국 관계자는 “야간약국을 운영해도 홍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환자들이 거의 모르는 상황이다. 방문객 수가 많지 않다보니 경영이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라며 “이번 국회 통과를 계기로 심야약국이 정착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 “심야 시간을 365일 운영하다보니 약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둔다고 할까봐 늘 조마조마하다”며 “정부 지원을 통해 심야근무 약사의 급여에 상응하는 지원금이 기본적으로 지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내년 예산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더 많은 국민이 밤늦은 시간에도 혜택을 누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약사회도 공공심야약국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약사들도 더 많이 봉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공공심야약국 법안의 시행일은 ‘정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로, 내년 4월 중순쯤 본격 효력을 가지게 된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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