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자전거 조립에 성공했습니다

전미경 2023. 4. 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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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하루도 빠짐없이 수중 걷기를 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여자라는 이유로. 한 달에 7일은 빠져야 하는 생체적인 특성. 평균 나이 49세면 사라진다는 생리.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관절까지. 다방면에서 한국 여성 평균과는 거리가 멀다.      

수영장에 못 가는 날을 대비해 특단의 조치를 해야 했다. 관절 솔루션 등산 프로젝트를 위해. 실내자전거를 구매하기로 했다. 처음에만 열심이지 나중엔 옷걸이 한다는 사람들 경험담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참고는 했다.

초보 운전자가 중고로 연습하듯 일단 중고 시장을 기웃거렸다. 적당해 보이는 좌식 자전거 한 대를 발견했다. 사만 원. 타보고 구매하겠다 하니 그러라 했다. 다급한 일정이긴 했으나 톡을 남기고 방문했다. 주인이 없는지 초인종만 누르다 돌아섰다. 반응이 없으니 불발된 거나 다름없다.     

검색으로 다양한 종류의 실내 자전거 중 몇 대를 추렸다. 가격과 후기가 적당한 걸로. 홈쇼핑에서 유명한 헬스 트레이너가 광고하는 거로 결정했다. 그런데 조립이었다. 조립은 왠지 자신이 없어 완제품을 사기 위해 근처 마트로 향했다.

마침 같은 모델이 있어 바로 구매를 했다. 완제품이 아닌 박스를 가져오길래 "조립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저건 완제품이잖아요"라고 했더니 전시용 체험용이라고 했다. 고가가 아닌 이상 완제품을 사는 건 어려웠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여자도 충분히 조립 가능하다는 후기가 보였던 터라 덜컥 인터넷 주문을 했다. 무엇보다 절박했다.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배송은 빨랐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현관 앞에 커다란 박스 하나가 놓여있다. 화물이라 사전 문자도 안 왔다. 알았으면 기다리고 있다 실내에 들여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내 키보다 큰 박스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현관 입구 반을 차지하는 박스를 보니 풀기도 전에 힘이 빠졌다. 

혼자라서 별로일 때가 있다. 음식을 주문할 때. 외식할 때. 무거운 짐 운반할 때. 그리고 지금처럼 조립할 일이 생겼을 때. 엄두가 안 났다. 처음이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출장 조립 옵션이 있었다면 했을 텐데 최저가라 옵션도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박스를 조심히 풀었다. 스티로폼에 끼어있는 부품들을 꺼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일단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20여 가지다. 친절하게 스패너와 육각렌치도 동봉했다. 2단계로 부품들을 둘러싼 포장지를 제거했다.

부품을 다 확인하기도 전에 안장이 먼저 나왔는데 가운데 이음선이 찢어져 있다. 큰 문제는 아니나 불량품처럼 보였다. 안장에 이리저리 앉아 보았다. 장기적 관점에선 문제가 될 듯싶었다. 더 볼 필요도 없이 이유를 적어 재빨리 반품 신청을 했다.    
  
부피가 큰 건 반품도 힘들다. 박스에 차곡차곡 다시 집어넣는 작업을 하던 중 안장 하나를 또 발견했다. 이상하다 싶어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설명서를 보았다. 맙소사. 안장이라 생각했던 불량품은 등받이였다. 등골이 오싹했다. 등받이와 안장도 구분 못하다니. 시작도 전에 막막했다. 우여곡절 끝에 반품을 취소하고, 등받이 이음선은 다각도로 확인했는데 원래 그런 거라는 결론이 났다.  

시작이 반이라, 부품을 펼쳐놓고 보니 다른 건 모르겠고 눈에 들어오는 건 페달뿐이다. 일단 쉬워 보이는 페달부터 만지작 거렸다. 될 리가 있나. 다시 설명서를 집어 들었다. 반드시 설명서를 읽고 순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래야 쉽게 할 수 있다고. 힘들지 않게. 사용설명서는 괜히 있는게 아니다.

설명서 첫 조립은 왼쪽 페달이었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페달 볼트를 크랭크 홀에 맞추고 오른쪽으로 돌려서 충분히 끼운다. 그다음 스페너를 이용해 단단히 조여라. 그리고 너트 조이기. 페달끈 조립의 순서. 제법 잘 따라 했다. 오른쪽도 같은 방법으로 했다. 그렇게 페달을 첫 번째로 완성했다.  
     
시작이 어렵지, 하나를 완성하자 퍼즐처럼 조각들을 맞춰 나갔다. 그렇게 하나하나 조립을 하자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혔다. 너트는 꽉 조여야 뒤탈이 없다. 볼트를 돌리고 너트를 조이는 작업에 힘이 많이 들었다. 땀 없는 내가 땀이란 걸 흘렀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그사이 스패너 사용 요령이 생겼고 육각렌치 사용도 적절히 했다. 적당한 도구를 찾아 사용하는 호모 사피엔스 모습에 스스로 대견했다. 2시간이 걸렸다.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으며 높낮이를 조절했다. 그런데 계기판이 이상했다. 반대로 부착했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귀찮아서 그냥 사용할까 하다 옥에 티 될까 다시 볼트와 너트를 풀고 제대로 달았다. 이제 거의 완성인데 두 개의 봉이 남았다. 정체를 모르겠다. 설명서를 다시 뒤졌다. 받침대였다.

아뿔싸. 쉬우면 재미없다더니 마지막 고난을 주셨다. 제일 처음에 했어야 할 받침대를 맨 나중에 설치하는 바람에 힘이 두 배로 들었다. 하지만 바이크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자전거를 보니 멋지다. 내가 자전거를 조립하다니 새로운 경험치의 적립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자전거를 완성했다.      

뭐든 하면 할 수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만약 내가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 겁먹고 포기했더라면 나는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리고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진짜. 처음 마음 먹기가 힘들었던 것뿐. 해보니까 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아마 모든 것이 그럴지 모른다. 포기하는 순간 감당해야 할 것이 많음에도 쉽게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해본 사람은 안다. 노력하는 게 더 쉽다는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나는 키 크고 체격 좋은 힘센 여성이 아니다. 키 작고 마른 몸이다. 가능할 거 같지 않은 조건의 여자임에도 20KG 그램의 자전거를 완성했다. 뿌듯함이다. 좌충우돌 우여곡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누군가 내게 부탁을 한다면 척척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하나로 세상 하나를 얻은 기분이다. 의미란 그렇게 부여되는 것 같다. 이제 페달을 밟을 일만 남았다. 힘차게 열심히.

어쩌면 못할 거 같던 등산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바이크를 조립한 신세계처럼. '운동으로 등산을 할 수 있는지 후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과연 그렇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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