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확인’이 한국에만 있다고? [생활 속 법률 이야기] (52) 실명 확인과 고객 확인 차이가 뭔가요

2023. 4. 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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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확인 또는 실명 확인.

은행이나 증권사 영업점을 방문해 신규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모바일 휴대전화를 이용해 인터넷뱅크, 간편 송금이나 페이 업체에 가입할 때 거치는 절차다. 환전을 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과거에는 해당 작업이 간편했다. 주로 은행 계좌 개설이나 무통장 입금 등을 창구에서 대면으로 직접 했기 때문이다. 창구 직원이 내주는 종이 서식에 이름을 기입하고 신분증을 건네주면 직원이 내 신분증을 복사하고 거래를 처리해줬다. 요즘은 복잡하다. 핸드폰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간편 결제에 가입하는 사례가 많아져서다.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바일 화면에 내 이름, 연락처, 생년월일이나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어떤 때는 신분증을 직접 촬영해야 한다. 절차는 복잡한데 가입할 때마다 요구하는 게 제각각이다. 고객들이야 빨리 일 처리를 해야 하니 은행 직원이나 모바일 화면상에서 시키는 대로 기입하기는 하지만, 같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 조금씩 다른 것을 요구하니 찝찝한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제도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현재 한국에는 금융실명법에 따른 ‘실명 확인’ 제도와 특정금융정보법(자금세탁방지제도)에 따른 ‘고객 확인’이라는 유사하면서도 다른 두 가지의 제도가 존재한다. 외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매우 독특한 현실이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지하 경제를 양성화하고 경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내용으로 하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선포했다. 이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현재까지도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있다. 금융실명제란 금융 회사로 하여금 거래자의 실명(實名)으로만 금융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실명(實名)’이란 주민등록표상의 이름을 의미한다. 금융실명제가 우리나라에서 시행돼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등록제라는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제도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금융실명제는 은행, 증권사(금융투자업자) 등 몇몇 주요 금융 업종에만 적용된다.

이와 달리 고객 확인 제도는 국제적인 자금세탁방지제도(AML)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외국에는 주민등록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실명제가 없다. 대신 금융 회사가 고객과 금융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자금세탁을 방지하도록 금융 회사에 일정한 사항을 확인하도록 하는 ‘의무’ 즉 고객 확인 의무를 부과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금세탁방지를 규율하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2006년 고객확인제도(CDD)가 도입됐다. 이후 금융실명제(실명 확인)와 고객확인제도가 병존한다. 고객 확인은 은행, 증권사뿐 아니라 간편 송금이나 페이 업체 등 핀테크 업체(전자금융업자)와 보험사, 카드사, 카지노업자, 환전상, 가상자산사업자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이름,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연락처 외에도 상황에 따라 거래 목적이나 거래 자금의 원천, 법인 고객의 실소유자까지도 확인한다.

얼핏 보기에는 실명 확인보다 고객 확인이 훨씬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과거부터 금융실명제를 고객확인제도에 흡수시키자는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우리나라 지하 경제의 양성화라는 역사적, 상징적인 기능뿐 아니라 비대면 실명 확인 절차와 같이 세부적인 내용이 꼼꼼하게 실무적으로 정착된 반면, 고객 확인의 경우에는 EDD 절차나 검증 등 실무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측면이 있어 아직은 두 가지 제도를 합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여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당분간 두 가지 제도가 함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시목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3호 (2023.04.05~2023.04.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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