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명 에어로빅 하는 곳"…정자교 붕괴 '노후 신도시' 공포
“아침 저녁으로 수십명 모여 에어로빅 하던 곳이 순식간에 무너지다니….”
성남 분당신도시 중심부에 있는 정자교가 무너져 다리 위 보행로를 걷던 40대 여성이 숨지고 20대 남성이 크게 다치자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주민들은 조성한 지 30년이 넘은 ‘노후 신도시’ 분당 지역의 도시 시설물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사고 현장 주변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사고가 난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는 1993년 6월20일 사용 승인을 받은 30년 된 다리다. 5일 오전 9시45분쯤 길이 108m 다리 중 정자2동에서 정자1동 방향 보행로 약 50m가 무너졌다. 이 사고로 다리를 건너던 A(40)씨가 숨지고 B(27)씨가 크게 다쳤다.
정자교는 공동주택 7000여 세대가 모여 있는 느티마을과 상록마을, 한솔마을 주민들이 신분당선·수인분당선 정자역을 이용하거나 서울, 수원, 용인, 광주 등 인접 도시로 가는 광역 시외버스를 이용하려면 건너야 하는 다리다. 탄천변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다리 밑을 지나는 시민들도 많은 편이다. 사고 당시 다리 밑을 지나던 한 남성은 2~3m 차이로 화를 면했다고 한다.
수원 광교에 사는 조모(28)씨는 사고 발생 직후 신분당선 정자역 6번 출구를 나와 정자교를 출근을 하다 119구조대의 B씨 구조 장면을 목격했다. 조씨는 “신호가 다 꺼져 있었고 경찰관들이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며 “무너지지 않은 다리 반대편 보행로로 걸어오다 고통스러워 하는 한 남성이 119 구급차에 실려 가는 걸 봤다”고 말했다.
정자 카페거리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유지호(23)씨는 “오늘은 휴강이라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참하게 무너진 다리를 보고 너무 떨리고 무서웠다”며 “학교에 갈 때나 아르바이트 갈 때 하루에도 몇 번을 지나가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백현동 주민 정모(67)씨는 “정자교와 방아교 밑은 아침 저녁으로 에어로빅 강습을 하는 곳이라 우리 또래 여성 수십명이 모이기도 했던 곳인데, 멀쩡하던 다리가 무너지다니 무서워서 위 아래로 지나다닐 수 있겠나”라고 했다.
다리 붕괴 당시 인접 초등학교와 상가 건물 등 일대가 10분가량 정전되기도 했다. 신기초 6학년 신승화(12)양은 “쉬는 시간에 학교 불이 나가 TV도 꺼지고 엘리베이터도 멈춰 교무실에 가보니 선생님들이 모여 회의하고 계셨다”며 “분당에서 태어나서 쭉 자라면서 정자교, 신기교에서 친구들과 자주 놀았는데, 다리 밑을 보면 금이 가 있고 낡아 있어서 언젠가 무너질 것 같기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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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교 지난해 정기안전점검 ‘중대결함 없음’
성남시 탄천 일대엔 총 24개 교량이 있다. 시는 지난해 8월29일부터 11월26일까지 총 900여만원을 들여 정자교에 대한 정기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실시결과 문건에 따르면 안전등급은 ‘양호’, ‘중대결함 없음’이었지만 요약표엔 ▶교면포장 균열, 접속부 망상균열 및 파손 ▶배수구 막힘 및 배수관 유실 ▶난간 및 연석 균열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지적돼 있었다.
경찰은 정자교 안에 묻혀 있던 상수도관이 파열되면서 다리 상부 보행로 부분이 무너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소방당국은 다리 상판이 횡으로 무너지면서 매몰된 시민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열 화상 카메라 등을 동원해 인명 검색을 실시했으나 다행히 추가 인명피해는 없었다.
현장을 찾은 이진찬 성남시 부시장은 “시를 관리하고 있는 담당 공무원으로서 상당히 죄송스럽고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탄천 일대 24개 다리 모두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은 강력범죄수사대장을 팀장으로 분당경찰서 형사 등 수사전담팀 38명을 편성해 수사에 돌입했다. 전담팀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손성배·최모란 기자, 신윤정 인턴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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