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결 가능성 희박한데…민주당, 양곡관리법 재표결 추진 속내는

고수정 2023. 4. 5. 00: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야권 표 전부 끌어모아도 요건 불충족…부결 전망
총선 앞두고 與에 '민생 거부' 프레임 씌울 수 있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쌀값 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의석수를 앞세워 법안을 강행 처리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재표결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의 재의결 요건은 까다로워, 양곡관리법이 국회 문턱을 다시 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재표결을 추진하는 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효과적인 여론전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하고 헌법을 유린한 행위"라며 "윤 대통령의 독선하고 오만한 국정운영이 거부권 행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로서는 거부권 행사에 따라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로부터의 재의 요구 법률이 이송되면 절차에 따라서 재표결에 임하도록 하겠다"라며 "윤 대통령의 독선적인 통치뿐 아니라 여당인 국민의힘이 얼마만큼 용산출장소, 거수기인지 국민, 농민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마냥 거부권만 바라볼 게 아니라 농민과 야당을 설득할만한 대책을 강구하고 제시했어야 한다"며 "재표결에서 책임 있는 정부여당의 모습을 촉구한다. 또다시 부결되면 식량과 곡물 자급에 대해 정부가 종합 대책을 수립하도록 끝까지 촉구하겠다"고 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목표량의 3~5%를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달 23일 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명, 기권 7명으로 가결됐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려진 법안은 169석의 거대 야당이라도 국회 문턱을 넘기기는 건 쉽지 않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즉 299명 의원 모두 출석한다고 가정한다면 200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데, 민주당이 정의당(6석)과 기본소득당(1석),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을 모두 끌어모아도 재의결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 반대로 115석을 가진 국민의힘이 '집단 부결'에 나서면, 자력으로도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결을 저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재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찬성표를 던져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의원을 비롯해 농어촌 지역에 기반을 둔 또 상식과 양식 갖춘 의원에게 호소한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치를 중단하고 국민 상식에 적극 함께해 달라"라며 "국회법에 따라 국회가 재투표하게 될 때 반드시 양심에 따라 용단해줄 것 촉구한다"고 했다.


3일 국회 본청 앞에서전국의 농민, 농업인단체들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가 주최한 쌀값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결사반대, 쌀값 정상화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만약 재표결에서 부결되더라도 민주당으로서는 손해가 될 게 없다는 분위기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폐기 수순을 밟는다면, 민주당은 '민생 법안'을 거부한 대통령, 진영만 바라보는 여당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용이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 민주당이 선정한 1호 민생 법안이라 여론전에서 우리하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포퓰리즘 정치' '거부권 행사로 이 정권은 끝났다' 등의 수위 높은 비판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 정권은 끝났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차례. 겁없는 바보 정권"이라고 비판했고, 이원욱 의원도 "양곡관리법 거부권으로 진영에만 올인하겠다는 포퓰리즘 정치는 그만하셔야 한다"고 직격했다.


다만 법안 상정권을 쥔 김진표 국회의장이 부결 가능성이 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다시 민주당의 뜻대로 상정해줄지 미지수다. 이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입법 공세로 거부권에 맞불을 놔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쌀 산업 지원책을 추가한 양곡관리법 대체 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