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청년 평택 반도체' 검색하니... 정말 장밋빛 미래일까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김건수 입력 2023. 3. 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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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 표방하는 정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김건수]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GDP 대비 수출의존도는 37.9%다.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의존도는 올해 1분기 GDP 대비 70%에 육박한다. 이렇듯 한국 경제가 수출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로 형성된 데에는 한국 나름의 사정과 세계 자본주의의 확대라는 두 가지 사정이 모두 있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내수시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국제시장의 구매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확대·발전하며 시장 자체가 국가를 초월했다. 그런 측면에서 높은 무역의존도는 꼭 한국만의 일이 아닌데, 프랑스·독일·영국 등의 무역의존도 역시 60~70% 정도다. 

전태일에서 김진숙·박창수로 그리고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그렇다 보니 한국이 시기별로 무엇을 주요하게 수출했는지를 살펴보면, 한국 경제의 흐름과 동시에 노동운동의 역사를 함께 정리할 수 있다. 당시 국가가 주력한 산업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경공업 산업의 현장에는 평화시장의 전태일과 여공들이 있었고, 1980·1990년대 중공업 산업의 현장에는 한진중공업의 김진숙과 박창수가 있었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들은 모두 당대의 핵심적 수출품목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중공업에서 서비스산업, 오늘날 IT·4차 산업으로의 산업변화는 곧 노동자들의 집단적 이동을 전제로 했으며, 국가는 그것을 기획하는 주체였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은 국가의 성장엔진"이라며 첨단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26년까지 6대 첨단산업에 대한 550조 원의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게 핵심 골자이다.

이에 전 부처가 첨단산업 육성의 기조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부는 첨단산업 투자 유치 계획을 발표하고, 국토부는 15개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대학 내 첨단산업 관련 분야 정원 증원과 지역대학에 첨단산업 관련 학과 신설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럴 때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라는 말로는 오늘의 경제현실을 진단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반도체 산업은 수출품목의 20%를 차지하고, 전체 GDP로는 8%를 차지한다. 반도체생산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시총 1, 2위 기업을 다투고 있다.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부지건설산업과 전자제품 판매시장 같은 간접적인 요인까지 고려하면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율'은 단순히 GDP 8%의 숫자로만 헤아릴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러니까 한국은, '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다.

나는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율이 높기 때문에 오는 경제적 위험요소를 지적하거나 식량위기 시대에 '반도체를 씹어먹고 살 것이냐'는 핀잔을 늘어놓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지금 국가가 반도체 산업을 핵심 미래산업으로 설정했을 때, 그곳으로 이동하고 배치되는 집단적 노동인구의 미래를 함께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산업역군 신화

오늘날의 전태일, 김진숙, 박창수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라는 명제가 만들어낸 '산업역군'의 신화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부터가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국가경제의 존망을 가르는 국가적 인재라고 하지 않는가.

반도체산업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돼 있고, 현재도 조성되고 있는 평택·기흥·화성은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라 불린다. 유튜브에 청년, 평택, 반도체라는 키워드를 함께 검색하면 산업단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청년건설노동자부터, 반도체 생산직과 기술직 청년노동자들의 '노동인증후기' 영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 '청년 평택 반도체'라는 키워드를 함께 넣고 검색하면 수입인증, 노동인증 등의 콘텐츠가 나온다.
ⓒ 유튜브 갈무리
 
자신의 노동 일상과 차곡차곡 쌓이는 잔고를 인증하는 간단한 영상들은 조회수 수십만을 넘기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열광을 그저 부러움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절망적 취업난과 경제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은 또래 청년에게서 받은 위로의 힘이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반도체산업의 성장이 청년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보장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탄소배출 산업이다. 2021년 기준 삼성전자의 탄소배출량은 1253만2779톤으로, 2017년부터 매년 100만 톤 정도의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삼성전자의 탄소배출량은 국가탄소배출 부문 중 산업공정 배출량의 1/5을 차지한다. 양대 반도체생산회사 중 하나인 SK하이닉스로 계산 범위를 넓혀보면, 사실상 반도체 산업이 산업계 내에서 대부분의 탄소배출을 차지하는 셈이다.

반도체산업 제조과정에서 비단 탄소만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평택 반도체산업단지에서만 하루 18만800톤의 물을 사용한다. 이런 산업단지를 앞으로 전국에 15개를 더 짓겠다고 하니,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과 경제성장을 맞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첨단산업 대부분이 다탄소배출 산업이다. AI 모델을 만들고 사용할 때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수많은 데이터를 모아 AI를 가르칠 때 연산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2019년 대규모 딥러닝 AI 하나를 교육하는 데 약 30만 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반도체산업을 비롯한 첨단산업의 환상과 신화를 걷어내면, 파국적 기후위기라는 현실이 드러난다. 반도체산업의 성장이 당장의 고용창출효과를 만들어낼 순 있어도, 멀지 않은 미래의 파국적 기후붕괴를 앞당기는 반미래적 산업이다. 기후위기의 주요한 당사자들인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반도체산업으로 밀려들어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사회적 비극이다.

오늘날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과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이 산업전환을 앞두고 대량해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기후정의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기도 하다. 더이상 석탄화력발전소와 같은 고탄소배출 사업장에서 일할 순 없겠지만, 지구생태계에 기여하는 저탄소 노동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노동자들의 해고위기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을 놓지 않고 있다. 취업 알선과 부실한 직업 재교육 정도가 대책의 전부다.

지금 써먹을 청년 말고... 청년이 살아갈 미래를
 
 지난 2월 2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사업' 공청회에서 참석자가 안내책자를 보고 있다. 이번 행사는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최했다.
ⓒ 연합뉴스
 
필요할 땐 '산업역군'이라며 소모될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하고, 필요 없어지면 부품처럼 쓰다 버리는 국가의 산업기획이 문제다. 오늘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으로 투입될 수많은 청년노동자들의 미래에는 지금 해고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현실이 잠재돼 있다.

그렇기에 지금 국가가 해야 할 것은 미래 없는 미래적 산업계획으로 청년들에게 허구적 신화를 유포하며, 동원하는 게 아니라,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대안을 만들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경제난을 약점 삼아 청년기회창출을 명분으로 대기업의 산업확정을 위해 엄청난 국고를 투입할 게 아니라, 청년문제를 만들어낸 국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전환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15일 '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표했어야 할 계획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열리는 기후정의파업에 함께한다. 더 많은 공장과 더 많은 생산에 나의 미래를 걸기보다, 지속가능한 생산과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고자 한다. 나의 요구는 더 많은 반도체공장이 아니라, 더 많은 사회적 권리와 노동자 민주주의 확대다. 반도체가 아닌, 정의로운 전환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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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건수씨는 김용균재단 회원,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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